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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윤성택 / 화분 - 이병률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윤성택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 넣고 손으로 꾹꾹 눌러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은 말없이 흔들렸습니다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위태하게 볕 좋은 옥상으로 봄을 옮기지 않겠노라고 원래 있었던 자리가 그대가 있었던 자리였노라 물을 뿌리며 꽃잎을 닦아 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화분 이병률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

- 그의 애송詩 2021.10.16

새집 - 구광본

새집 구광본 숲으로 갔다 새집을 달아 주러 아이들 손을 잡고 나무들을 헤쳐갔다 가슴에서 못 하나를 뽑아 파란 페인트 칠한 새집을 숲 한가운데 걸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이들은 부서지는 햇살처럼 박수를 쳤고 내 귀엔 오랫동안 날개 터는 소리 가득했다 아이들은 더 깊은 숲으로 내 손목을 이끌었지만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돌아갈 길은 멀고, 아이들의 보금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 얘들아, 가자 몇 해전부터 寫友가 가끔씩 찾는 양평의 농막에 자연스레 동행을 했다. 산골짜기로 흐르는 물을 끌어들여 수도를 놓았더니 텃밭의 푸성귀를 씼고 허드레물을 쓰는데는 지장이 없다. 모종을 사다 심었더니 갈때마다 쑥쑥 자라는 온갖 채소들과 여기저기 솟아 오르는 나물들을 뜯어다 쌀뜨물에 된장을 약간풀어 국을 끓이..

- 그의 애송詩 2021.10.16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 박정대

2011. 10. 11. paris의 밤이 오면 에펠탑이 찬란하게 빛나고 센강은 가로등 불빛에 한층 더 로맨틱 해집니다.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박정대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낡은 태양의 오후를 지나, 또 무수한 상점들을 지나 거기에 갔으므로 너무나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등 뒤로는 음악 같은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서러운 풍경의 저녁이 짐승처럼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성냥을 꺼내어 한 점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영원은 그렇게 본질적인 불꽃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한순간 타오르기도 한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아니 그날 내가 불멸을 찾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뿌연 공기들을 헤치며 이 지상에는 없는 시간을 나는 찾아 나섰다 내가 한 마리의 식물처럼 고요했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