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목백일홍(木百日紅) - 손택수

Chris Yoon 2021. 10. 16. 07:36

2021. 7. 18.

 

 

술 취한 백일홍 1          손택수

백일홍 아래 누가 술병을 세워놓고 갔다
백일홍과 함께 대작이라도 했던가
해 떠라 해 떨어져라 술병을 기울였든가

술만 먹으면 몸에 난 상처자국들이

먼저 붉어져오곤 했다가 시려오곤 한다
내가 까마득 잊었다고 생각한 상처들,
흉터가 없으니 이제 다 나았다 훌훌 털어버린 기억들,
살갗 위로 고개를 내밀곤 한다
연고로 매끈해진 살갗 속에서 욱신거리는,

술만 먹으면 제 상처와 대작을 하면서

필름이 끊길 때까지 가야 하는 사내들이 있다
꽃펴라 꽃 져라 반쯤 마신 술병 앞에 놓고
백일홍 빛이 그늘까지 점점이 물들어 간다

 

 

술 취한 백일홍 2               손택수


백일홍 아래 누가 술병을 세워놓고 갔다

지는 꽃과 함께 대작이라도 했던가

해 떠라 해 떨어져라 술병을 기울였던가

빈 술병 앞에 놓고 명옥헌 말라붙은 연못 바닥 위에 火印을 찍는다

저 이글거리는 꽃범벅 안팎이 흐물흐물 녹아버린 자리

어떤 갈증이 타오르는 머리를 쳐박고 못물을 다 빨아 마셔버렸는지,

술만 먹으면 몸에 난 상처 자국들이 먼저 붉어져오곤 한다

흉터가 없으니 까맣게 잊어버린 기억들,

말끔해진 살갗 위로 고개를 내밀곤 한다

뒤틀린 뿌리가 바닥을 뚫고 나와 진물을 핥는 연못,

한낮 찌는 매미 울음 속에 펄펄 끓어오르는 꽃들

나무껍질처럼 일어난 바닥을 지져댄다

딱지가 앉기전의 화농내가 퍼진다


 

 

목백일홍           장만호

개심사 배롱나무 뒤틀린 가지들
구절양장의 길을 허공에 내고 있다
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변심과 작심 사이에서
마음은 얼마나 무른가
푸른 마음이 파고들기에 허공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
새가 앉았다 날아간 방향
나무를 문지르고 간 바람이, 붐비는 허공이
배롱나무의 행로를 고쳐놓을 때
마음은 무르고 물러서
그때마다 꽃은 핀다

문득문득 핀 꽃이 백일을 간다



목백일홍 [木百日紅 /crape myrtle]

배롱나무 배롱나무 백일홍() 상대하여 이르는 말.
여름부터 꽃이 피어 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간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종자는 붉은색 외에 흰색도 있다

 

 

 

 

 

Havasi [CD 1 Hypnotic]

1. The Road
2. Faena
3. Mystic
4. Timepiece
5. Abelle
6. Elinor
7. Northern Lights
8. Eliot
9. Daisy s Secret
10. Hypnotic
11. Above The Mountains
12. Coming Ho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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