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hara 사막 31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 최승자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최승자 창문 밖, 사막, 바라보고 있다. 내세의 모래 언덕들, 전생처럼 불어가는 모래의 바람. 창가에서 이 십 년 전쯤 처음 만났던 노래를 들으며 찻잔을 홀짝이다가, 나는 결정한다. 이제껏 내가 먹여 키워왔던 슬픔들을 이제 결정적으로 밟아버리겠다고 한때는 그것들이 날 뜯어먹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이 그것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먹여 키웠는지 이제 안다. 그 슬픔들은 사실이었고, 진실이었지만 그러나 대책 없는 픽션이었고, 연결되지 않는 숏 스토리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저 창 밖 풍경, 저 불모를 지탱해주는 눈먼 하늘의 흰자위, 저 무한으로 번져가는 무색 투명에 기대고 싶다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 Sahara 사막 2021.12.13

물소뿔을 불다 - 이선이

물소뿔을 불다 이선이 티벳을 가야겠다는 손금 같은 사연 담은 엽서 한 장 물끄러미 내다보는 오동나무 잎새 사이로 묵소 한 마리 걸어나왔다 유적지 가을하늘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 들릴 듯한 눈망울이 멀뚱하다 저 물소와 함께 산다는 히말라야 高山族은 죽음 곁에 이르러 그 흔하디 흔한 꽃 대신 눈물 대신에 물소뿔을 불어준다 한다 우리 사는 동안 가슴을 들이치기만 하던, 바로 그 멍들 다음 生까지는 가져가지 말자고 새로 태어날 슬픔까지를 노래로 날려보내는 것이다 사는 동안 한번도 넘지 못했던 얼음산을 훌쩍, 녹이며 넘어가는 것이다

- Sahara 사막 2021.12.13

내 워크맨 속의 갠지스 - 김경주

내 워크맨 속의 갠지스 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서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

- Sahara 사막 2021.12.13

낙타는 외로움을 모른다 - 이동호

낙타는 외로움을 모른다 이동호 사막에서 길을 잃을 잃었다 두려운 나는 낙타와 함께 밤길을 걸었다 오랫동안 모래바람에 익숙해진 낙타는 본능적으로 눈을 반쯤 감고 달빛을 따라 걸었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밤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며 촉촉한 낙타의 눈 속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말해주었다 살다보면 때로는 혼자 될 수 있다는 걸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에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한 단 한 사람을 위한 노래 하지만 메아리도 없이 흩어지는 나의 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낙타는 쉬지 않고 걸었다 생사에 기로에 놓였는데 무슨 놈에 사랑타령이냐는 듯 혼자 달 속을 걷고 있었다

- Sahara 사막 2021.12.13

사막을 건너는 낙타 - 최치언

사막을 건너는 낙타 최치언 성냥갑 그림 속의 낙타는 초식동물이다 낙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인을 잡아먹지 않는다 낙타와 단둘이 사막을 건너는 이들은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은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하면 낙타의 물혹을 잘라 갈증을 해소한다 물론 그 낙타는 죽는다 낙타는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오아시스 있는 곳을 항상 정확하게 기억해둔다 만약 오아시스가 기억을 배반한다면 낙타는 그때부터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도 낙타의 눈치를 본다 아주 지루하고 기나긴 사막의 길을 두 동행자는 사형수와 간수처럼 서로 의심하며 초조히 가는 것이다 사막의 밤은 깊어가고 낙타가 잠든 사이 주인은 제 집 담을 뛰어넘는 도둑처럼 낙타의 목을 내리친다 그때 낙타의 눈빛을 보았는가 촉촉이 젖은 마지막 희망의 오아시스..

- Sahara 사막 2021.12.13

고비사막을 건너는 힘 - 이면우

고비사막을 건너는 힘 이면우 낙타도 없이 이 세상 끝에 뭐하러왔느냐고 물어주길 바라며 찬바람 쌩쌩 흙먼지 풀풀대는 사막을 한참 걸어갔다. 이렇게 대답해줄 참이었다 흰구름 양떼 따라 바로 당신을 만나러 왔노라고, 흙모래 속에 듬성듬성 박힌 바다자갈 낯 선 이 사막을 다 건너 처음 만나게 될 나무같은 다음 생을 만나러왔노라고.

- Sahara 사막 2021.12.13

라자스탄의 밤 사막에 누워 - 이성선

라자스탄의 밤 사막에 누워 이성선 사막의 밤하늘에 가득히 반짝이는 주먹만한 별들 그 이불 덮고 누워 대지에 귀를 댄다 당신의 넓게 두근거리는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가슴에 노래로 내려박힌다 바람의 옷 입고 당신 목소리 찾아 먼 여기까지 흘러왔거니 막막한 광야 어디에 짐승 소리 울리고 숨은 성자의 목소리 들려오는가 몸 위로 하늘의 말씀이 ?아져 기운 四更의 달빛이 대지를 쓸어 어루만지며 내 이마를 짚어준다 사랑하는 이여 나 여기 와 누워 처음으로 당신의 사람이다 지는 해의 긴 낙타 그림자에 실려 말이 그친 곳 그리움도 절한 곳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지상의 마지막에 돌아와 떨어지고 있는 별 사이로 당신의 꽃을 받느니 곁에 잠들지 않은 낙타의 방울 소리가 외로운 내 꿈을 더 먼 곳으로 이끈다 나 이 사막에 ..

- Sahara 사막 2021.12.13

사막으로 가는 바다 - 정재록

사막으로 가는 바다 정재록 맨발의 무슬림이 소금자루를 진 낙타들을 끌고 사하라를 간다 그의 벽안이 홍해의 물빛처럼 깊어 보인다 저 소금 캐러밴의 행렬은 사막으로 바다를 끌어들이는 파이프라인 사내는 낙타의 등에 단단히 붙들어 맨 저 올망졸망한 바다보따리들을 종려나무 우거진 오아시스의 맹물에 풀어 놓을 것이다 내가 뿌릴 이 바다의 씨앗들이 사막의 낙원을 낙원으로 만들지 간이 밴 음식들, 맛깔 나는 파라다이스를 만들지 그는 모래위에 떠 있은 섬을 향하여 묵묵히 바다를 끌고 가서 한껏 출렁거리게 할 것이다 그가 내민 한 줌의 소금, 번철처럼 달궈진 모래밭을 밟아 온 한 자락의 파도가 베드윈의 식탁에서 파닥거릴 것이다 사하라의 모래밭에 생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간이 밴 한 끼의 식사는 먼 바다와의 ..

- Sahara 사막 2021.12.13

사막에서 - 김소엽

사막에서 김소엽 사막에 와서 나는 별이 그렇게 많이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별이 그렇게 크게 하늘나라에서 빛나고 있음을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심을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막에 와서 나는 이 땅에서 사는 피조물인 내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감히 안아달라고 청했다

- Sahara 사막 2021.12.13

낙타와 낙타풀 - 송재학

낙타와 낙타풀 송재학 세상의 모든 낙타들은 다 길들여졌으나 고비 사막 어딘가 야생 낙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신기루 따라 걷는 야생 낙타의 타박타박, 그 소리는 사막 아래의 지하수 물이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한때 이곳이 바다였듯이 내가 물고기라면 검은 아가미가 가만가만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낙타가 먹는 소소초라는 풀, 사막의 먹을 거리란 뻔한데 그마저 가시가 있는 낙타풀, 다른 짐승이 얼씬도 못하게 심술이 닿은 소소초의 운명은 고비 사막이 자꾸 넓어지는 것과 닮았다 소소초 안에도 모래와 자갈뿐인 사막이 있어 타박타박 야생 낙타가 걸어가고 물고기였던 나는 화석으로 발견되곤 한다 소소초를 씹을 때 낙타의 입은 가시 땜에 피가 흥건하지만, 내 육신은 막 떨어지는 해를 떠받치지 못해 피곤하다

- Sahara 사막 202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