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영화 이야기

찬란했던 불빛들, 그 세월의 그늘.

Chris Yoon 2023. 2. 26. 08:11

左로부터, 폴 뉴먼(Paul Newman) , 알랭드롱(Alain Delon),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폴 뉴먼(Paul Newman)

내 어린시절, 가끔씩 누나들을 따라서 영화관에 갔다가 필름이 끊어진 흑백영화가 다시 생각나고 또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고... 그런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1958년으로 기억된다. 내가 열살때쯤, 아주 유명한 영화가 있었다.

유산을 둘러싼 가족의 갈등을 그린 희곡 작품으로 인간의 욕망과 허위, 현대인의 소통 단절을 통렬하게 파헤친|작품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전성기 작품 중 하나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 Cat on a Hot Tin Roof〉가 있었다. 이 영화는는 휴식 시간 15분을 제외하면 공연 시간과 극 중 시간이 일치하는 3막극으로, 미국 남부 미시시 강 유역 델타 지대의 대농장을 소유한 폴리트 할아버지의 65세 생일을 배경으로 누가 농장을 상속받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은밀한 암투와 갈등을 그린 영화다.  희곡 창작의 발표시기는 1955년으로 대체로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은 사실주의극에 기초하면서도 풍부한 상징과 시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는 감각적인 언어와 함께 영사막, 제4의 벽 등 다양한 무대 장치, 조명, 음악 등을 탁월하게 사용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무대에 올리려 했다. 현실에서 소외된 체 환상이나 헛된 욕망을 좇기도 하지만 절망 중에 오히려 강한 생명력을 보이는 윌리엄스 극의 인물들은 나약함과 강인함, 추악한 허위와 고귀한 진정성이 뒤섞인 인간 내면의 진실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그 이전 1944년에 발표한 『유리 동물원』까지 두 작품 모두 퓰리처 상을 받고 수차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많은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연극으로 여전히 빛나고 있다.

 

아무튼 당시로는 아주 세련된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었다. 슈미즈차림의 속옷을 입은 여자와 남자, 아무튼 이영화는 젊은 시절의 폴 뉴먼(Paul Newman)과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를 기용하여 성공한 케이스로서 명실공히 영화사에 한획을 그었으며 당시 어린시절의 나는 이 영화를 못 보았으니 영화에 대하여 할말은 없고 훗날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내용을 알았을때는 그시절의 감동이 사라진 또 다른 세대의 청년으로 성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젊은시절의 강렬한 눈빛과 미국의 세련된 상류사회의 남성과 여성을 처음보았던 지식층 집안의 숨막히는 암투를  연기한 폴 뉴먼을 각인시킨 영화였다.

폴 뉴먼은 도시인의 풍모가 강한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반항아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한 출중한 연기력에 비해서는 상복이 상당히 없는 편이어서, 1958년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물을 먹은 것을 시작으로 무려 여섯 번이나 연달아 주연상 후보에 오르고도 탈락하는 쓴 맛을 보았다가 결국 61세가 된 1986년에 공로상을 받았을 뿐이다.

쁀만 아니라 그의 눈빛은 유명하다. 외모도 외모지만  푸른눈은 특히 유명했다. 당시 팬들이 말하길 "분명히 흑백영화에 출연했는데도 폴 뉴먼의 눈만은 컬러인거 같더라"라고 했다. 얼마나 유명하면 "Paul Newman's Eyes"라는 노래도 있다.

 

알랭드롱(Alain Delon),

그 후, 시간이 흐르고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무렵, 광화문일대를 샅샅이 다니며 80년대의 문화에 성장을했다.

당시 광화문일대에는 아카데미 극장을 위시로 몇개의 극장이 있었는데 두 편의 영화를 상영해주는 동시상영관도 있었다.

그때 나는 '쉘부르의 우산'이나 '러브 스토리'등 유명한 영화도 보았었다.

시대적으로 1970년대에 제작된 알랭 들롱의 영화들이 상영되던 시기였다.

'지하실의 멜로디.' '아듀 라미.' '르 지탄' ' 부메랑.' ' 태양은 가득히.' ' 태양은 외로워... 수많은 그의 영화가 상영될때였다.

알랭 드롱은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배우들 중 하나로 프랑스 밖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했으며 이탈리아 영화사에도 중요한 배우로 기록된다. 유럽 너머 아시아의 일본과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들은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미남의 대명사로 남아있다. 그러나 잘 생긴 그의 외모대신 깊이있고 무게감있는 그의 연기는 기대에 못미쳤다.

영화가 주는 감동이나 충격보다 그의 잘 생긴 얼굴과 푸른 눈동자가 먼저 떠오르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던 그도 결국 나이가들고나니 '미망인'에서 '시몬느 시뇨레'의 상대역으로 중후한 연기를 보여주고 지금은 뇌경색에 요양을 하며 안락사를 논하는데는 인생무상! 세월은 어쩔 수 없나보다.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나는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라는 배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몰랐었다.

내가 군에 근무할무렵 '대부 / The Godfather'. 라는 영화가 세상을 휩쓸듯 유명했었다.

마피아단의 우두머리를 너무 미화시켰다는 말썽도 있었으나 한 암흑세계의 1인자를 조명하며 The Godfather는 그 아들들의 삶까지 내려오는 The Godfather I, The Godfather II,The Godfather III. 까지 제작된 장편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나는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라는 배우를 처음 보았던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이건 분명 무언가 빠졌다싶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나온 영화가 딱 한 가지가 더있다. 그의 이름을 알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반항의 상징처럼 땀에 젖은 셔츠를 입고 '비비안 리'를 짓밟던 형편없는 역이었다.

그리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를 통해 또다시 연기자로서 인정받게 된다. 아내를 잃고 무의미한 사랑에 탐닉하는 중년의 사내를 연기한지 얼마가 되지 않아, 60대를 넘어서 뚱뚱하고 두 볼은 개구리 왕눈이 투투마냥 부풀어 오른 대부 ‘돈 꼴레오네’로 다시 돌아 온 것이다. 누가 봐도, 실제 돈 꼴레오네의 모습이라 믿을만한 모습이었다.

그에게는 묘한 성적 취향이 있다. 그는 유색인종의 여성을 좋아한다.

그는 영화가 아닌 전 부인 세 명과 가정부 사이에서의 15명의 자식이 말해주듯 복잡한 여자관계와, 그의 초기작에서의 호리호리한 몸매가 갑자기 불어난 것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식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근근이 그의 이름으로는 부족한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중년에서 노년으로 이어지는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재산 탕진은 물론이요 탕진한 재산만큼이나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아들이 배다른 이복 여동생의 남자친구를 살해하고, 그 충격으로 딸도 자살을 하는 등의 비극을 겪기도 한다.

이렇게 불운한 노년기에도 그는 그의 삶을 다룬 <브란도 앤 브란도>를 준비 중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얘기를 채 하기도 전에 세상과의 작별을 고했다. “말론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다.

그가 죽어서 슬프다는 것이 내가 할말의 전부다” 대부에서 함께 작업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말이다. 50년의 연기인생 동안 다양한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이름으로 기억할 수 있는 많은 영화들에 그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할 완벽한 몰입을 보여줬다. 그가 맡은 그 유명한 배역들이 그의 몰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겨지듯이 그의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삶 또한 말론 브란도 그였기에 그럴 수 있다고 느껴진다.

 

윗 세사람은 아주 먼 옜날의 영화배우들이다.

그것도 제일 잘 생겼다고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젠 늙다못해 곧 세상을 떠나려든가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있다.

이런 배우들을 한 장의 사진에 담다니... 첫번째 사진은 아주 귀한 사진이다.

찬란했던 불빛들,  그 세월의 그늘이 아직 내가슴속에 남아있다.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