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영화 이야기

Sophia Loren

Chris Yoon 2022. 7. 13. 00:19

 

내가 태어나 처음 본 영화는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의 하녀 (河女 / LA DONNA DEL FLUME)다.

1954년의 영화이니 고작 5~6쯤 되어서 나이 차이가 열여섯 차이나는 큰 누나를 따라가 보았을 것이다.

그 전에는 할머니를 따라가서 주로 악극이나 창극을 보았는데 영화관도 처음이었고, 영화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따라서 스크린에 비친 서양의 여자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대충 뜻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낫을 든 여자가 짧은 반바지에 허벅지를 드러내고 하천의 갈대를 베면서 어린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인데 동네의 남성들이 찝쩍거리고 당당히 맛서 싸우는 내용이었다.

훗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내 생각은 대충 맞았다.

 

 

하녀(河女 / La Donna Del Flume)

 

현재통용제명: 하녀
원제: LA DONNA DEL FLUME
수입 개봉명: 河女
제작년도: 1954
감독: 마리오 솔다티(Mario Soldati)
주연: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수입사: 한국예술영화사
개봉극장: 국도극장
개봉일: 1956.07.06.

 

 

전단지 특이사항: 홍보문구는 “세계적 화제의 육체파 여우 No.1 쏘피아 로우렌 주연 / 초련(初戀)에 눈뜬 야성의 여인이 남성의 배반과 부실을 불구하고 순정일로를 고수하는 순애영화!”이다. 1956년도 이태리 영화의 최고 걸작이며 미국의 콜럼비아사가 특별 배급했음을 알리고 있다. 소피아 로렌의 야성미 돋보이는 얼굴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반바지 차림에 장화를 심은 그녀의 몸매를 드러내는 사진을 배치했다. 배우의 설명은 오로지 소피아 로렌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그녀가 같은 이태리의 실바나 망가노나 지나 롤로 부리지다의 인기를 능가하는 매력을 지닌 배우임을 강조하고 있다.

줄거리: 니베스(소피아 로렌)는 바닷가 마을의 생선 공장에서 일을 하는 고아 처녀이다. 까칠한 성격에 자존심도 강한 그녀에게 밀수꾼인 지노(릭 바타글리아)가 틈만 나면 추근거린다. 니베스가 지노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두 사람은 며칠을 함께 보내지만 지노는 곧 떠나버린다. 시간이 지나 니베스는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그를 찾아가 알리지만 그는 모욕감을 줄 뿐이다. 분노한 니베스는 경찰에 지노의 밀수 사실을 고발하고 지노는 체포된다. 그후 니베스는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며 힘들게 살아간다. 감옥에서 탈출한 지노가 복수를 위해 니베스를 찾아가지만, 익사 사고로 사망한 어린 아들 옆에서 절규하는 니베스를 보곤 돌아서서 경찰에 자수한다.

Note: 총천연색의 이태리영화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예술영화사가 배급하고 1956년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소피아 로렌에게 육체파 스타의 명성을 안겨 준 출세작이다. <하녀>가 개봉하는 첫날에는 3천 8백, 가장 많은 날엔 8천여 명이 영화를 보았다.1 당시 하루 관객 최고수가 5천 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거둔 흥행 성적은 이례적이다. 영화의 주제가인 ‘맘보바칸’의 인기도 상당해서, 한국에 ‘맘보 리듬’이 범람하는 주요 계기가 되기도 했다.2
통속 멜로드라마의 외양을 지닌 탓인지 비평계의 호평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하녀>를 비롯하여 <애정의 쌀>(1949)이나 <길>(1954)과 같은 이태리 영화는 한국영화계에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상대적으로 저자본이어서 “시설도 별 것 없고 자연환경하고 개인연기를 가지고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큰 감명과 공감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파한다면 큰 자본이 투여되지 않아도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하녀>의 흥행 성공은 한국영화에도 자극이 되었다.
실제로 <하녀>의 모방작이 제작되기도 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노필 감독이 연출한 <그 밤이 다시 오면>(1958)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해변가 벽촌을 배경으로 어린 딸을 키우며 힘들게 사는 여인의 비극담이라는 설정 면에서는 <하녀>와 유사한 데가 있었지만, “이태리제 <하녀>에서 논리·동기·정열을 빼”버린 것에 불과하다는 평을 받았다.4

소피아로렌의 출생은 1934년 9월 20일, 이탈리아 로마이다. 신체174cm이고 가족은 배우자 카를로 폰티, 아들 에도아르도 폰티가 있다. 데뷔는1951년 영화 '쿼바디스'이고 경력1966.~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수상, 2021.05. 제66회 다비드 디 도나텔로 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훗날 인터넷으로 검색을한 내용)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은 정열적이고 세속적인 여성 역으로 특히 유명하다. 처음에는 균형잡힌 몸매 때문에 주목을 끌었으나 이후 정서적 깊이를 지닌 재능있는 여배우로 인정받았다.

사생아로 태어나 나폴리 교외의 가난하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15세 때 지방 미인대회에서 2위로 입상한 뒤 로마에서 모델 겸 단역 영화배우로 활동하게 되었다. 2년 뒤 반기록영화 〈해저의 아프리카 Africa sotto i mari〉(1952)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그 다음 몇 해 동안 희극 〈나폴리의 황금 L'oro di Napoli〉(1954)에서 오페라를 각색한 〈아이다 Aida〉(1954)에 이르기까지 수십 편의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여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고 마침내 국제적인 인기배우가 되었다.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는 대부분 보잘 것 없었지만 〈느릅나무 밑의 욕망 Desire Under the Elms〉(1958)에 나오는 염세적이고 교활한 소녀 역과 〈흑수선 The Black Orchid〉(1959)에 나오는 강도의 미망인 역은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한 영화 〈두 여인 La ciociara〉(1961)에서 전시(戰時) 이탈리아의 한 10대 소녀의 헌신적인 어머니 역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여 여배우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후기작으로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Ieri, oggi, domani〉(1964)·〈이탈리아식 결혼 Matrimonio all'italiana〉(1964)·〈해바라기 Sunflower〉(1970)·〈사제의 부인 The Priest's Wife〉(1971)·〈라만차의 사나이 Man of La Mancha〉(1972)·〈여행 Il Viaggio〉(1974)·〈특별한 날 Una Giornata Particolare〉(1977) 등이 있다.

초기에 영화활동을 지도해준 제작자 카를로 폰티와 1957년 결혼했으나 1962년 이탈리아의 엄격한 이혼법에 걸려 중혼죄로 고소당했다. 결혼이 무효가 된 뒤 그들 부부는 1966년에 다시 결혼했다. A. E. 호치너가 쓴 〈소피아의 삶과 사랑 Sophia, Living and Loving : Her Own Story〉이 1979년 출판되었다.

 

작품 세계

소피아 로렌은 <토토 타잔>(Toto Tarzan, 1950)으로 영화계 데뷔하여 <푸른 수염과 여섯 명의 아내>(Le sei mogli di Barbablu, Barbablu's, 1950), <쿼바디스>(Quo Vadis, 1951) 등의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첫 주연작은 <해저의 아프리카>(Africa sotto i mari, 1953)였다. 같은 해 오페라를 영화로 번안한 <아이다>(Aida, 1953)에서 ‘아이다’역을 맡았지만, 노래는 대역을 사용했다.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나폴리의 황금>(L'oro di Napoli, 1954), <하녀>(La donna del fiume, 1954), <소렌토의 염문>(Pane, amore e....., 1955)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자국과 유럽의 인기를 업고, 할리우드로 건너간 소피아 로렌은 20세기 폭스(20th Century Fox)가 제작한 <해녀>(Boy on a Dolphin, 1957)에 출연하였다. 풍만하고 매끈한 몸매를 과시한 이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로렌은 세계적인 배우로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전작의 성공을 바탕으로 스탠리 크레이머(Stanley Kramer)의 <자랑과 정열>(The Pride and the Passion, 1957)에서 캐리 그랜트(Cary Grant),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와 호흡을 맞추었다. 이 영화에서 흥겨운 음악에 맞춰 플라멩코(Flamenco)를 추는 그녀의 모습은 수많은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섹시스타로서 이미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이듬해 <달빛 아래서>(Houseboat, 1958) 라는 코미디 영화에서 캐리 그랜트와 출연하면서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1960년 소피아 로렌은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고국으로의 복귀 후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의 거장인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감독의 <두 여인>(La ciociara, 1960)에 출연하였다. <두 여인>에서 그녀는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으로 억척스럽고 강인한 어머니를 연기했고, 그 결과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아카데미시상식(Academy Award)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로렌은 데 시카 감독과 지속적인 협업을 이어갔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 <이태리식 결혼>(Matrimonio all'italiana, 1964), <해바라기>(I girasoli, 1970) 등이 있다.

남편인 카를로 폰티가 제작한 <이태리식 결혼>에서 로렌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Marcello Mastroianni)를 사랑하는 매춘부 여인으로 분했다. 이 영화에서 십대부터 사십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자연스럽게 연기해 다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해바라기>에서도 로렌은 마스트로얀니와 공연하였다. 전선으로 떠난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기 위해 직접 러시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다시 남편을 만나지만 남편을 놓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녀를 맞이하였고, 그녀는 그를 두고 떠나온다. 한 여인의 기구한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한 로렌의 연기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영화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은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인상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1970년대에 로렌은 <여행>(Il viaggio, 1974), <카산드라 크로싱>(The Cassandra Crossing, 1976) 등의 작품에 출연했고, 1980년대에는 주로 TV 영화나 시리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에는 <패션쇼>(Pret-a-Porter, 1994) 같은 작품에 간간히 얼굴을 드러냈다. 2000년대 들어 로렌은 아들인 에드아르도 폰티(Edoardo Ponti)의 장편 데뷔작 <비트윈 스트레인저스>(Between Strangers, 2002)에 출연하였다. 이후 2008년 남편 카를로 폰티가 세상을 떠나자 롭 마샬(Rob Marshall)의 뮤지컬 영화 <나인>(Nine, 2009)에 출연하면서 슬픔을 이겨내려 했다. <나인>에서 그녀는 주인공 ‘귀도’의 어머니 ‘맘마’ 역을 맡아 쟁쟁한 배우들과 열연을 펼쳤다. 근작은 아들 에드아르도의 <휴먼 보이스>(La voce umana, 2013)이다.

 

영화사적 평가

소피아 로렌은 현대 이탈리아 영화계를 이끌어 온 여배우이다. 네오 리얼리즘 시기부터 뉴 이탤리안 시네마 시기 많은 영화에 출연했던 로렌은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서민 이미지를 대변하는 배우였다. 가장 매력적인 여배우 리스트에도 자주 이름을 올렸던 로렌은 관능적인 이미지로 섹스 심벌로 불리기도 했고, 할리우드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전성기를 누렸다.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대표 작품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두 여인>과 <해바라기> 등이다. 균형잡힌 몸매는 물론 다재다능한 매력을 발산하며 이탈리아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꼽히는 배우이다. 15세 때 미인대회에서 2위로 입상한 후 로마에서 모델로 활동하게 되었고, 1951년 영화 <쿼바디스>를 시작으로 영화배우로 활약했다. 19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수여 받은 바 있고, 1966년에는 칸영화제 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내가 소피아로렌을 마지막 본 영화는 1970년대에 본 <해바라기>>(I girasoli, 1970)였다.

당시의 나는 30대였다. 그리고 이태리영화를 좋아했고 특히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라는 배우에 관심을 갖고있었다.

그는 당시 일본의 C.F. 화장품광고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글픔과 우수를 담뿍 간직한 사내를 연기하고 있었다.

그때 소피아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공연한 <해바라기>가 상영되었다. 

나는 즉시 달려가 영화를 보면서 거물급 두 배우가 코믹연기에도 이렇게 조예가 깊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영화는 비극적이지만 마스트로얀니가 군에 입대하기전까지는 희극이다. 해변에서 두 사람은 거구의 몸인데도 서로 밀착되고 딩굴며 키스를 한다. 마스트로얀니가 소피아의 얼굴을 애무하다가 기침을 한다. 소피아의 얼굴을 너무 진하게 애무하다가 귀고리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두 사람 다 장신에 거구임에도 깝쭉거리는 코믹 연기는 사뭇 귀엽고도 즐겁다.

 

197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대한극장에서 감상한 것으로 기억된다.

지오반나 <소피아 로렌>은 그의 남편역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안토니오>를 전쟁터로 떠나보낸다. 그리고 소식을 모르던 남편이 어느 날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받는다. <로렌>은 망연자실 한다. 그 후 로렌은 그의 남편 <안토니오>가 살아 있으리라는 상상 속에 멀고 먼 러시아로 그를 찾아 나선다.

천신만고 고생 끝에 모스코바 북쪽 변두리에 이태리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로렌이 찾아가는 길 대평원에 해바라기가 끝없이 지평선을 이루며 성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로렌은 루드밀라 사벨리에바역 <마샤>라는 러시아 여인의 집에서 안토니오를 찾는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전쟁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마샤와 결혼을 하여 아기까지 가졌음을 알게 된다. 로렌은 슬픔에 잠겨 이태리로 돌아온다. 이태리로 돌아온 로렌은 안토니오를 잊기로 결심하고 나이가 많은 공장노동자 에토(마이클 그린)과 결혼을 해 아들을 하나 갖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향수를 못 참아 고향으로 돌아온 안토니오는 로렌을 찾는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이들의 사랑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말없는 재회는 슬픔만 잉태한 채 서로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는 영화로 해피엔딩이 아닌 전쟁의 참화가 인간의 삶을 난도질하고 있음을 보여준 영화다.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