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Wedding III

Chris Yoon 2022. 11. 23. 01:27

오늘이 몇일일가?

우리는 온 세월을 함께 살고 있지

그대여, 우리는 온 삶을 함께 살고 있지

사랑하는 그대여,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살아가며 서로 사랑하고

우리는 세월이 무언지 모르고

삶이 무언지 모르고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지

 

- 쟈크 프뢰베르

 

 

 

오래전 대학시절,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을 하던 친구의 방엘가면 육교위에서 파는 커다란 복사사진액자가 걸려있었다.

축산업을 공부하던 농학도라서 그랬는지 푸른잔디가 바람에 나붓기는 구릉에 통나무 울타리가 넓게 둘러쳐있고 청바지에 첵크남방을 입은 사내가 기대서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하고 하얀 레이스가 달린 모자에 에이플런을 두른 여자가 송아지의 목을 끌어안고 앉아 남자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군에 입대하여 사천에서 근무를 할때, 쉬는 시간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옆 콘셋트 건물에서 놀러왔던 장교가 창문너머로 바라보며 듣더니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말하지만 이처럼 노래를 불러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어떻게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 될 수 있겠니?'라며 한숨을 쉬고 돌아갔다.

 

세월이 지나고보니 그들이 진정 원했고 바랬던 결혼이 무엇이었는지를 어렴풋이 알것같다.

결혼이란 크게 기대를 해서도 안되고 상대방을 짚고 일어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기회적인 생각은 더욱 안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 같은 방향을 평생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식이 진행되고있는데 병역기피자라고 체포를 하려고 밖에서는 형사들이 진을 치고있어도 용케 결혼식을 치르고 뒷문으로 빠져나와 자신들의 장소로 가서 살림을 차린 큰 누나의 이야기는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 이야기같다.

그때 큰 누나의 나이, 불과 스물다섯이었다.

그때부터 큰 누나는 을지로6가에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을 세얻어 이태리의 영화배우 '마르첼로 마르트로얀니'를 닮은 매형과 쟉크 프뢰뵈르의 詩, '샹송'같은 인생을 살았다. (윗 詩 참조)

그러나 그들이 '샹송'같이 살아온 세월은 내가 볼적엔 전쟁같은 세월이었다.

 

제 아무리 순애보적인 사랑을 해도 돈이 없다면 불행으로 이어지고 상대를 사랑하는 힘도 퇴색된다는, 그래서 늘 그 남자의 경제능력을 먼저 봐야한다는 작은 누나는 철저한 계획을 세워놓고 좋아하는 남자를 따라서 물 설고, 낯 설고, 바닷새의 울음소리를 닮은, 언어까지 생소한 남쪽지방으로 결혼을 하여 떠나갔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생활방식으로 모든걸 개선하고 영리하게 시아버지의 눈에 들어 대갓집의 새아씨가 되었다.

작은 누나는 자신의 사랑과 목적한 바를 이루기위해 여학교시절부터 꿈꾸어왔던 여류문인의 꿈이라던지 성장기의 감상적인 추억까지 하얗게 잊어버리고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냈다.

아! 단기 기억상실증...그럴수도 있구나...

작은 누나의 꽃다운 어느 날부터 결혼하던 날까지 무려 10년 가량의 세월은 지금도 찾을 수가 없다.

새로운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기위해 죽도록 노력했던 작은누나를 나는 거룩하게 기억하고있다.

 

그런 누나들이 이제 자신이 선택했던 남편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직도 그들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해 애쓰고 있다.

큰 누나는 아직도 저녁때 귀가후, 매형의 사진액자에게 인사를 한댄다. '여보, 저 돌아왔어요. 아무일도 없으셨지요?'

작은 누나는 매형이 지어준 필명, '붓꽃'으로 시를 써서 매형의 무덤위에 놓고 나즉하게 낭송하며 그와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강가에 서식하는 해오라기, 연어, 황어들을 보며 매형과 함께 보냈던 지난 날들을 회상한다.

 

그런 누나들이 큰 누나가 91세, 작은 누나가 82세이다. 그리고 한낱 어린 동생으로 말없고 고독한 소년으로 누나들에게 각인되어있는 내가 일흔 다섯을 보내며 또 한 해의 막바지에 있다.

 

 

나의 결혼관은 단순하지 않았다. 자로 잰듯이 정확하게, 그리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감싸며 채워주지 않고, 나의 정당성을 내세워 이야기하면서 늘 양보를 하지않았다.

'결혼은 둘이 만나 함께 우뚝서는 것이 아니라, 우뚝 선 두 개의 봉우리가 서로 견주듯이 어울려 Top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개의 강한 자아(自我 /ego, personal identity)가 만나면 시끄럽게 부딪치는건 당연하다.

오랫만에 함께 있어도 늘 우리는 혼자였다. 그래서 고독했다.

그 해결책은 우리는 둘 다 일을 선택하고 고집했다. 일에 있어서는 서로 조력을 아낌없이했다.

아내는 3교대를 근무하는 간호감독의 위치에올랐다.

나는 어느 정도의 나이에 이르자 뉴욕이나 호주에 머무르면서 나의 창작세계에 전념하며 나의 퀄리티를 넓히고 올려나갔다.

- 서로 떨어져 각자 살았기를 다행이야. 그렇지않았으면 부딪쳐서 벌써 쪽박 깨졌어.

그래도 여전히 만나면 부딪치고 쪽박은 깨질듯 깨질듯 위험한 순간은 지속되었다.

누가 잘하고, 잘 못해서, ... 당사자들 외에 부부간의 자잘못은 누구도 알 수 없고 말 할 수 없는 일이다. 

 

4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무슨 일인듯 없었을까?

진정으로 좋고, 희열에 들떠서 여행을 하다가도, 어느순간 말도 하기싫고 타인처럼 지냈던 순간들...

Wedding Cake에 불을 붙이고, 함께 케익을 절단하여 나눠먹고 즐거워하다가 금방 소리를 지르고 상처로 남을 말을 상대방에게 던져야했던건 아직 젊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감성들이 충만해서일까?

 

 

 

요즘 나는 아프다.

그동안 심각하고 무서운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저곳 병원들을 다니며 진찰을 받고 그들의 오진과 터무니없는 오판단으로 병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밀로이드종'을 겸한 '다발성 골수종'... 두 가지 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형질세포가 악성변화하면서 '단클론감마'와 '무증상다발성 골수종'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발성 골수종'에 이르면 생명을 잃게된다.

 

- 위험한 상태이니 일단 입원을하고 검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의 지시대로 나는 우선 병원에 입원을 한후 여러가지의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여러곳의 X-Lay와 초음파, M.R.I. 채혈검사, 그리고 제일 큰 검사는 '골수검사'와 '심장, 신장 세포 조직검사' 그리고 '복부의 지방 조직검사'를 했다.

나는 죽은듯이 눈을 감았다.

그동안의 긴 여정이 떠오르며 좀 더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죽은후 홀로 남겨질 아내를 생각하며 가끔씩 혼자있을때는 쓸쓸히 눈물짓는다.

혈액암, 그리고 아밀로이드종, 그 항암치료에 따른 면역력 결핍으로 오는 대상포진... 약으로 이어진 부작용으로의 사소하게 크고 작은 병원치료로 바쁘게 보낸다.

아내는 내게 헌신적인 조력을 한다. 아내의 도움이 없이는 힘들다.

나는 꼭 재생해야만한다.

 

언젠가 울산 대왕암에서 아내와 여행을 하며 해무가 자욱한 바위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랫 사진은 어느 서양 노부부의 여행사진이다.

저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한평생을 보내온 노부부에게 결혼이란 바로 저 한 장의 사진이 정답이 아닐런지!

백발이 고운 얼굴에 자신만만하고 여유있는 미소가 마냥 부럽다.

젊기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젊어지는 것이다.

 

- 윤필립(尹馝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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