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A Wedding II

Chris Yoon 2022. 11. 22. 01:37

 

'평생 변하지않을 사랑만 할 수 있다면 반지하에서 시작할 수 있어요.'

나보다 열여섯살이나 많던 큰 누나는 한국전쟁이 끝나고나서 바로 여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근무를했던 신여성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다' '제니의 초상' '나의 청춘 마리안느.'등 흑백 서양영화를 보면서 영화속에서 여주인공들이 했던 헤어스타일,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양장, 높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던 큰 누나는 이태리의 미남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를 닮은 남성을 만나 연애를 하느라 밤이 늦거나 일요일이 되면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때 누나의 나이 불과 스물셋,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를 닮은 젊은 청년은 스물다섯이었다.

아직 전쟁의 포화가 식지않아서 젊은이들은 군대를 안가려고 병역기피자로 도망다니던 시대였다.

 

큰누나는 집안에 흉이 된다하여 집안 어른 한분을 내세워 중매결혼으로 둔갑을시켜 레이스 면사포에 드레스를 입고 신식결혼식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떠났다.

매형은 군대를 피하려고 중학교 음악교사 자리를 버리고 집안으로 꼭꼭 숨어들었다.

큰 누나는 어린 조카들과 실직자 남편을 대신하여 봄이면 창경원으로 벚꽃놀이를 가기위해 전차를 타고 새옷을 맞추러 종로통으로 여인네들이 밀려나오는 동대문시장에서 비단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름이면 강아지같은 어린조카를 데리고 뚝섬유원지로 물놀이를 나가고 창경원에 있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구경다니고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둘러선 춘당지 호수에서 보트를타고 하루하루를 드라마틱하게 자신들이 택한 연애결혼과 매형의 혹독한 병역기피의 댓가를 치루며 평생을 보냈다. 그 누나가 이제 두달만 있으면 아흔두살이다. 

 

 

 

어린시절부터 예쁘게 태어나 십리밖에서도 소문을 듣고 애기 구경을 왔다는 작은누나는 여고를 다니면서부터 부엌의 어머니일은 돕지도 않고 앙드레지드와, 헤르만 헷세의 문학집, 당시 이광수와의 연애소설로 유명했던 모윤숙의 '렌의 애가'를 탐독하며 밤이면 그들의 문체에 영향을 받은 글들을 밤새 수없이 썼다 찢으며 현대 여류문인을 꿈꾸었다.

대문앞에는 항상 남학생들로 진을치게 만들었던 작은 누나는 일찌기 남성편력이 강한, 남성들이 한번 보고나면 헤어날 수 없는 푸른 숲속의 붉은 동백꽃같은 뇌살적인 데가 있있다.

그러면서도 '인생은 사랑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 사흘만 굶으면 누구나 큰 소리가 나게 되어있지. 경제가 뒷받침이 안되면 집안의 화목도 깨진다'면서 가난하고 순애보적인 사랑을 찾아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남해바다의 물빛 고은 바다와 정열적인 동백꽃을 동시에 품고 끝없이 자신의 사랑을 찾아 헤메었다. 

큰 누나와 작은 누나는 아홉살차이, 나와 작은 누나의 차이는 일곱살 차이였다.

우리는 타고난 성향의 차이도 있으나 거의 10년을 터울로 확고하게 변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애관이나 인생관도 확고하게 변하여 저마다의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끝까지 이루어내려고 노력한 셈이다.

작은 누나에게 목숨을 걸고 자신의 집으로 누나를 데리고간 남해 바다를 닮은 넓은 가슴의 소유자 경남부호의 아들, 작은 매형은 묘한 분위기의 매력으로 시대를 앞서간 청년이었다. 

작은누나는 어려서부터 영리했다.

시아버지의 눈에 들어 시아버지의 비서노릇, 즉 전화메모, 스케쥴정리, 미팅약속, 손님접견을 똑부러지게 해내며, 집안의 안주인노릇을 이행하는데 조금도 차질이 없었으며 문제가 있는 집안의 개조와 개혁을 과감히 해내고 대대로 이어져내려갈 먼 미래까지 게을리하지않는 선견지명을 보였다.

 

두 누나의 결혼관과 애정관은 서로 많이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평생동안 매형들에게 큰 소리 한번 나오지않게 만들고 매형들을 늘 감동시키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형들이 세상을 떠나신지 몇년이 지났어도 아직 그들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분들을 못잊고 외로워하신다는 것이다.

 

 

 

하루에 10분을 만나기 위해 버스에서 택시로 갈아타고, 육교를 뛰어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질뻔 한적도 있었다.

아내의 하는일은 3교대 간호직, 나는 기획조정실 광고 아트디렉터, 어떤 때는 3일만에 겨우 한번 만나려고 달려와 현관에서 10분을 만나고나면 아내는 현관문을 나가고 나는 들어와 혼자서 밥을 해먹고, 혼자 잠을 자고, 아침이면 메모를 적어놓고 집을 나왔다.

그러면 아내가 돌아와 자신의 생활을 하다가 다시 근무를 하기위해 집을 나갔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1982년도의 우리들의 결혼 생활이었다.

富와 애정을 잃지않고 이어지도록 우리는 이런 방법을 택했다.

통장도 각자 관리했다. 관리비, 생활비는 나의 몫, 경조사비는 각자 따로, 식비는 아내의 몫. .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고 허튼 짓을 했다가는 모든것이 이가 맞지를않고 뒤틀리며 계율이 무너지게 되어있었다.

그렇게 40년.

오늘은 나의 결혼기념일 40주년이다.

 

-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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