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自作 詩

천년의 사랑

Chris Yoon 2022. 5. 4. 01:07

 

큰 나무가 쓰러졌다

큰 나무가 쓰러진 옆에 붓꽃이 피었다

오늘도 쓰러진 큰 나무를 붓꽃이 지킨다

 

큰 나무가 쓰러진지 어언 2년.

아직 붓꽃의 슬픔은 가시지않았다.

아니,... 새록새록 큰 나무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슬픔은 더 깊어진다

붓꽃은 큰 나무의 기제(忌祭)를 차리기위해

시장을 돌며 재료들을 사다가

김치를 담고

떡을 맞추고

나물거리를 손질하고

생선을 다듬어 포를뜨고

과일을 정성드려 닦았다

큰 나무가 쓰러진날을 기억하며 자손들은 모일것이다

효심이 지극하여 아직도 큰 나무가 쓰던 방에 들어가면 눈물을 짓는 큰놈,

큰 나무를 닮아 빠진것없이 세세하게 밤을 새워 젯상에 올릴 제수(祭需)를 준비해올 막내 딸.

큰 나무를 떠나 집을 외면한체 찾아오지도 않는 놈.

큰 나무는 쓰러졌어도 이들을 보면서 한숨 지을것이다

살아생전의 웃을일들은 죽은후에는 모든게 슬픔이다

붓꽃은 이런 슬픔을 어찌 견디어낼까?

 

별빛 한 줄기 달려오는데 140억년이나 걸린다는데
붓꽃과 큰 나무가 만나기 위한 시간은 몇 억년이 걸렸을까.

붓꽃과 큰 나무의 운명은 수천 광년을 달려와서 만난 거리다

붓꽃과 큰 나무는 별이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넓은 초원에 쓰러져누운 큰 나무,

그 옆에 함초롬 피어있는 붓꽃

천년의 사랑은 이렇게 계속된다.

 

 

- 尹馝粒(윤필립)

 

 

 

 

5월4일은 매형의 기일(忌日 : 돌아가신 날)이다.

2년전 나는 양평의 안개가 자욱한 숲속에서 큰 조카의 부음(訃音)을 받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무렵이라 오지말라는 누나의 전갈도 받았으나 나는 가지않을 수 없었다.

살아생전 가슴 한켠에 늘 그늘을 만들어 쉬어가게 만들어주었던 사람.

정말 큰 나무 같았던 사람이었다.

장례는 장성한 자손들로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루어졌고 검은 상복의 누나는 절제된 감정으로 뒤에서 자손들의 훈수를 봐주며 의연하게 상을 마쳤다

그러던 누나가 매형이 떠난지 2년이 되었는데 날로 슬픔을 더하며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며 밤잠을 못 이룬다.

어느정도 지나면 낫겠지... 생각했는데 마치 의좋았던 산비둘기처럼 세상끝까지 함께할 요량으로 죽어서 황천길도 함께 가려는듯하다. 자손들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전화문안을 드리고 찾아와도 자손을 맞는 마음과 평소의 마음은 각각 따로다. 어쩌면 좋을까? 누가 만류한다고 들을 일이 아니다.

 

누나는 처녀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매형이 떠나신후로는 승화된 슬픔을 글로 쓴다.

살아생전 '붓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었다는 매형의 뜻으로 필명도 붓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엔 붓꽃은 강하다. 한겨울 보내고 성급한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가 짧게 피었다가 들어간후에 넓고 매마른 들녁에 홀연히 피어나 가을이 으슥해질때까지 피어있다가 진다. 

 

지난해, 나는 광릉엘 갔다가 한세월을 다하고 쓰러진 고목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피어있는 붓꽃도 보았다.

나의 미숙(未熟)한 감상으로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천년의 사랑이었다.

 

 

매형의 忌日을 기념하며 - Photo : Chris Yoon /글 : 尹馝粒(윤필립)

'- 그의 自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 - 어떤이의 꿈  (0) 2022.06.07
6월 - 6월의 기도  (0) 2022.06.04
4월, 죽음의 축제 - 윤필립  (0) 2022.04.18
2022년 목련(木蓮)  (0) 2022.04.16
꽃놀이  (0)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