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나무 이야기

몽촌토성의 나홀로나무 (Lonly Tree)

Chris Yoon 2022. 1. 25. 05:07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나무를 보기 시작한것이 나이 오십을 훨씬 넘긴 후 부터였다.

이제 나무도, 나도 나이가 들었다.

나는 나무를 위하여 열심히 사진을 찍고 시를 썼다.

어느 날, 그 나무는 나를 닮아있었다.

아니... 내가 나무를 닮아가고 있었다.

 

 

 

 

봄.

아무도 없는데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겨우내 헬쓱해진 나무가지가 아무 기척도 없이
내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는다

 

 

 

여름
렇게 해서 시작된 나무와의 인연
햇살 맑은 어느날
나무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나무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내가 나무고
나무가 내가 되었다

 

 

 

가을

찬이슬 내린 어느날
히끗하게 잘 생긴 사내 하나가 길을 가다가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사내의 눈빛은 형형하리만치 타는 눈으로 나를 꽤뚫어 보았다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무에게도 심장이 있다니...
처음 알게된 사실이었다

 

 

 

겨울
사내는 사진기를 꺼내더니 나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진을 다 찍고나서 총총히 가버렸다 
겨울이었고 나는 옷을 벗고있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웠지만
나는 양 팔을 벌려 나무를 다시 끌어안았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나 자신이 되어버린 나무뿐,
나무는 나를 다시 받아주었다

 


윤필립 - 나무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이곳은 옛 백제사람들이 살던 터전이었다.

유적도 발굴되고 언덕인줄 알았던 토성(土城)도 밝혀졌다.

그곳이 바로 몽촌토성이다.

88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까지만해도 사람들은 토성안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88 올림픽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몽촌토성에서 올림픽을 치루기 위해 각종 경기장을 만들었고 인근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선수들과 해외기자들을 위한 숙소로 아파트를 지었다.

88 올림픽이 성공리에 끝나고 그곳에는 세계 작가들의 야외조각을 전시하고, 토성을 손질하여 이름도 올림픽 공원(Olympic park)이라고 붙여 전철역 이름도 올림픽공원역이라 정했다.

조용하던 잠실벌에는 롯데월드가 들어서면서 석촌호수가 되살아났고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은 롯데 타워 126층 건물이 들어서고 상권문화가 발달되면서 번화가가 되었다.

우연찮게 들어가서 조용히 살던 나는 졸지에 교통이 편해지고(지하철이 3개 노선이 있음)

카페와 레스토랑이 군집하며 출근시간이면 강남으로 나가는 차들이 밀리는 번화가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것과 방법에 무엇이 달라지랴.!

거실에 앉아 몽촌토성의 해자와 석촌호수를 오가는 백로와 해오라기를 보고 하루에 한번씩 카메라를 들고 나가 올림픽공원의 사철 달라지는 사진을 찍는 것일뿐.

 

 

해자건너 몽촌토성에는 아주 오래된 향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나홀로 나무'라고 부르며 찾아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간다.

특히 턱시도를 입은 신랑과 눈처럼 흰드레스를 입은 예쁜신부가 찾아와서 봄, 여름, 가을,...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에도 파르르 떨면서 웨딩 촬영을 하고간다.

 

나는 그들이 오지않는 이른 새벽이나 아주 추운 겨울날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꾸준히,... 열심히 찍었다.

찍는대로 모두 좋은 사진이 나올 수는 없었다.

기상이 좋지않고 계절의 변화를 못느끼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냥 나무만 찍으면 밋밋해서 의자 하나를 가지고가서 놓고 프레임안에 나무를 넣고 찍었다.

그렇게 겨울, 봄, 여름, 가을,... 또 다시 겨울.

사계절을 새벽마다 나가서 나무와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이젠 내가 살던 아파트는 오래 되어서 재건축에 들어가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왔다.

.................

나무여, 잘 계신지?

 

 

- Photo, Copy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