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自作 詩

流 謫 (유적)

Chris Yoon 2022. 6. 22. 02:42

 

流 謫 (유적)

 

그리움이 멈추는 날

나는 죽음에 다다를 것이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겨진 시간을 위해

루프트한자에 몸을 싣고

미루고 미뤄왔었던 당신의 흔적들을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그토록 애가 타게 나를 지탱해주었던

사랑의 식탁들을 로렐라이 고양이城 해자에 쏟아버리고

회색빛 가스등아래서 당신과 나누었던 키스자국들을

아직도 장년의 꿈속에 곤히 잠들어 있는

바하만의 혹독한 시간으로

되돌려 놓치 않으면 안된다

찬비 내리는 유월의 라인강 상류로 거슬러

당신이 남기고 간 검은 스웨터에 한기를 온통 두르고

알프스 산맥에서 뿜어나오는 광맥을 가슴에 넉넉히 담은 채

열사의 아라비아 사막을 깊이 재운 밤 별자리를 따라

20세기 북쪽끝 녹아난 꿈에 잠들어 있는 유일한 바다 인도양을 지나

푸른 밤에 더욱 빛을 발하는 네온에 둘러싸인

오페라하우스가 바라보이는 시드니항에 속절없이 정박하여

당신의 나신이 수초처럼 풀어 헤쳐질 때서야

그리움 다 태우게 될런지 모르겠다

아마 당신은 춥고 추웠던 겨울날

남녁끝 천길 절벽으로 사위가 둘러쌓인

움푹 패인 고즈녁한 바닷가에 앉아서

따스한 남풍의 안개빛 새벽을 맞이하던 때를 그리워할런지

아니면 하늘이 늘 어둡기만 했었던 젊은 가을날

백양로의 깊고 깊은 우물 밑바닥까지 두레박질을 해대던

하얀 와이셔츠 사내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게 될런지 모를 일이다

그리움이 나를 가두는 날

나는 천국에 이르를 것이다

세월에 독기품던 알콜

그 분노를 삭히던 니코틴

상념에 차갑게 응고된 카페인과

닦아도 닦아내도 욕망에 찌들었던 거울

당신을 내 몸안에 한 몸으로 담고 살아왔던 것처럼

내 피와 뼈 살 그리고 얼굴이 되어버린 나는 자유로와질 것이다

평생 나를 괴롭히고 핍박해왔던 잔인한 한 사내를

神殿에 둘러싸인 이 세상에 푸른수의 한벌 단정하게 입혀

당신에게 맡겨두고 비로소 나는 자유로와질 것이다

流謫같은 그리움으로부터

 

 

※ 流謫(유적)이란 죄지은 사람을 귀양보내고 그곳에서 살게 하는 형벌을 유적이라 한다.

해외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 어찌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즐겁기만 할 수 있을까.

때로는 힘들고, 지치고, 그만 돌아가고 싶기도하다.

해외로 나돈다는 것은 어느 의미로 流謫(유적)이 아닐런지.

그러나 지난날의 여행은 모두 어떤 장소라도 감동적이었다.

젊은날의 여행지에서 벌써 나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여기서 그 사내는 바로 내 자신이었다.

 

 

< 尹馝粒  Chris Nicol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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