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st City (사라진 왕조)

사라진 도시, Jordan의 고대도시 페트라 (Petra) II

Chris Yoon 2021. 11. 15. 07:28

계곡에 잠들어있던 장밋빛 붉은 고대도시 - Petra

 

 

Petra의 수많은 건축물과 조각 중에서도 단연 방문객들을 감탄케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장밋빛 사암을 깎아 만든 신전이자 무덤인 ‘알카즈네(Al Khasneh )’다.‘알카즈네(Al Khasneh )’는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파라오의 보물이라는 뜻이다.

이 기념비적인 건물은 기나 긴 시크(Siq)를 마지막 지점에서 통과하자마자 나타난다.

높이 40미터, 너비 28미터의 정면 모습은 웅장하고 예술적으로도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이 건축물은 헬레니즘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건축 전통을 따르고 있다.

앞에 넓은 광장을 거느리고 있는 ‘알카즈네(Al Khasneh)의 정면 모습은 기둥과 지붕, 여러 조각상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붉은색으로 서있다.

정면 중앙에는 대좌가 있고 그 위에 항아리가 있는데 베두인들은 그 안에 파라오의 보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곳을 파라오의 보물창고가 아니라 나바테아왕 하리스 4세의 무덤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알카즈네(Al Khasneh )’는 정면 전체를 바위 위에 조각했다. Petra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 파라오의 보물)이라는 뜻을‘알카즈네(Al Khasneh)라고 이름을 붙인건 백위 인족들이었다. 백위 인족들은 조각상 뒤쪽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때문에 알카즈에 윗쪽 조각상에는 사람들이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 흔적들이 총탄 자국으로 남아있다.어찌나 웅장한지 문에 서있는 내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아랫 사진은 윗 사진을 부분확대한것.)

 

 

 

알카즈네는 그리스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그리스신화의 신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페기먼트 형식의 양식이 사용되었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바테인은 이집트인이나, 그리스인은 아니다. 알카즈네는 원래 모래가 덮여있던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특별한 것은 없으며 커다란 방들만 있다.

고고학자들의 의견이 나바테아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면 이 방은 온갖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발굴당시 텅 비어 있었다면 도굴꾼들이 이미 모두 가져가고 난 후였다.

 

 

 

알카즈네 옆쪽으로 가면 파인 구멍들이 많은데 이것들은 당시에 전부 공동묘지였다.

각각의 묘지를 들여다보면 바닥에도 무덤이 파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부 묘비들은 거대한 조형물 뒤로 가려져있는데 전부 기원전 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묘지들은 상당히 넓은 면적에 걸쳐 있다. 붉은색에서부터, 푸른 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암석의 빛깔은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진듯 홀로 위치한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페트라는 오랜 세월동안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묘지로 간주됐다. 600개 이상의 묘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각된 무덤들은 4개의 산기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우선 북동쪽에 있는 왕관묘지에서는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묘비들이 발견된다.

남동쪽에서 발견된 묘지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서쪽에서 조성된 묘지는 단구 위에 조성되어 있고, 남서쪽 기슭에서도 묘비들이 발견된다. 이처럼 많은 묘비들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페트라는 단순 묘지는 아니었다.

엄연히 인구 25,000명의 도시였고, 고고학자들이 이 사실을 밝혀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희생의 산당(High Place of Sacrifice)으로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수천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배당이 있다.

이들은 희생의 산당(High Place of Sacrifice)에서 신에게 재물의식을 기리기도 했다.

희생의 산당(High Place of Sacrifice)에는 재단이 있는데, 동물의 피가 흐르던 도랑물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사진 / 희생의 산당(High Place of Sacrifice)과 알-데이르(Al Deir)수도원 가는 길

 

페트라의 설계는 다른 고대 도시들과 다른점이 있었는데, 하나의 중심지 대신 여러개의 작은 중심지들이 있었고, 도시의 끝에서 끝을 잇는 대로도 없다.

도로망도 질서정연하지 않고. 도로가 가족이나 부족 중심으로 설계되어 대부분 좁고 막다른 형태의 골목길이다.

계단 800개를 올라가면 페트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알-데이르(Al Deir)에 도착한다. 알데이르는 ‘수도원’이란 뜻이다.

나바테아인들의 주요 성지 중 한곳으로 추정된다. 정면 높이가 최소한 40m 이상이다. 페트라에서 알카즈네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올라가는 고생을 피하고자 한다면 베두윈의 당나귀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당나귀를 이용하면 20분만에 올라갈 수 있다.
베두윈들이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당나귀를 타고 가라고 곳곳에서 호객행위를 하므로 적당한 베두인을 골라 가격을 흥정하면 된다.
왕복 7JD(디나르)를 주면 당나귀를 타고 갈 수 있다.

 

건축물을 끝까지 완공하지 못한 흔적과 알-데이르(Al Deir)수도원

 

페트라에서는 당시 건축도구 등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위에서부터 깎아내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완공된 건축물들을 보면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위에서부터 조각해나가다가 끝까지 완공하지 못했던 것들이 남아있다.

바위의 품질이 좋지 못할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공사를 진행하기 전에 암벽을 고르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바람에 의해 풍화된 곳이 작업하기 좋은 곳으로 간주됐다. 암벽을 조각한 뒤에 돌림띠를 만들어 조각하고 그 위에서 나머지 조각작업들이 진행된다.

이렇게 윗부분이 마무리되면 점차 아랫부분을 향해 조각해나가고, 이런식으로 맨 아랫부분까지 진행됐던 것이다.

조각 방법은 암벽에 나있는 균열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위틈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어 자라게 하면 나무가 팽창하면서 압력으로 암벽이 갈라지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방식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첫째 발판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둘째 별도의 채석 없이 돌을 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떨어진 암석들을 다듬어 다른 건축물에 사용해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노력으로 페트라에서는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건축물이 조각됐다

 

 

원형 극장

 

페트라에서는 두 가지 암석만이 사용됐는데 사암과, 석회암이다.

그런데 원형 극장 안에서 대리석이 발견된다. 요르단에 대리석 채석장이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놀라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면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높이 6m 가량의 화강암 기둥이 발견된다.

반경 100km 이내에 화강암 지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놀라운 것이다. 당시 사용된 대리석과 화강암은 이집트에서 수입해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떻게 이곳까지 운송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Petra는 오랫동안 감춰져 있다보니 훼손된 건축물도 상당했는데 아직도 모래를 걷어내고 보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고고학 발굴 작업이 이루어진 Petra는 현재까지 약 800여개의 지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자료가 부족해 유물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발굴 작업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면적은 도시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Oliver Sh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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