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古宮산책

겨울, 종묘

Chris Yoon 2021. 11. 12. 07:27

텅 비었던 머리속을 나도 '생각'으로 가득채웠다
하늘은 일식(日蝕)처럼 해가 가리워져 흐리고
삭정이 같은 겨울나무들이 빈 까치집을 품고 있는데
겨울고궁을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나를 만들어 나가는 '생각'이리라

 

 

잔설이 남은 겨울 고궁, 종묘를 걷다가
유난히도 '생각'에 잠겨있는 눈(眼)들을 만났다
이국에서 온 남자와 여자의 눈은 생각에 가득 잠겨보였다
특히 남자의 눈이...
남자는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듯 보였고
여자도 남자를 깊이 신뢰하는듯 보였다
Pasternak의 소설 <닥터 지바고>가 떠오르는 얼굴들이었다
여자는 얼마나 라라의 모습을 닮았나?
남자 또한 얼마나 젊은시절의 지바고를 떠오르게 하는 얼굴인가?
"Where you fom?" 내가 물었다
"Sweden... Then where did you come from?"
그는 되려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나눴다

 

 

겨울의 종묘는 고요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곳에 波平尹氏 성을 가진 王妃였던 할머니들이 다섯분이나 계신다
波平尹氏 집안은 제일 많이 王妃를 배출해낸 집안이다
얼마나 빡세게 女息의 교육에 전력투구 했을까?...
나는 지금도 마지막 왕후, 순정효 왕비가 돌아가신후,
종로거리를 메우며 장례행렬을 따라가던 인파를 기억한다

 

 

푸른눈의 사내가 종묘의 정전을 보고있다
그의 눈길이 내 어린시절을 보고있는듯하다
어린시절, 제삿날. 하루종일 문턱에 앉아 기다리며
할머니의 잰 손놀림을 보았었다
할머니는 제수거리를 다듬으면서도 항상 나를 극진히 보살펴 주셨다
종묘에 오면 할머니가 그립다

글/ 사진 : 윤필립

 

 

 


Peder B. Helland - Long R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