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山

望 月 寺 記 I

Chris Yoon 2021. 10. 31. 14:33

(望月寺) 全景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원도봉산아래에 입구가 상당히 가파른 절이 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9년) 8년에 혜호선사께서 왕명을 받아 창건하였다 하는데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됐다고도 하고 신라의 서울이었던 월성( 月城 경주 /慶州 )을 바라보며
왕실의 융성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망월사(望月寺)라 이름 붙여졌다고도 한다. (전통사찰 제8호)

 

 

망월사 (望月寺) 위에 위치한 男性모양의 바위

도봉산을 오를적마다 아래서 부터 신기할 정도로 온몸의 구석구석 나무뿌리처럼 뻗은 실핏줄까지 기운이 넘쳐 흐르는
것을 느낀다. 그 기운은 묘한 흥분과 건강한 에로티시즘이다
그도 그럴것이 산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멀리 소나무 숲에 그려 넣은듯한 망월사의 영산전(靈山殿),낙가보전(洛迦寶殿), 적광전(寂光殿), 무위당(無爲堂)이 보이며 그 위로는 거대한 男性의 상징인듯한 바위가 그 위용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男性의 그것이 아니고 새벽에 힘차게 뻗어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좋은 남성의 그것과도 닮았다

 

 

望月寺 의 靈山殿

망월사까지 올라오며 좌우 절경에도 감탄하지만 망월사 영산전(靈山殿)에서 내려다 보는 산아래 경관은 실로 장관중의 장관이다 양쪽 산등성이가 굽이쳐 흘러내리며 탁 트인채로 산 저밑 아득히 멀리 보이는 현실의 세상.
주변 산들이 뺑둘러 절경을 이룬 가운데 산 위에서 바라다보는 산 밑 세상과의 默言의 대화, 交感...
이는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라.

 

 

망월사 (望月寺)의 금불상

망월사 (望月寺)에는 여러명의 부처님이 계시다 영산전(靈山殿),낙가보전(洛迦寶殿), 적광전(寂光殿), 무위당(無爲堂)에 몇 분씩의 부처님이 계시다 사찰마다의 부처님의 관상을 보면 때로는 그 위용과 근엄함에 먼저 주눅이 들거나 기가 죽기 마련인데 망월사 (望月寺)에 계신 부처님들은 인자하기 그저 없다 동쪽을 향한 절의 방향으로 아침해가 떠오를때 법당문을 열면 한 줄기 빛을 받는 부처님의 모습들은 더더욱 자애롭다

 

 

어린시절, 공양쌀자루를 곱게 머리에 이고 하얀 모시한복에 산길을 걸어 절을 찾으시던 할머니.
그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절을 따라 다니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와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그러면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고 물기가 채 마르지않은 얼굴로 할머니 옆에서
고사리같은 두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며 앉아 있었다
그 버릇이 남아서 일까?... 지금도 山行을 하며 절 앞을 지날적엔 두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다

 

 

무위당(無爲堂)

무위당(無爲堂)에서는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않고 마음을 내려 놓아보라 세상이 이토록 조용한것을... 내 마음이 이토록 고요한것을...

지나간 날을 담아 두지 마라 닥쳐올 내일을 미리 생각하지 마라 오로지 지금 현재만 생각하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망월사대웅전인 낙가보전(洛迦寶殿)

그 아래 망월사대웅전 낙가보전(洛迦寶殿)의 아름다움이란 또 어떤가 !
사람사는 곳중에 명당은 임금님이 살던 궁궐터요,
궁궐터 보다 더 명당터는 산 속의 절터라더니
그말이 실감날 정도로 가히 명당으로 손색이 없다.

 

 

낙가보전(洛迦寶殿)의 우측 옆문

낙가보전(洛迦寶殿)은 내가 좋아 하는곳.
특히 낙가보전(洛迦寶殿)의 우측 옆문을 좋아한다
부처님을 뵈러 들어가면서 당당하게 앞 문으로 들어가는 者 누구일까?
옆문. 작은 여닫이 두 짝에 연꽃이 그려진 문 턱이 높은 문.
한때, 세상이 원망스러워 산행을 했을때, 나는 이곳 낙가보전(洛迦寶殿)의 옆문 댓돌에 앉아
한스러운 눈으로 아랫 세상을 내려다 보며 왼종일 앉아 있었다

 

 

낙가보전(洛迦寶殿) 壁畵

낙가보전(洛迦寶殿) 壁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누가 그렸는지 몰라도 마치 현대의 판화같다
정성들여 곱게, 천천이 그린게 아니라 마치 연필 크로키를 하듯 거침없이 자유분방한 線으로 표현하였다
색감도 전통적인 탱화의 색이 아니고 티벧의 느낌이 나는 흙색과 모래색 일색이다
부처의 진리대로 모든것은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속에 내가 있을 뿐이고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탱화인들 옛것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

 

 

낙가보전(洛迦寶殿) 壁畵 앞에서

신라시대에 태어났으면 畵工이나 石工이 되어 佛心 가득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을...
나이들며 절에 있는 모든것들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나이가 들면 부처가 된다더니
이젠 내가 부처가 되었다

 

망월사 (望月寺)의 길들은 암벽사이로 이리저리 높고 가파르고 험한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길을 스님들은 편안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오르내리신다 카메라 렌즈로 보면 어느 길목 하나 드라마틱 하지 않은 길이 없다 언제쯤일까?... 나도 아무렇지않게 저 길들을 편안히 걷게 될 날들은...

 

 

멀리 노역에 바쁜 스님들이 분주하다

영산전(靈山殿)은 원래 山客들에겐 출입이 되질 않았으나 얼마전부터 해제가 되어 오르다 보면
禪學에 매진하는 젊은 스님들이 계신 천중선원(天中禪院)을 내려다 볼 수가 있다
천중선원(天中禪院)은 스님들에겐 연수원과도 같은곳이다.
이곳에서 스님들은 잠자고, 노역하고, 불심을 닦는다.
사찰이라고는 하나 이곳 천중선원(天中禪院)에서는 그들이 노역하는 모습도 보이고, 그들이 빨아널은 빨래도 볼 수있다.
그럴 적마다 참선하는 그들의 모습과 달리
또 다른 부지런하고 젊은 피가 끓는 남성들을 보는듯 하여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리기도 하다.

 

 

천중선원(天中禪院)은 연수원과도 같은곳. 방안에는 스님들이 있고 (맨 좌측 문) 마루에도 한 분 계시다.(두번째 문)
방안에는 가지런히 개놓은 이부자리가 청결해 보인다

 

 

망월사는 특히 다른 절과는 확연히 다르다.
관세음보살 감로수라고 적혀있는 큰 바위 아래 동굴속 연못 같은 약수물 앞에선 저절로 숙연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힘든 산행으로 인하여 온 몸의 수분이 증발된 몸으로 갈증을 느끼며 해탈문을 지나서 암반수 옆으로 갔는데 건장하고 잘 생긴 스님이 우물 앞에 앉아서 뭔가를 닦고 있었다 - 스님, 물 한 모금 마시겠습니다. - 예. 그러십시요 - 가물어서 물이 귀하지요? - 예, 저희 산방식구만 해도 서른명이 넘는걸요. 그런데 지나가면서 세수하고 온통 분탕질을 치는 산객들을 보면 살짝 밉드라구요

살짝 밉드라구요??? ^^* 스님이기 이전에 부처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큰 절 생활에 이해가 가면서 '살짝 밉드라구요'하면서 그 앞에 '살짝'을 붙이는 스님의 재치에 그만 속으로 웃고 말았다 지금도 그 스님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맑은 샘같은 웃음이 솟아 오른다

 

 

望月寺 月釣門

나는 다시 月釣門으로 나서야 한다

망월사 낙가보전(洛迦寶殿)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이제는 해탈도 했으니 저 밑에 즐겁고 행복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길 바라며 산을 내려와야 한다. 어짜피 불심이 모자라 출가를 못 했다면 산 아래 저잣거리에서라도 열심히 살고 볼 일이다
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이젠 거둬야 한다

海良 하십시요. 여태까지 어느 衆生의 지껄임을...
그리고 成佛 하십시요

南 無 阿 彌 陀 佛...

 

 

 

 

 

望月寺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639년(선덕여왕 8) 해호(海浩)가 창건하였으며, 망월사라고 부르게 된 고사가 전해진다.

선덕여왕은 해호를 존경하여 측근에 머물게 하고자 하였으나, 해호는 사양하고 홀로 이 산중에 암자를 지어 나라를 위해기도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고 한다.

당시 해호가 머물렀던 동대(東臺)의 옛 산성 이름이 망월성(望月城)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산성 이름을 따서 망월사라 하였다.

신라 말기 경순왕의 태자가 이곳에 은거했다고 하며, 1066년(문종 20)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절을 중창하였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14차례의 병화와 전란으로 절이 황폐해졌다가 1691년(숙종 17) 동계(東溪)가 중건하였다.

그 뒤 영월(暎月)이 수십 년 동안을 이 절에 머물면서 1779년(정조 3) 선월당(先月堂)을 세웠고, 1800년 선월당을 옛 영산전(靈山殿)터로 이전하였으며, 1818년(순조 18) 칠성각을 신축하고 1827년 절 전체를 중수하였다.1880년(고종 17) 완송(玩松)이 중건하였고, 1882년 완송이 영산전을 다시 세웠으며, 1884년 인파(仁坡)가 독성각(獨聖閣)을 건립하였다. 1885년 완송이 약사전(藥師殿)을 건립하였고, 1901년(광무 5) 인파가 큰방을 보수하였다. 1906년 회광(晦光)이 선실(禪室)과 설법루(說法樓)를 중수하였고, 1941년 김응운(金應運)이 약사전을 중건하였다.1969년 주지 춘성(春城)이 퇴락한 선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건물을 지었다. 1972년 주지 도관(道觀)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洛迦庵)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상층을 법당으로 사용하고 하층을 선실로 사용하는 석조전(石造殿)을 중심으로 영산전 · 칠성각 · 낙가암 · 범종루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 망월사혜거국사부도를 비롯하여, 1793년에 건립한 태흘(泰屹)의 천봉탑(天峰塔), 1796년에 수관거사(水觀居士)가 명(銘) 한 천봉탑비(天峰塔碑)가 있다.이 밖에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도 1기와 탑다라니판(塔陀羅尼板) 1매, 청장(淸將)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쓴 망월사 현판, 영산전 전면에 걸려 있는 주련(柱) 4매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절에서 300m 떨어진 곳에 광법암(廣法庵)이 있다.원래 영산전 앞에 있던 누각이었던 것을 1965년 춘성이 현 위치로 옮겨 광법암이라 하였다. 이 절은 경기 지방의 이름 있는 선원(禪院)으로서 매우 전통이 깊고, 근대의 고승인 만공(滿空) · 한암(漢巖) · 성월(惺月) 등이 후학들에게 선을 가르쳤으며, 많은 선객(禪客)들이 수도를 하고 있다.

 

 

'- 그의 山' 카테고리의 다른 글

望 月 寺 記 III  (0) 2021.10.31
望 月 寺 記 II  (0) 2021.10.31
청계산  (0) 2021.10.31
다시 가을산  (0) 2021.10.31
북한산 숨은계곡 - 가을빛의 Symphony  (0) 202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