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山

望 月 寺 記 III

Chris Yoon 2021. 10. 31. 14:37

 

랜만에 산행을 준비하고 망월사(望月寺)로 향했
망월사는 도심이나 낮은 산자락에 펼쳐져있는 절이 아니고 전철을 두번씩이나 갈아타며 의정부로 가다가 도봉산(道峰山)자락으로 접어들며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로 가파른 산행을하다보면 거의 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숨이 턱에 차고서야 갈 수 있는 절이다.

 

요즘은 큰 사찰이 산중에 있다해도 길을 잘 닦아놔서 차를 운전하여 절 입구 주차장까지 가서 차를 세워두고 몇 걸음만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절이 아니다.전철역에서 내리고부터 바로 오르막길로 시작하여 부지런히 산행을 해야만 갈 수 있는 절.그야말로 뜻이 하늘에 닿고 정성이 뻗쳐야만 찾아갈 수 있는 절이다.

 

 

내가 이절을 즐겨찾는 이유는 돈많은 신자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올 수도 없고, 또 철없는 관광객들이 떼로 몰려와 시끄럽게 절을 어지럽히지도 않아 늘 절이 조용하고 낙가보전을 둘러싼 탱화들이 마치 현대적 판화처럼 기품있는 수준작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찰의 탱화들을 보면 섬찍하게 두려울 정도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무당집의 그림같아서 탱화속의 주인공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않은데망월사의 탱화를 보고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고급스런 갤러리의 작품들을 보는듯, 나 또한 격조가 한층 높아지는것 같다.

탱화만 그런것이 아니다.

서원에는 아직 도량수업을하는 젊은 스님들이 많이 기거하는데 하나같이 모두 잘 생기셨다.

가끔 그들과 마주치면 소슬바람을 만나는듯 해맑은 시선을 대할 수 있다

오늘도 그렇게 해맑간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고 말았다.

텅 빈 듯 조용한 낙가보전으로 들어서서 기척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데 젊은 스님 하나가 서원에서 나와 올라오시는게 아닌가.

얼른 카메라에서 손을 떼고 두손을 모아 합장인사를 드렸다.

스님도 합장으로 받으시더니 "초겨울 경치 참 좋죠?" 라고 먼저 말을 붙이며 맑게 웃으신다.

" 좋구 말구요. 그래서 이렇게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 그런데 역광이라서 괜찮을까요?"

" 저는 역광촬영을 좋아해서 일부러 이렇게 택했답니다. "

그렇게 스님은 또 한번 나를 보고 맑게 웃어주시고는 산으로 향하는 길로 올라가셨다.

 

나는 촬영하던 것을 마치고 스님이 떠난 돌층계를 따라 올라갔다.

벌써 어디쯤 가셨는지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따라 나설걸...' 이런 후회도 들고 '산으로 가시는 길이라면 저하고 말벗이나 하면서 함께 으르시지요.'라고 잠시 지체시켰다가 같이 갈것을 ...하며 또 다른 후회가 자꾸 들었다.

그 싱그러운 미소가 자꾸 눈 앞에 어른거리며 지워지질 않았다

그러나 내가 포대능선까지 오르도록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산책을 하려고 산으로 오르는것 같았는데...그렇다면 분명 다시 내려오실테고.

 

나는 포대능선 정상에 앉아 초겨울 북한산을 카메라에 담으며 스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스님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 그 인연이란게 이런 것인가?

전생에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다가 다시 이렇게 스쳐 지나갔을까?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연은 몇이나 될까? 셀 수나 있을까?

한 해 두 해 나이가 더해지는 것 만큼 인연도 쌓여간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연을 만나면서 내 생은 끝이 날까?

그러나 그 끈들을 모두 붙잡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떠나는 인연도, 잡을 수 없는 인연도, 마음은 늘 함께이지만 이렇게 태생부터 차원이 달라 만날 수 없는 인연도 있다는걸 알았다.

문득 김광섭의 시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저렇게 많은 별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의 '저녁에

 

 

The Hidden Valle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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