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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혁명(sametová revoluce)의 도시 Czech, Prague

Chris Yoon 2021. 10. 18. 05:27

 

벨벳 혁명(sametová revoluce)의 도시

Czech, Prague


1800년부터 오스트리아제국에 병합 되었고

1차 세계 대전 이후 잠시 독립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독일에 의한 지배,

2차 대전을 마친 후 소련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식민지 터널을 뚫고

"프라하의 봄" 이나 "벨벳 혁명" 같은 민족 저항 운동을 통해

끝까지 투쟁해서 독립할 때까지 눈물겨운 과정들이 Prague에는 있다

 

 

 

 

- 공산주의


1946년 치러진 선거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지지를 얻은 공산당은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과 더불어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1948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지원 하에 통치권을 장악했다.
그 후 15년간 실시된 경제정책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갔으며,
탄압에 못이긴 비공산주의자들은 망명길에 오르거나 숙청됐다.

 

 

 

- 프라하의 봄과 벨벳 혁명


1960년대 말, 공산당 지도자 알렉산더 두브체크는 급진적인 자유화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이른바 이 '프라하의 봄'은 소비에트 정권이 1968년 8월20일과 21일 사이 군대를 몰고 진군하면서 무산된다.

1977년 1월 바츨라프 하벨 등 250명에 달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에 의해
이른바 '77헌장'이 체결됐고, 이때부터 반공산주의자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저항세력의 대명사 바츨라프 하벨은 1989년 반체제연합인 '시민포럼'을 이끌고 공산독재체제를 퇴출시키고,

새로운 지도자로 선출됐다.
이 시기에 전개된 비폭력 시위는 피를 흘리지 않은 시민혁명이라 하여 벨펫(평화로운, 조용한) 혁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 살아 남은자의 슬픔


왠지 젊은이들의 얼굴을보면 처연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저 갈색머리에 푸른 눈동자. 그리고 하얀얼굴에 짙은 눈썹. 큰 키...
공산권아래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며 목숨을 잃었을까?...
살아남아 있는것이 장하다
결국 살아남아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 벨벳 혁명 경위와 요약


1989년 11월 17일 금요일에 폭동 진압 경찰이 프라하에서 일어난 평화적인 학생 시위를 억압하였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11월 19일부터 12월 말까지 대중 시위가 이어지게 된다.

11월 20일에 프라하에 운집한 평화 시위자의 수는 전날 200,000여 명에서 500,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11월 27일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2시간의 총파업을 결행하였다.

다른 나라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거리 시위가 늘어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11월 28일에 당이 권력을 포기하고 일당제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12월 초에 오스트리아, 서독과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에서 철조망과 여타 장애물이 제거되었다.

12월 10일 구스타프 후사크 대통령이 1948년 이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처음으로 非공산당 정부를 지명하고 사임하였다.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1989년 12월 28일에 연방 의회 의장으로 선출되고, 다음날 바츨라프 하벨이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직에 올랐다.

1990년6월에 체코슬로바키아는 1946년 이래 처음으로 민주선거를 치렀다.

"벨벳 혁명"이란 말은 국제 사회에서 이 혁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체코 내부에서도 이 표현을 쓴다.

 

 

 

 

- 벨벳 이혼


이러한 평화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1993년 1월1일 슬로바키아와 체코 양 진영의 지도자들이

서로 다른 노선을 따라 갈라 서기로 합의하는 과정에서 다신 한번 그 힘을 발휘했다.
이 날 프라하는 체코 공화국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고, 하벨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불행하게도 이후의 시기는 경제 관련 비리들과 두 주요 정당 간의 권력 나눠먹기식 행태가 국민들의 원성을 사면서 상처로 얼룩져 버렸다.

하벨은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가까스로 재당선됐으나, 2003년에는 바츨라프 클라우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물러났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프라하는 보다 튼실해진 경제와 관광 수입으로 인한 달러 증가로 한층 살기 좋아졌지만,

범죄가 늘어나고 건강과 주택난이 악화되는 등의 문제도 없지 않다.
체코는 1999년 NATO에 가입하고, 2004년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래전, 읽고싶은 책이 있었다
내용도 모르고 그저 책 제목이 좋고 마음에 들어서였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마치 미술관에 전시된 애매모호한 추상화에 붙여졌을법한 그럴사한 제목이다
미술을 한답시고 그럴사하게 멋만 들은 나는 몇 권의 책을 정기적으로 사면서 어느날 이책도 사고 말았다
그러나 다른 책은 모두 읽었으면서 한계절이 바뀌도록 이 책은 책 표지가 너덜너덜 해져도 도저히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글 곳곳에 담겨진 철학적 담론들이 어렵게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록 요즘 베스트셀러처럼 쉬이 읽히진 않지만,
한 줄 한 줄 마다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기에 여러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책은 체코가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소련군의 침공을 받은 1968년 정치적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를 중심으로 시간을 앞으로 뒤로 이동하며 네 남녀의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그려진다
이들은 그것이 사랑이든 혹은 국가가 됐던 어떤 '존재'에 대해 무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너무 가벼워서 도망치기도 한다
작가는 획일성에 대한 저항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사랑과 책임감을 당연스레 분리하는 남자. 딸에게 수치심을 주는 어머니 등
이들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자유를 억압하느 공산주의에 대해선 더욱 직접적으로 비난한다

- 2009년 12월24일 민음사 펴냄

 

 

 

- 영화 <프라하의 봄>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베스트 셀러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로 만든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의 자유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남자와 두 여인의 기묘한 사랑을 그렸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바람둥이 외과의사인 토마스로, 줄리엣 비노쉬는 사진작가 테레사로.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여인 사비나로는 레나 올린이 출연하였다.
프라하의 봄은 국내에선 소극장 위주로 개봉되었지만 영화의 작품성보다는 상당히 노출이 심하고 야하다 라는

입소문때문에 의외로 국내에서 상당히 히트친 작품이었다.
영화의 러닝 타임도 2시간40여분의 난해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골치아픈 정치적 상황이 영화의 주요 무대였지만 농도짙은 베드씬과 에로티씨즘으로 결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바람기 넘치면서도 지적인 남자 주인공을 완벽하게 소화시키며
이때부터 그의 연기가 범상치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공산정권때문에 외과의사가 강제로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영화의 비극적 결말은 잔잔한 감동과 함께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영화중간에 1968년 체코의 자유화 운동 실제 장면과 함께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오버랩이 되는 영상이 기억에 남는다


프라하의 봄 (1988 년작)
감독 / 필립 카우프먼
주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 줄리엣 비노쉬. 레나 올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프라하의 봄>이 국내에 소개되었을때가 1990년 초반.
나는 포스터를 보면서 늘 불만에 차 있었다
(위에 올려진 두개의 포스터는 외국에서 제작된것을 훗날 찾아낸것)
원작은 무척이나 대담한데 왜 저토록 소극적이고 안일하게 전달을 하려는 것일까?...

당시(1980년대 말)만해도 공윤에서 검열을 하며 제동을 걸고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한게 수두룩하다
따라서 그시대에 광고를 했던 나 역시 검열에 걸리지않으려고 눈속임으로 교묘히 넘기기를 감행했고
공윤에 넘기는는 원본 하나, 검열이 끝나고 방송매체에 넘기는 조금 다른 카피본 하나를 만들었었다
지금이라도 인터넷을 검색하여 <프라하의 봄>을 찾아보시라
얼마나 미흡하고 썰렁한 이미지가 뜨는지...
서구에서는 넘치는 창의력과 볼거리 풍성한 비쥬얼로 왁자지껄한데 비하여
우리는 억눌리고 조마조마 검열을 빠져나가는 그야말로 문화의 공산권에 살았었다

 

떠나올때 가지고 온 두 대의 카메라, 책 몇 권, M.P.3에 담아온 음악들로 요즘 사는것에 대하여 지극히 풍요롭다
다른 생각들이 끼어 들 틈도없이 오로지 그것들만으로 숨쉬며 사는듯하다
낯선곳으로 오니 이토록 내가 젊다는 것을 왜 진작 몰랐던가?
그간의 미흡한 습작들을 버리고 이제야말로 본격적 작업에 몰두할 나이라는 것을 왜 감지 못했을까?
<희랍인 조르바>에 나왔던 마지막 몇 줄의 글이 떠오른다
- 우리는 시작에 머룰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것도, 사랑한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
그렇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는 고국에 돌아가서도 죽는날까지 이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