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무화과 숲 - 황인찬

Chris Yoon 2022. 9. 28. 02:12

 

쌀을 씻다가
창 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하루종일 잠을잤다.

벌써 몇일째이다.

밤새 두세번을 깨었다가 이내 또 잠이 든다지만 그렇게 오전 10시까지 자고일어나 또 다시 거실 소파로가서 음악을 켜놓고 비몽사몽간에 잠이든다.

그러다보면 오후 5시가 넘는다. 하루종일 잤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항암치료를 하는동안 꼬박 밤을 새우며 근 1년간을 지냈었다.

항암치료중의 주사약 부작용이 여러가지인데 불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난 9월16일, 금요일밤부터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받고 마지막으로 총 정검을 받으며 암세포는 없어지고 병이 많이 호전되었다는 진료를 받고 나서부터다.

그러니까 작년 9월 이후 혈액암을 선고받고 3년안에 죽는다는 사형선고를 받고난후, 처음으로 치료후 10여년의 생명을 더 연장받았다는 안도감에서 일것이다. 

 

잠결에 음악을 들으면서 자꾸 황인찬시인의 [무화과 숲]이 떠올랐다.

그 시가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詩일줄이야...

 

 

쌀을 씻다가(일상적 생활에서)
창 밖을 봤다(문득 지난날을 생각을 했다,)

숲속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옛날 생각으로 이어지는 매개체)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과거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지금은 망각속의 사람)
옛날 일이다(그저 옛날 일일 뿐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산다는게 특별난게 없지. 평범하게 사는게 제일이지)

밤에는 눈을 감았다(또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이제 누군가를 사랑해도 현실에서 남들에게 지탄받는 행위나, 사랑은 하지말자)

 

황인찬시인의 시가 대체로 가슴이 아려오면서 애상적이다.

두 편을 더 싣는다.

 

 

책상을 가운데 두고 너와 마주 앉아있던 어느 겨울의 기억

학교 난방 시설이 온통 고장 나는 바람에

입을 열면 하얀 김이 허공으로 흩어지던 저녁의 교실

네가 숨을 쉴 때마다 그것이 퍼져가는 모양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는 생각

뭐 보느냐고 네가 묻자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너, 라고 대답하고 말았던 그 날

- 황인찬, 겨울 메모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 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은 내가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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