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강화도 여관 - 심재휘

Chris Yoon 2023. 1. 30. 01:17

 

 

강화도 여관             심재휘

 

 

나는 떠날 때부터 이 강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마지막 단추를 꿰며 닥쳐올 산책과 해안도로 너머의 일몰을 예감하듯

그곳으로 떠나는 우리의 여행은 지나치게 즐거웠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어느 생애와

눈을 떠도 감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생애만 있을 뿐이었구요

 

나는 그곳의 달빛 속에 당신을 몰래 버리고 왔습니다

 

나는 이 강의 어느 먼 기슭쯤에 살며 오늘도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바닷물이 밀려오거나 혹은 밀려나갈 때처럼 무수히 나를 용서하세요

 

내가 천천히 흘러 강 하구에 이르더라도 다시 그 섬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달빛에 떠도는 섬 하나는 되겠습니다

 

강화도 바닷가의 어느 바람 부는 여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대를 생각하겠습니다

그 곳에는 세상의 모든 이별들이 다 모여든다지요

 

그 곳의 달빛은 너무 밝아 슬프다지요

 

 

 

강화도는 대한민국 경기만에 있는 섬이다.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넓은 섬으로,

면적은 302.6 km²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해 있으며, 동쪽으로 경기도 김포시와 도로가 직접 연결되어 있다.

강화도는 유배지의 상징이었다.

살려두기는 위험하지만 죽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많은 인물들을 유배를 보낼 때 강화도로 보냈었다.

고려의 희종에 이어 조선의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준등이 이 곳에 유배되었으며,

철종은 왕위에 오를 때까지 어린시절부터 강화도에서 살았었다.

광해군은 형인 임해군과 동생인 영창대군을 여기에 유배시켰다가 자신도 인조반정으로 여기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의 상징이었던 강화도가 지금은 다리가 놓여 가기가 쉽고 전등사, 보문사등 이름난 사찰들과 속속들이 모텔과 펜션들이 들어섰다.

나와 그는 강화도로 곧 잘 들어가서 석양을 기다렸다가 수평선으로 빠져드는 해를 찍고 말없이 추운 밤바닷가를 걸어나왔었다.

해가 바닷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어둠이 깃들고 강화도를 빠져나오면 가로등이 켜지고 돌아오는 길은 애수와 서글픔으로 무거웠다.

...............................

그토록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여행.

나는 그 여행이 좋았다.

그러나 그는 그 무거운 여행을 혼자 하고싶었는지 모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어느날 나는 그를 강화도에 유배시키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떠날 때부터 이 강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고 있었고

천천히 마지막 단추를 꿰며 닥쳐올 산책과 해안도로 너머의 일몰을 예감하듯

그 곳으로 떠나는 우리의 여행을 지나치게 즐거워했었다.

세상에는 오직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어느 생애와 눈을 떠도, 감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생애만 있을 뿐이었고 나는 그곳의 달빛 속에 그를 몰래 버리고 왔다

아니,... 그가 혼자 그곳에 남아있기를 원했다.

나는 오늘도 먼 기슭쯤에 사는 그에게 편지를 쓴다

바닷물이 밀려오거나 혹은 밀려나갈 때처럼 무수히 나를 용서해라. 내가 천천히 흘러 강 하구에 이르더라도, 다시 그 섬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달빛에 떠도는 섬 하나는 되고말것이다.

강화도 바닷가의 어느 바람 부는 여관. 아직도 나는 너를 생각한다.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이별들이 다 모여든다지?.

그곳의 달빛은 너무 밝아 슬프다지?.

잘 지내거라. 그곳에서 건강하고...

 

 

 

Photo / Copy :: 尹馝粒 (윤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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