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Life story

보리굴비

Chris Yoon 2021. 11. 4. 05:28

 

 

보리굴비            윤필립



긴 겨울 지나고 얼굴에 버짐피며 기력떨어지면

내 손자 봄 탄다고 보리쌀 단지에서 굴비 꺼내오셨지

그 놈 잘게 찢어 내 물말은 밥숫가락 위에 얹어주셨지

다 먹고 나면 아깝다며 대가리와 가시를 곱게 발라 드셨지
이제 할머니는 먼 길 가시고
나는 백화점에 가서 비닐끈으로 엮은 굴비사다 먹는다

눈발이 어지럽게 날리는 섣달 그뭄 밤

눈발 휘날리는 송파대로 내려다 보는데
뜨거운 가슴으로 왈칵 밀려드는 그리움,

군데군데 검버섯 피고 그 꺼칠꺼칠한 손으로 손자 하나 거뜬히 키우시고 훌훌 가셨으니
백화점 가서 굴비보면 눈물나고 겨울밤에 보리굴비 구우며 눈물 훔친다.

 

 

 

 

보리굴비의 내력 :: 굴비 건조시 나오는 기름성분으로 인해
냉동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여름철 굴비의 기름기가 나오는걸 방지하기 위해

통보리속에 넣어 보관했다가 먹었는데

이것이 보리굴비라 한다

 

보리굴비의 조리법 ::
보리굴비는 참 맛을 즐겨야 제격이다

천일염으로 간을 한 후에 앞뒤로 모양을 다듬어 말려

보리쌀독에 넣어 오랜 시간 꾸덕꾸덕 잘 건조 시켰기 때문에

짜지가 않고 빛갈도 노랗다

다른 양념 하지않고 그대로 구워 곱게 찢어서 녹차물을 약간 우려낸 물에 밥을 말아 얹어 먹으면

구수하고 담백한 육질 맛이 그만이다

 

 

 

나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 연유야 어찌되어 그리되었던간에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모두 할머니에게 교육받으며 자랐다.

 

할머니는 풍양 趙氏의 집안에서 태어나 그 시절, 여성으로서는 언문(諺文)과 진서(珍書)를
모두 깨우치신 보기드문 여성학문가 이셨다.
" 이 녀석아, 양반은 죽어도 개 헤엄은 안치는 거란다."
엄격하셨던 할머니, 지금 생각해보니 내 양반수업은 아주 어린 그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훗날 할머니의 가르침이 가서는 안될 길은 여지없이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족쇄로 남았다.
세상이 바뀌며 이리저리 세상을 옮겨 다니며 할머니와의 끈질긴 운명이 계속 되다가
할머니가 세상을 하직하시고 나는 세상의 모리배 잡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내동댕이 쳐져
거친 풍랑의 세월을 살아 내야만 했다.
그리운 할머니...


사진설명 /

어린 시절의 그 긴 시간을 손목을 잡혀 이리저리 다니며 늘 함께 했으면서
나의 할머니의 사진은 단 한 장만 남아있다.
저 때가 내 나이 몇 살이었던가? 곰곰 생각해보니 다섯살 쯤 되지 않았을까? 미루어 생각된다
어렴풋이 생각난다. 세도가 당당하던 자유당시절, 경찰서장 아들을 두신 덕택에 곱게 모시한복을 입고
사진관에 가서 독사진을 박으시던 날이었는데 워낙 귀하게 여기시는 손자라 함께 한 장을 더 박으셨었다
할머니는 하얀 모시옷에 은비녀로 쪽을 찌셨고 나는 당시에도 까까머리가 아닌 상고머리에
나이론 남방셔츠를 입은 귀한댁 도련님이었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두 손을 얌전히 무릎위에 올려 놓는 메너까지 보였다
물론 그때의 사진촬영은 사진사가 한 손으로는 릴리즈를 들고 또 한 손으로는 화약을 들고 서서
렌즈를 보게 한후, '펑'하고 화약을 터뜨려서 조명을 터뜨리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