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의 선물
까치밥으로 남아있던 빨간 감들도 이제는 거의 다 떨어진 엄동설한.
오늘도 또 눈이 내린다.
아파트 경비원의 인터폰을 받고 문을 여니 감 두 상자가 배달되어 왔다.
장성 백양사 곁에 사시는 어느 지인이 보내주셨다.
이틀전,
- 선생님, 감 좋아하세요? 라는 전화를 받은 일은 있지만
이렇게 두 상자나 보내 주실줄은 몰랐다.
불가에서는 베푸는 것을 보시 [dana, 布施]라고 한다.
나는 전생에 무슨 보시를 했길래 이승에서 이런 뜻하지않은 행복을 누린단 말인가?
박스속에 든 홍시될 감들을 꺼내 하나 하나 닦아 바구니에 넣어 집안 구석 구석에 놓아두었다.
무채색이던 집안이 홍조를 띄우며 금방 화색이 돈다.
밖에는 눈이 푸설푸설 내리는데 온통 집안은 따스하다.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가 아니라 내 생각을 하며 감을 보내주신 지인을 생각하니 따스한 것이다.
하늘은 눈을 머금어 흐리지만 참 맑고 투명한 눈 오는날 아침이다.
- Chris Nic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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