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잠실, 125층 고층 건물이 들어선 땅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잠을 잔다
진눈개비처럼 적시던
땀에 젖은 육신을 눞히면
잠실땅은 그 옛날의 섬처럼
한 척의 배가 되어 둥둥 떠다닌다
잠실...
누에 蠶, 집室...
누에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고
큰 누에 하나가 내 등을 타고 오른다 어둠속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눈들 속에서
누에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나도 한마리 누에가 되어 고개 흔들며 천정을 쳐다보곤 했다
가물거리는 잠결에
누에가 내 몸뚱이를 핥고 지나가면
저릿저릿 기이하게 밀려오는 쾌감
의식만 떠다니는 누에의 집에서
잔기침 쿨럭이며 일어나 창밖을 내려다보면
날개단듯 강남으로 달려가는 자동차들의 긴 행열
어두운 밤, 몽유병자처럼 일어나
발코니에 서서 낯익은 거리를 향해 자행했던 수음(手淫)
저 아래 피어나는 어느 벚꽃잎에 묻혀 놓았을까
벚꽃잎 휘날리는 어느 봄날 아파트 광장을 걷다가
곤하게 잠든 어린 나를 본다
눈 오는 날 누에의 집에서 잠이들면
누에 뽕 갉아먹는 소리에 잠을 깨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고층빌딩의 불빛들이
수런수런 이야기를 건넨다
이런 겨울날은 차라리 우울한 음악이라도 들어야겠다
이 쓸쓸하고 황량한 겨울날, 술이라도 가슴에 들이 부어야겠다
벌써 몇일째 흐린 회색빛 하늘에선 푸설푸설 눈발이 휘날린다
차라리 눈이 오려면 쏟아지고 말던지...
주방에서 내다보는 겨울풍경이 눈물나도록 情겹다
몇 해전 가을, 어느 여성에게 '주방에서 내려다보는 메이풀단풍길이 좋아요. 그래서 저는 주방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이렇게 고백했더니돌아오는 답은 '섹시해 보인다'는 거였다
왜 남자가 주방에 서있으면 섹시하다는 걸까?....
혼자 마시는 술은 외롭지만 그 속에는 말 할 수 없는 무한의 욕구(慾求)가 숨을 쉰다
욕구... 영어로 이야기하면 Want다
본능적, 충동적으로 뭔가를 구하거나 얻고 싶어하는 생리적, 심리적 상태...그래서 혼자 술을 마시다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주방의 식탁, 블랙그래스위에 술병을 놓고 자동셧터를 걸었다
그렇다. 어둡게 불이 꺼진후, NUDE가 있는 방은 왠지 그 사내만의 비밀이 있는듯 하다
종이 위에 시를 쓰고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자취없는 허공에 인간들은 시를 쓴다고 어느 시인은 이야기했다
그러나 너는 나에게... 온 몸에다 시를 써다오
그리고 내 허리 깊은 계곡에 술을 붓고 핥아다오.
- Chris Nic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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