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國이 내다 보이는 가을
아이들 부르는 소리,
밥 짓는 소리,
개짓는 소리,
젊은 부부가 교합하는 소리,...
건넛동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선 천국의 소리가 들려온다
다른게 천국일까, 바로 저게 천국이지
가을이 깊어간다
주방에서 내다 보이는 메이플 트리 가로수길에도 단풍이 절정인듯 아름답다
창가에 소국을 한웅큼 꺾어다 술잔에 꽂아 놓았더니 그 풍미가 더하다
그 너머 맞은편,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는 오늘도 진지한 삶이 펼쳐지는듯 요란스럽고 떠들썩하다
그들의 베란다에 내걸어놓은 살림살이들이 리얼하고 건강한 삶을 보여주는듯 하다
나도 15년전에 저들과 함께 저곳에서 살았었다
그때, 머리가 많이 아팠고 불면으로 잠을 못 이루며 새벽마다 베란다에 나와 담배를 피웠었다
그때 보았던 풍경들...
건너편 큰 평수의 동에서 사는 사람들은 움직임마저 달랐다.
느릿느릿하게, 푸른 형광등 아래 수초사이를 헤엄쳐 다니는 수족관의 열대어들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세차가 잘돼 번들거리는 외제차를 타고 내려 경비원의 인사를 옆으로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네의 공간으로 유유히 사라져 들어갔다
분리수거를 할때도 그들이 내놓는 빈 상자들은 사뭇 달랐다
포장지도 형형색색 화려하게, 다른 외제상자가 나오는가 하면
국내에 몇 명밖에 안남았다는 장인들이 직접 만든 질좋은 오동나무나 죽제품 상자도 아까운줄 모르고
내놓는게 다반사였다
무엇보다 악다구니치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시간이 멈춰 선듯하여 보였다
나는 어두운 베란다에서 흡연을 하며 그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또한 저곳으로 건너 뛸 챤스를
호시탐탐 엿보며 수직이동할 날을 꿈꾸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아방궁은 나이가 든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인지라 이동확율도 거의 없었고
설사 이동이 있다쳐도 전세나 옮겨 들고나며 비싼 집값에 엄두도 못 낼, 하늘의 별처럼 멀기만 했다.
그러다가 I.M.F.... 온통 세상은 진통을 겪듯 요란한 경제 한파를 맞았지만 나에겐 천운이 왔다
급히 돈이 필요한 경영인이 집을 내놓았는데 어렵사리 밤잠을 못자고 궁리하다가 요행히 모든걸 털어
내가 옮겨 갈 수가 있었다
이제 세월도 흘렀고 나도 나이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건너편에 살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것을 느낀다
어린 아들이 학교에서 병아리를 사와서 기르며 복도에 풀어놓고 뛰어 다니며 마라톤을 시킨다고
수험생 부모에게 항의를 받고 사과를 다녔던 곳.
몇 걸음만 걸으면 싱크대, 몇 걸음만 걸으면 거실, 소파,... 동선이 짧았던 공간
젊은 아내와 수없이 몸을 나눴던 침대가 놓였던 제일 큰 방.
내가 꿈 꿔온 건넛동으로 수직이동을 끝내고 나는 완전히 중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가을이 깊다
깊은 가을마저 못 느끼는듯 아이들 소리, 요크셔테리어 짓는 소리, 악다구니를 쓰는 소리들이
어울어지는 건넛동의 작은 평수 아파트의 삶들이 젊고, 싱싱하고, 건강하게 눈에 들어온다
아! 천국은 저런 것, 저런 것이 진정 천국이다.
Chris Nic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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