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나무 이야기 31

겨울비 내린 새벽에 나무는...

겨울비 내린 새벽에 나무는... 새벽부터 겨울비 내리고 바람 스산한 날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비오는 광장을 내려다보다가 우산을 받고 겨울나무 아래로 가보았다. 검게 마른 겨울나무 가지에 빗방울이 맺혔다. 이 비 그치고나면 봄이 오겠지. 가만이 나무아래 귀기우리면 꽃봉오리를 만들기 위해 힘차게 물을 빨아들이는 나무의 심장소리 들린다. 아! 나도, 나무도...죽지않고 긴 겨울을 보내었구나 Jim Chappell - The Rain

回鄕(회향)

나에게 미루나무 하나 있었다 여름날 그곁을 지나면 잎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가 물소리처럼 아름다웠다 맑은날은 햇빛에 반짝이는 잎들이 저마다 살랑거리며 빛을 발했다 나는 그 아래에 서서 눈을 감고 미루나무에서 나는 소리를 한참씩 듣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내 아들이 그 아래에 서서 눈을 감고 미루나무 소리를 듣는것을 보았다 - 아빠, 물소리가 들려 미루나무 소리, 내 아들의 아들도, 또 그 아들의 아들도 먼 훗날, 미루나무 소리를 들을것이다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다. 유년시절, 저녁무렵이면 새들이 날아와 재잘거리던 키 큰 미루나무가 서있던 고향.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을 종로5가에서 돈암동까지 전차가 다니던 중간지점, 삼선교(三仙僑 : 지금의 성신여대 앞)에서 보냈다. 삼선교에서 버스를 내려 ..

Lonly Tree (그 나무 한 그루...)

어느 봄날 나무는...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 시 / 황지우 시 중에서 몇 줄 발췌 - - 사진 / 내 나이 스물여덟살 적 There was a boy A very strange enchanted boy They say he wandered very far, very far Over land and sea A little shy and sad of eye But very wise was he And then one day A magic day ..

눈 내린 날의 Meditation 2 / 가시나무

가시나무 고통은 어디서 오느냐고 내안의 고통에게 물었지 내안의 어둔 그늘 속에 숨어 가끔씩 얼굴을 내미는 고통에게 슬픔은 어디서 오느냐고 내안의 슬픔에게 물었지 내안 마음의 문 뒤에 숨어 가끔씩 눈물을 비치는 슬픔에게 고통은 또 다른 사랑이냐고 내안의 아픔들이 물었지 때때로 내안에서 걸어나와 다른데로 이사가는 옛 고통에게 슬픔은 또 다른 축복이냐고 지나는 바람에게 물었지만 네안에 대답있다. 대답있다고 말하네 가시나무새는 일생에 단 한번 죽기 직전에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웁니다. 그 새는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단 한번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가시나무를 찾아 다닙니다. 그러다가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찔려 붉은피를 흘리며 이 세상 생명..

눈 내린 날의 Meditation 1 / 雪木

밤 새 내리고도 모자라 눈은 계속 내려 새벽까지 쌓였다 어두운 길을 떠나 눈쌓인 나무를 찾아간다 나, 그 속으로 들어가 나무의 영혼이 되고싶다 어디선가 나타난 나무같이 푸르른 청년 '제가 찍어 드릴까요?' 셀카를 찍는 나에게 다가온다 그 목소리, 나무의 소리이고 그 얼굴, 나무의 모습이다 밤 새 눈이 많이 내렸다. 올 들어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렸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주섬주섬 카메라 장비를 메고 집을 나섰다. 눈은 아직도 내리고 바람이 불적마다 나무가지에 얹혔던 눈들이 눈보라를 일으킨다. 새벽마다 명상겸, 산책을 하는 공원은 또 다른 세상. 雪木을 촬영하고 카메라를 돌려 셀프촬영을 하는데 '제가 찍어 드릴까요?'하는 젊은 목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소리를 낸다면 이런 소리였으리라. 그는 짧..

자귀나무 혼자 비를 맞는 밤

새 울음소리 낭자하던 자귀나무 혼자 비를 맞는 밤 지난날 네 젖은 몸, 깊은 곳, 자귀나무가 있었다 오늘은... 자귀나무 혼자 비를 맞는다 - 강인환의 '비의 향기'에서 발췌 자귀나무 / 英名으로는 Mimosa Tree. 異名으로는 합환목(合歡木)·합혼수(合婚樹)·야합수(夜合樹)·유정수(有情樹). 꽃말은 . 꽃이 품고있는 의미들이 상당히 에로틱하다 사실상 그 이름이 품고있는 의미대로 예전에는 집 마당에 자귀나무를 심었으며 이 꽃을 베갯잇에 넣고 자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고 해서 여인네들은 수줍게 이 꽃을 따다 남편의 베갯잇에 몰래 넣었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넣어봐라. 나이들면 다 쓰잘데없는 짓이고 용빼는 재주없느니... 오늘같은 날, 자귀나무 혼자서 비를 맞는다

Autumn, esprit - 나무

가 을 나 무 들 은 살 아 남 기 위 해 잎 사 귀 를 버 린 다 나무는 맑고 투명하게 살아간다 새벽이 오면 온 몸은 달빛과 이슬로 젖는다 춥지않느냐고 손잡으려하면 아무말 없이 돌아 눕는다 그런데... 그러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왜 눈물이 날까?... 비바람 드세게 부는 날에도 나무는 온몸을 떨면서 나지막이 작은 신음소리만 낸다 그리고 이틋날 해가 떠오르면 생의 아픔과 시련을 남몰래 제 몸 속에 나이테로 새긴다 그속에 새들이 집을 짓고 깃을 턴다 나무는 많은걸 안고산다 나도 나무처럼 많은걸 안을 수 있다면.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

몽촌토성의 Lonely Tree, 그리고 빈 의자 하나

세상을 살며 많이 싸웠다. 마음에 안들어서 싸웠고, 부당해서 싸웠고, 손해보는것 같아서 싸웠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나도 나이가 먹은것을. 내가 의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산다는 것은 다른 이, 누군가에게 의자가 되는 것이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의자 / 이정록 언제부터 였을까? 내 가슴속에 ..

11월의 나무 - 황지우

11월의 나무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황지우·시인, 1952-) 11월. 나뭇잎이 많이 떨어진다. 나뭇잎을 떨구는 11월의 나무는 패배한 것일까? 여름내..

천년 은행나무의 말씀 - 김영선

천년 은행나무의 말씀 김영선 무겁고 화급할 때 그 부처님 찾아가면 그저 놓으라고만 하시더니 천태산 영국사 부처님도 하냥 같은 말씀이시라 본전도 못한 어설픈 장사꾼처럼 터덕터덕 내려오다 마주한 천년 은행나무, 멀거니 한참을 올려다보고 섰는 나에게 눈주름살 같은 가지 가만가만 흔들어 하시는 말씀, 견뎌라,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외로움도 견디고 오금에 바람 드는 참혹한 계절도 견뎌라 밑 드러난 쌀통처럼 무거운 가난도 견뎌라 죽어도 용서 못할 어금니 서린 배신과 구멍 뚫린 양말처럼 허전한 불신도 견디고 구린내 피우고도 우뭉 떨었던 생각할수록 화끈거리는 양심도 견뎌라 어깨너머로 글 깨우친 종놈의 뜨거운 가슴 같은 분노도 꾹 누르고 싸리나무 같은 가슴에 서럽게 묻혔던 가을 배꽃처럼 피어나는 꿈도 견뎌라 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