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南 Europe

스페인 여행기 / I need Spain

Chris Yoon 2021. 10. 22. 00:21

 

 

스페인에 발을 딛고나서 여행지를 찾아 떠돌며 내 정신의 영역과 시야를 사로 잡는 것이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하며 버스 창밖을 내다보면 커다란 황소 빌보드가 가끔씩 보였다.

가끔씩 LOGO Book에서 보았던 눈에 익은 캐릭터(Character)였다.

검은 황소가 투우경기를 앞두고 우뚝서서 의연하게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어느날 스페니쉬언에게 '저 황소 캐릭터는 어느 기업의 상징인가'를 물어보았다.

그 사내의 대답은 이러했다. '저 캐릭터는 지금은 사라진 어느 기업의 상징물이다.(osborne_logo)그러나 기업은 없어졌어도 눈에 익은 저 훌륭한 상징물을 스페니쉬언들은 좋아했다. 그리하여 국가에 저 상징물을 계속 남겨달라고 청원을 하여 지금은 상표가 아닌 비쥬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 황소는 이젠 스페인의 국민, 그 중에서 남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한때 스페인은 유럽을 장악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전쟁을 하여 승리를 거두고 유럽의 나라들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두었었다.

그토록 스페인의 남성들은 황소처럼 강한 사내들이었다.

그런 사내들의 피가 흘러 오늘의 몸이 날렵하고, 쾌활하게 잘 웃으며 말(言語)이 빠른 매력적인 사내들이 되었다.

나는 저 황소 캐릭터를 계속 사랑할 것이다. I need Spain.

Need : 뇌 속에 존재하는 힘을 나타내는 가설적인 구성개념으로서 그 힘은 내적·외적으로 충동된 힘으로 나타나면

다른 심리적 과정을 조작한다.

 

 

Osborne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씩 마주치는 검은 황소 간판에 대해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야겠다. 황소 간판은 영국인 토머스 오스본(Thomas Osborne)이 안달루시아의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Jerez de la Frontera.)에 세운 브랜디 회사 오스본의 광고판이다. 검은 황소 간판을 `토로스 오스본(Toros Osborne. 오스본 황소)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14m 짜리 철제 간판은 스페인 본토는 물론 카나리아 제도와 북아프리카의 스페인 영토 메리야(Melilla)에 이르기까지 총 94개가 설치돼 있다.

1957년 처음 설치하기 시작한 토로스 오스본은 흰색 뿔과 배에 `Osborne`이란 Logo 글씨를 단 4m짜리 나무간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무지에서의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곧잘 넘어지자 오스본은 7m 짜리 철제간판으로 토로스 오스본을 모두 교체했다.

곧 스페인의 명물로 떠오르게 된 토로스 오스본은 프랑코 독재정권의 상징으로도 사용됐다.

(카탈루냐를 여행하는 동안은 토로스 오스본을 보지 못했는데 프랑코 정권의 모진 탄압을 받았던 카탈루냐엔 지금도 검은 황소 간판이 하나도 없다.)
프랑코 독재정권이 끝난 1980년대 토로스 오스본은 멸종위기를 맞게 된다.

새로 들어선 사회주의 정부는 `미관을 헤친다`는 이유로 검은 황소 간판의 철거를 명했다.

그러자 수 천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고, 결국 스페인 정부와 오스본사는 황소 배 부분의 `Osborne` 글자를 지우고 지금의 블랙 사인보드만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토로스 오스본은 이제`비공식 스페인 국가 심볼`로까지 대접을 받게 되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먼 새벽에 나는 스페인을 떠난다.

진정한 여행이란 머물러 있던 장소를, 잠자리를, 식당을 옮겨 다니는 것이다.

강은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늪이 되고 썪는다.

먼 길을 다니느라 내 발은 늘 물집으로 부르터 있기 일쑤였고 새끼 발톱은 이미 빠졌다.

그러나 한시라도 내 눈과 귀가 열려있지 않은 적 없었으니...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늘 오늘의 스페인을 잊지못할 것이다.

 

 

가슴 깊은 언어는 나눌 수 없었지만 그들의 하고자하는 말을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

생각지 않으려 애써도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생각날 사람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앞으로의 내 인생에 남아 가슴속에서 저물어갈 사람들,

그 사람들을 떠나 헤어진다는게 못내 서운하고 아쉽다.

태양이 떠오른다.

그러나 어제의 태양이 아니듯 오늘의 태양은 또 새롭다.

내 남은 인생, 늘 새롭기를.

 

 

이제 나는 러시아로 가서 노르웨이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으로 갈 것이다.
새벽에 길을 나설때 머리위에 떠있던 노란 달이 내가 탄 비행기 아래에 떠서 나를 따라온다.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