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은 스페인어로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라고 이름 지어진 성당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의 설계로1882년에 착공하여 134년의 긴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 완공되지 않고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며, 완공이 되면 가로 150M, 세로 60M, 높이 170M로,13,000명을 수용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성당이 될것이다.
전체적으로 미완의 건축물이지만 본당의 외벽과 내부는 거의 치장이 끝나 있는 상태다.
바로셀로나 시내에서는 사람들이 한 곳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가리키고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면 바로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을 볼 수 있다.
성당은 마치 규모가 큰 조각 전시장을 보는듯하다.기종의 관념에서 벗어난 창의적이고 재기가 넘쳐 흐른다.
- Waw! 정말 놀랍군요. 사진으로 보던것과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나는 옆에 서있던 사람에게 말을했다. 그 사람은 말없이 그냥 빙긋 웃고만 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무척 낯익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다.
그렇다. 그는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를 신기하게 닮아있었다.
-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는 내게 물었다.
나는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디에고(Diego)'라고 소개하며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Chris라고 나를 소개하고 그와 함께 성당구경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잘 생긴 친구와 미술관이나 성당을 산책한다는 것은 매우 기분좋은 일이다.
성당은 입구부터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좌 /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 우 / 디에고(Diego)
여행자들로 붐비는 성당입구
일찌기 가우디(Antonio Gaudi 1852~1926 )는 1883년부터 40년 이상을 이 교회의 건설을 책임졌으며, 말년의 15년간은 여기에만 매진했다. 착공의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당시 카탈루냐의 시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카탈루냐 지방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사회주의적인 사상도 팽배했는데, 마르크스가 했던 '정신은 물질의 생물학적 부산물이다.'라는 말처럼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들을 파괴하였다. 그래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가우디는 카탈루냐 지방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이를 속죄하기 위한 성당을 계획하게 되었다.
가우디는 자신의 대표작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을 통하여 한 도시의 지형적, 문화적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높이 170M의 이 건축물은 바로셀로나의 스카이라인(산이나 건물이 하늘에 그리는 윤곽)을완전히 바꿔놓았다.
가우디 건축의 특징은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은 반드시 유지하되 그 외형과 내부공간을 어떻게 구성하여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시킬까?... 하는 것이었다.
흔히 건축물이라고 하면 고정되고 딱딱하고 위치가 바뀌지 않을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마치 금방이라도 움직일듯한 모양새다.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이 성당은 여타 성당과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한 형태와 장엄한 스케일, 혁신적인 구조, 섬세한 장식 등이 특징이다.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는 본인 사후에도 지속적인 건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많은 도면과 모형을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사후 100주년을 맞는 2026년에 완공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선두로 하여 그의 독창적인 건축물들은 바르셀로나 곳곳에 살아 숨쉬며 현재와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다음 세대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는 1882년 성 요셉 축일인 3월 19일 가우디의 지휘 아래 착공됐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고자 했다. 당시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다.
가우디는 1926년 6월 사고로 목숨을 잃기 전까지 여생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에 바쳤다.
특히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에는 현장 사무실에서 인부들과 동고동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은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다. 1953년에 작업이 재개됐지만, 공정률은 약 65%에 불과하다.
2010년 11월에는 미사를 위해 성당 일부가 개방됐으며, 개관식에는 교황이 참석하기도 했다.
건축기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로 '동시대에 비견될 다른 건물 이상으로 복잡해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35년 스페인 내전으로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에 와서야 다시 공사는 재개되었다. 1926년 가우디가 죽은 후 미완성 건물 일부와 성당 모형이 스페인 내전 와중에 부서지기도 했다.
또한 건축가가 사망한 상태에서 남아있는 불완전한 설계도를 해석하여 건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성당 건축의 완성도를 위해 꼼꼼한 과정을 거치는 것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적은 인원으로 공사를 진행시키기 때문에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량의 자본조달과 인력조달만 된다면 현대의 기술로는 성당 건축에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이유는 없다.
또한 바로 그 점이 역설적으로 관광 세일즈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성당 건축비는 상당부분 관람비에 의존하기 때문에 관광객의 유치는 건축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스페인 정부에서는 최근에 가우디 서거 100주년이 되는2026년까지는 완공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발표를 했으며, 장비와 인원을 늘려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완공까지 22세기는 커녕 200년이 더 걸린다는 말이 나오는 시점에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치밀한 완성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 인원과 충분한 시간을 통해 작은 부분을 조각하는 것에 있어서도 충분한 검토 후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금과 건설 인력은 충분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간과 디자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손대지 못하지 못하고 계속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Façade
파사드( Façade: 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 부분을 말함)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파사드가 세 개 있는데, 그중 두 개만 완공됐다.
각 파사드에는 각 4개씩의 첨탑이 세워져 총 12개의 첨탑이 세워지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12사도를 상징한다.
이외에 중앙에 세워지는 170m의 가장 큰 탑은 예수를 상징하고 탑과 탑을 이어주는 돔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고 있다. 또 별도의 돔 4개는 4명의 복음 성인,(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가정'을 보여주고 있다.
각각 파사드에는 이름에 걸맞는 성서의 내용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가우디가 감독한 파사드는 예수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한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cade)'이다.
좌측 파사드는 폴라 델 빌라르라는 건축가가 완성하였고 '고난의 파사드(Passion facade)'라고 불리운다.
고난의 파사드(Passion facade)에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의 내용들이 조각되어 있다.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 경직되고 앙상한 느낌으로 제작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의 첨탑은 높이가 170M이다.
모두 100M가 넘는다. 또 중앙 돔 외에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140M의 첨탑도세워지는데 재료가 모두 석재인데 가우디가 죽은 뒤 1952년 까지는 작업이 중단되었다가1953년부터 건축을 재개하였으나 석재가 부족하여 그 뒤로는 석재대신 인조 석재와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다.
후에 예수를 상징하는 첨탑이 성당의 가운데에 가장 높게 위치하게 된다. 이는 몬주의 언덕이 171M라는 점을 감안한 것인데, 하나님이 만든 것을 넘봐서는 안된다는 가우디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좌 / 성당 전면 :: 우 / 성당 후면
'가룟유다의 입맞춤'의 스케취와 실물 묶여있는 예수
성당 내부는 숲속을 걷는 듣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상당히 이색적이다.
특히 내부의 색은 흰색인데 이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햇빛에 비치면 그 색을 그대로 벽면에새겨지도록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동쪽면의 나시미엔토 면의 조각들은 가우디 조각했는데 여기에 인물상들은 모두 가우디가 살던 동네의 사람들을 일일이 석고로 본을 뜬 후, 그대로 조각해서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이 방법은 Life Mask라고 해서 사람의 얼굴에 석고를 발라서 굳힌후 떼어내 그 틀속에 돌가루를 넣고 굳혀 겉의 석고는 깨어 버리는 방법으로 미술대학 조각과 3년생이 되면 누가 가르쳐 주지않아도 많이들 하는 방법임.)
가우디가 제작한 파트가 바로 나시미엔토 면이며, 이 부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반대쪽에는 가우디가 죽고 30년 후에 '세 마리다 수비라츠'라는 모더니즘 조각가가 조각을 했다. 그래서 가우디가 설계한 파트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가우디가 실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본 떠 묘사했다면 수비라츠는 간결하고 직선을 주로 사용하여 묘사했다.
가우디 성당의 조각들-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하나님이 만든 선이다 - 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의 건축 형태는 모두가 곡선 형태이다.
이는 그 당시의 서구 건축역사에서 보기 드문 개념이었다.
고딕 양식 특유의 부벽에 대해 '보기 딱한 목발'이라고 불렀던 가우디는 부벽을 덧붙이지 않으면서 건물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곡선 형상에 적합한 구조 역학까지 배려해 건축을 진행했다.
그는 성당의 모형을 만들기 전, 실을 천장에 매달고 모래 주머니 또는 납추를 중간중간에 매달아 휘어지는 강도를 측정했는데, 이 작업을 통해 그가 원하는 곡선이 도출되면 설계에 반영했다.
자연을 사랑한 가우디는 디자인의 모든 소재를 자연에서 가져왔다.
해, 달, 바다의 파도, 미역, 소라, 조개, 바위, 나무등의 다양한 모양을 보고 디자인을 착상했다.
또 천장을 받치는 기둥은 둥치와 나뭇가지를 형상화 했으며 대칭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특히 바르셀로나 북부에 있는 아름다운 산, 몬세라트산(Montserrat)은 그에게 무척이나 큰 영감을 주었다 한다.
특히 해가 질 무렵 붉은 노을을 받았을때 성당의 모습은 황홀경 그 자체다.
나는 해가 질 무렵을 기다려 그가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에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과연 황홀했다.
나는 그곳에서 내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었다. 나는 성당앞에서 만나 이곳까지 온 디에고에게 촬영의도를 설명하고 카메라를 넘겨줬다. 그는 심오하게 빛을 관찰하더니 이내 내 말의 뜻을 이해하고 촬영에 성공했다.
이 사진이 로 그 사진이다.
어떤가! 천사들의 노래가 들려오는듯 하며 황홀한 경지로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지 않는가?
웅대한 성당 내부를 보면 성당은 전체적으로 십자가 모양이다.
완성이 되면 1만 3천명이 동시에 미사를 올릴 수 있다.
또 천장을 받치는 기둥은 둥치와 나뭇가지를 형상화 했으며 대칭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성당 지하에는 도면과 모형, 사진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고 한 편에는 안토니오 가우디 의 무덤이 있다.
유네스코는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인 구엘 공원과 카사밀라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과연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라며극찬했다고 한다.
성당은 어느 특정한 정부나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건설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건설초기에는 개인에 의한 기부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여행자들의 입장료로 얻은 수익금을 건설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상은 디에고(Diego)와 내가 각종 자료를 모아 정리한 것들이다.
디에고는 마치 몇 백년전의 안토니오 가우디가 환생한 것처럼 자신의 지식을 내게 자세히 설명해주며 이해를 도우려고 애썼다.
성격이 뭇 스페인 남성처럼 쾌활하고 잘 웃는 성격도 아니고 무척이나 과묵한 형인데 조금씩 미소를 지어가며 천천이 내가 알아듣도록 말을하며 배려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헤어진다는게 조금 서운했다. 그래서 헤어지기전에 그와 기념촬영을 했다. 그의 키가 하도 커서 내가 발뒤끔치를 약간 들었는데도 그의 키가 조금 더 크게 나왔다. 잘 생기고 분위기 있는 디에고는 어쩌면 안토니오 가우디의 망령이였는지도 모른다.
안녕, 디에고... 안녕. 가우디...
* 내일은 가우디가 성당을 짓기위해 영감을 받았다는 바르셀로나 북부에 있는 아름다운 산, 몬세라트山(Montserrat) 으로 떠나려 합니다.어떤 산이기에 가우디가 영감을 얻고 성당의 모습을 그렇게 꾸몄는지 보고, 몸소 체험해 보려고 합니다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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