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유년(幼年), 산토끼몰이의 추억

Chris Yoon 2023. 1. 13. 01:17

 

눈이 내린다. 소리없이 자욱히 나린다.

두고온 유년(幼年)시절의 고향이 그립다.

첩첩산중이었다.

 

독일의 세계적 작가인 헤르만 헷세가 그의 창작의 원천은 고향의 어린 시절의 숲속이었다고 말했다.

맞다. 고향, 유년시절, 자연을 모르고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아득한 어린시절, 삼한사온이 명확하고 눈도 많이오고 추웠다.

 

긴긴 겨울밤도 자고 아침 일어나면, 눈이 허리까지 쌓여 고립되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웃집끼리 눈길이 트이고 나면, 동네악동들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몽둥이 하나씩 들고 산토끼사냥에 나선다.

 

 

 

산짐승들도 며칠을 눈속에서 굶고나면 마을로 내려온다.

우리 악동 5~6명은 안전무장을 하고 꽤나 험하고 깊은 마을 뒷산으로 가서 흩어져 고함을 치며 토끼몰이를 한다.

 

그러다가 재수없는 산토끼가 나무 또는 바위틈서리에 숨어있다가 고함소리에 놀라 도망치면 우리는 신이나서 더욱 고함을 치며 따라가기만 하면 그놈은 영락없이 잡힌다.

 

아무리 도망쳐도 눈위에 발자욱이 있어 따라가면 끝장이다.

 

한 두시간 싸움을 하다보면, 그놈도 힘이빠져 바위틈속으로 숨어들고, 우리는 청솔가지를 꺾어 구멍입구에 놓고 연기를 피우고 몽둥이를 들고 기다리고있다가 튀어나오면 몽둥이로 내리치면 끝장이다.

 

그러나 그날은 재수가 없어서인지 몇시간째를 헤매며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나 헛탕이었다.

우리도 풀이죽어 내려가려고 하는데 바로 내 옆 낮은 도토리나무 속에 토끼란 놈이 숨을 죽이고 숨어있었다.

그때 나는 엉겁결에 몽둥이를 힘껏 내리치자 토끼란놈이 <쾍~ 쾍>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나는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된듯 '야! 토끼 잡았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사방에 흩어져있던 놈들이 '야, 임마. 거짓말 하지마!' 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 나는 산토끼 귀를 잡고 '야! 이래도 거짓말이야?'하고 휘둘러보니 놈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배가 불룩하고 살이 통통하게 찐 큰놈이었다.

 

초등학교 1년 선배가 <배가 부른걸보니 새끼를 밴것 같네>라고해서, 나는 <이크! 이것 잘 못 했구나>란 죄책감이 들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

 

 

 

우리 악동들은 토끼를 몽둥이에 매달고, 신이나서 노래를 부르며 저녁이 내리는 마을로 내려왔다.

1년 선배인 사덕이 형집으로 가서, 쌀을 거두어 밥을짓고 사덕이 형이 토끼를 잡았다.

나는 <토끼 새끼가 나오면 어쩌나>하고 걱정이되어 먼 발치서 가슴졸이며 쳐다 보았다.

 

시퍼런 칼로 배를 갈랐으나 다행히 새끼가 나오지않아 안도의 숨을쉬며 <형! 새끼가 없잖아>라고하니 <야! 순진한 널 좀 놀래주려고 거짓말을 했다. 겨울엔 토끼도 추워 새끼를 배지않아.>라며 날 보고 씩 웃었다.

 

우리는 큰 솥에 청무시를 빚어넣고 벌겋게 양념을 하여 연하고 기름기 하나없는 담백한 천하진미 산토끼국에 쌀밥을 함께 먹으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밤늦도록 놀았다.

 

이리도 산중에 자욱이 눈발이 쏟아지면, 그 시절, 유년의 친구들이 많이도 보고싶다.

벌써 몇명은 운명을 달리하고, 아직 마음은 산토끼몰이를하던 청춘이건만 인생은 황혼으로 저문다.

 

누군가 사는게 한바탕의 꿈이라고했지만 뒤 돌아보니 <인생이 참 별게 아니로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겨울, 봄, 여름, 가을> 사계절을 한 70~80번을 맞이 할 수 있다는게 기적이 아니고 뭐가 기적인가! 부처께서는 '사람이 하늘을 날고, 물위를 걷는것이 기적이 아니라 바로 배고푸면 먹고, 잠오면 잠드는 일상의 일들이 기적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아니한가. 우리는 바로 이 순간 순간의 기적을 행하며 살아 가면서도 별것 아닌듯 눈부신 삶의 찰라를 버리고 있는게 아닌지?...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