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이번 여름의 일 - 최지인

Chris Yoon 2022. 8. 19. 01:56

 

 

이번 여름의 일             최지인

 

 

시베리아가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날려버린 시간을 만회하려고 애를 썼다

 

운이 나빴다고도 할 수 있다

 

며칠째 두통에 시달리는 너에게

괜찮아질 거라는 말만

 

잠을 청하며 슬픔에 잠기곤 했는데

 

어제 집계된 감염자의 수와 두려움과 가난과 외로움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돈 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다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인데 다 늙어버린 것 같다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

 

이것은 모두 이번 여름의 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과 얼마나 멀어진 걸까

 

폭우가 계속되는 계절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피하는 걸까

 

 

- 최지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 2022)

 

 

 

이번 여름은 꼬박 거리에서 보냈다.

6월부터 시작된 항암치료를 받기위해 병원과 집을 오가며 마음 붙일데가 없었다.

오로지 일주일에 두대씩 맞아야하는 벨케이드와 스테로이드를 맞으며 병원 철제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퇴원을 하면 심한 빈혈로 고통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괜찮아질거라고, 반드시 일어설거라고, 끝내 살아남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하며 달랬다.

거울을 볼 때마다 야위어가는 내 몸이 보기 흉했다.

마치 아우슈비치 유대인수용소에 붙어있던 사진들처럼 뼈만 앙상한 몸은 피부도 검게 변해 있었다.

불면과 식욕부진이 왔다.

밤마다 잠을 자려고 애썼지만 잠은 오지않았다. 항암치료 주사에 대한 부작용이었다

 

장마가 왔다.

장마는 지루하게 두달가까이 머물렀고 온통 습기를 몰고다니며 기분을 나쁘게했다.

그 장마중에 대상포진이 왔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면역력이 고갈되어 대상포진이 필연적으로 왔다는 것이다.

대상포진은 치료를 받아도 소용없고 넉달째 계속되었다.

- 환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면역력이 제로일때 와서 제일 심하게 걸렸습니다.

의사는 신경을 차단하는 시술을 몇번째인가 해주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매일 끊임없는 뼈를 깎아내는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듯했다.

그래도 여름을 보내고나면 반드시 일어서리라고 다짐했다.

 

아직도 장마는 계속되고있다.

서울 강남이 물벼락 폭탄을 맞았다.

170년만의 홍수라고 뉴스에서는 난리였다.

아파트의 주차장엔 물이 찼고 전철역도 물에 잠겼다.

값비싼 외제차들이 높은 빌딩 숲사이로 둥둥 떠다니다 떠내려갔다

수해를 입은 차량만 100,000대라고 뉴스에 나왔다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번 여름에 생긴 일이다.

그 많던 길고양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尹馝粒(윤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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