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자리 - 조용미

Chris Yoon 2022. 8. 16. 01:14

 

자리                조용미

 

 

무엇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는 적막이 가득하다

 

절이 있던 터

연못이 있던 자리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

꽃이 머물다 간 자리

 

고요함의 현현,

무엇이 있다 사라진 자리는

바라볼 수 없는 고요로

바글거린다

 

 

 

흔적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숲이 우거지고 잡풀이 허리까지 자란 산중에서도 사람이 살다간 흔적은 남아있다.

편편하던 집터가 다시 풀밭이되어 남아있고 뒷뜰에는 유실수가 심어져있고

질그릇 깨진 조각들이 오래된 집터속에 묻혀있다.

寫友와 촬영을 다니다보면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터에 뭔가 흔적이 남은 자리가 눈에 띈다.

언젠가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를 촬영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 여기는 집이 있던 자리네요. 봐요, 저쪽에 집터가 희미하게 보이고 장독대놓았던 자리에 돌이 아직 몇개 남아있네요.

강원도 시골서 자란 寫友는 그 흔적들을 용케도 알아본다.

나도 자세히 보니 오래전에 사람이 살다간 흔적이 보인다.

그 주변엔 유실수도 심어져있고 가까이 맑은 개천물도 흐르고 땅도 제법 편편하게 다져져 있다.

누군가 이곳에서 농사짓고 살맞대고 살며 자식낳고 살던곳..

 

 

사람이 살다간 오래된 집터만이 흔적이 아니다.

절터가 있던 언덕에는 작은 주춧돌들이 딩굴고 무너진 탑의 기왓장이 한조각이 땅에 묻혀있고 한때 샘이었던 물줄기는 바위틈에서 솟아 내리고있다.

 

나는 산책길에 나무가 있었던 자리도 두어군데 알고있다.

내가 젊었던날, 나무들도 위풍당당했었다. 그 나무들이 폭풍우에 가지를 찢기고, 벼락을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는 가지가 베어지고 흉물스럽다고 뿌리까지 뽑혀버렸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나는 나무가 서있던 자리를 보면 왠지모르게 슬픔을 간직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작년에 꽃이 피었던 자리, 누군가 앉았다 떠나간 간이역의 벤취. 모두 눈물겨운 흔적들이다.

그중 제일 슬픈건 옆에 누군가 있다가 떠나간 빈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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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빈 자리를 언제까지 느끼며 앞으로 나, 어떻게 살아갈까?

 

 

- Photo, Copy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