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폐정 - 심재휘

Chris Yoon 2022. 8. 18. 01:16

 

 

폐정           심재휘

 

 

무너진 흙담에 둘러싸여 오랫동안 집터인 곳

사라진 집으로 누가 오셨는지

늙은 복숭아나무 잎들이

슬몃슬몃 문 여는 소리를 낸다

 

신발 한 켤레로 평생을 살다가 돌아와

이제 흩어지기 직전의 바람

집터에 가득 핀 보리가

삶을 탕진한 바람을 봄 햇살 속에 누인다

 

보리밭에 누워 마지막으로 눈을 떠보는 바람

뒤란 우물에서 한없이 퍼 올리던 앵두꽃 피는 저녁이며

담장에 기대 올려다보던 구름의 질주여

마르지 않고 흩어지지 않던 날들이여

 

맑은 우물을 기억하는 자의 최후란

이제는 다만 뚜껑이 닫힌

해질녘의 어두운 구멍 하나

바람을 불러 잠재우는

폐정 하나를 갖는 것

 

 

*폐정[廢井] 쓰지 않고 버려 둔 우물

 

 

심재휘시인의 시, 폐정[廢井]을 읽을적마다 무너진 흙담에 둘러싸여 오랫동안 남아있는 집터, 그곳에 숨은듯 서있는 늙은 복숭아나무, 집터에 저절로 떨어졌다 가득 핀 보리, 아무리 퍼올려도 맑게 넘치던 뒤란의 우물... 여러가지 풍경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쓸쓸해진다.

누구에게나 오랫동안 자신을 성장케해주었던 집터, 그 집터는 과연 몇 곳이나 남아있는가?

 

나는 서른아홉에 잠실로 흘러들어와 35년간을 살았다.

지하철2호선이 다니며 당시에 성내역이라는 정류장이름이 있었고 근방의 제일 높은 건물이 잠실성당이었다.

송파벌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빈터가 많아서 임시 카센터와 주유소가 많았고 가끔씩 동춘서커스도 들어와서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고 석촌호수는 녹조현상으로 죽은 호수였다.

이곳에 88올림픽이 열리면서 몽촌토성은 새단장을 하며 올림픽공원이라는 새이름이 붙었고 세계에서 4번째로 높다는 롯데 타워가 생겨났고 전철역이 4개나 들어섰다.

롯데에서 석촌호수를 관리하며 호수물은 살아나고 금잉어와 흰거위가 불어났고 몽촌토성의 해자와 석촌호수를 오가는 헤오라기들이 내가 사는 아파트 거실에서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시를 쓰고, 조각을 하고, 사진을 찍고 하면서 40대부터 70대를 보냈다.

 

사람들은 제일 위치가 좋은 땅에 새아파트를 다시 짓겠다고 재건축을 추진하였다

건물을 허물고 땅을 파면서 백제시대의 문화제가 쏟아져 나왔다.

삼성과 현대가 함께 공사를 하다가 현대가 광주에서 부실공사로 낙인을 찍히면서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나는 그곳을 떠나면서 병이 들었다.

혈액암에 아밀로이드, 폐렴, 대상포진,... 병은 끝없이 2년을 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 난관을 헤치면서도 아파트는 올라가고있다.

나는 관연 나의 옛집터로 돌아갈 수 있을것인가?

 

아랫사진은 은마아파트가 들어설무렵 어렵게 남아있던 초가집 한 채이다.

은마아파트, 장미아파트, 주공아파트, 진주아파트 등은 1970대 말부터 현재까지 42년 정도 되었다.

불과 50년도 안된 세월동안 이렇게 세상이 변하다니...

지금 은마아파트 앞은 강남3구로 상상도 못하게 많이 변했다.

저 초가집 집터의 주인은 아직 살아있을까?...

 

- 尹馝粒(윤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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