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Life story

나의 항암치료 3차 도전기 III (My chemotherapy story)

Chris Yoon 2022. 2. 28. 02:31

오늘이 2022년으로 접어들고 2월이 끝나는 날이다.

어느 새, 2월을 보내다니... 비단 2월이 28일밖에 없는 짧은 달이라서만은 아닐것이다.

1월이라는 새해의 기분이 채 가시기도전에 왔다가 3월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묻혀버린채, 그대로 2월은 사장되어버린 느낌이다.

특히 나에겐 더 했다.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청천벽력같았던 '아밀로이드증(Amyloidosis)을 동반한 '다발성골수종' 혈액암의 선고는 내 인생 최대의 좌절이자 내 마지막 날이었다.

그 암선고를 받아들고 나는 믿어야할지, 내 인생을 딱 여기까지만 정하고 모든걸 포기한체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을 그대로 받아드려야할지 결정조차 서지않았다.

 

 

- 병명은 '전신경쇄 아밀로이드증(Amyloidosis)'입니다.

심장과 신장, 지방조직을 검사한 결과 '다발성 골수종' 즉 혈액암이라는 진단이 밝혀졌습니다.

평생 항암치료를 해야합니다, 적어도 3주에서 4주간격으로 병원에 입원을하여 치료를 계속해야합니다.

송헌호교수의 진단결과를 듣고 눈앞이 하얗게 백지처럼 변하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않고 둔기로 한 대 얻어 맞은것같던 충격. 그리고 도저히 실감이 안나고 현실로 받아드릴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꿈도 아니고 분명히 나에게 떨어진, 내가 받아드려야할 현실이었다.

 

여기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않았던 아밀로이드증(Amyloidosis)'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히 알고갈 필요가 있다.

 

Amyloidosis / 원인 밝혀지지 않음.

증상 / 피로, 호흡 곤란, 체중 감소

진단 / 조직 검사 치료, 아밀로이드 단백 생성을 억제하는 치료.

정상적으로 단백질은 생성 비율과 같은 비율로 분해되는데 아밀로이드증은 아밀로이드(amyloid)라는 단백질이 한 곳 이상의 조직(tissue)이나 장기(organ)에 지나치게 쌓여서 조직이나 장기의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을 총칭한다. 정상적으로 단백질은 생성 비율과 같은 비율로 분해된다. 그러나 아밀로이드 침전물은 대단히 안정적이어서, 이것이 분해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침착된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장기에서만 일어날 수도 있지만, 여러 장기에 걸쳐 나타날 수도 있다.
아밀로이드증은 한 곳의 장기나 조직에 손상을 주는 국소성 아밀로이드증(localized myloidosis)과, 주로 심장, 뇌, 신장, 소화기관에 손상을 주며 몸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전신성 아밀로이드증(systematic amyloidosis)으로 나눌 수 있다. 아밀로이드증은 주로 노인에게 잘 발생한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2배 정도 많이 발생한다.

원인 / 아밀로이드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종류의 단백질에 의해 다양한 질병으로 나타난다.
아밀로이드증은 일차성과 이차성으로 구분되는데, 일차성은 이상 유전자에 의해 나타나거나 정확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것이고 이차성은 류마티스 관절염, 장기간의 감염, 다발골수종 등과 같은 다른 질환의 합병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증상 / 아밀로이드증은 초기에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증상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서 이것이 침범된 조직과 기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침범되는 기관은 신장, 심장, 간, 신경 등이다. 침범된 부위가 커지면서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피로, 호흡 곤란, 체중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 축적된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 뇌 : 치매, 기억력 장애
- 심장 : 심부전증, 부정맥, 심장 비대
- 신장 : 신부전증
- 신경계 : 신경통, 감각 이상, 무감각, 따끔거림, 허약감
- 소화계 : 만성 설사, 변비, 과도한 가스, 구토, 장내 출혈(대변 색이 붉거나 커피색임), 저작 또는 연하(삼킴) 곤란
- 혈액 : 혈구 수 감소, 쉽게 상처 나거나 출혈함
- 췌장 : 당뇨
- 피부 : 피부 발진
- 근육 : 근육 쇠약, 관절통

진단 / 아밀로이드증은 침범된 기관을 조직 검사하여 진단한다. 콩고 레드(Congo Red)라는 염료로 염색하여 현미경으로 아밀로이드가 있는지 확인, 증명하여 확진한다.
그러나 신장과 같은 내부 장기를 생검하는 데 큰 위험이 예상된다면, 굵은 주사기로 복부 피하지방을 흡입하거나 직장 점막 생검으로 아밀로이드증 원섬유를 증명하여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아밀로이드 단백의 유형을 알 수 없다. 소변과 혈청의 전기 영동 검사가 이상 단백질(파라프로테인)을 검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발골수종과 연관된 경우, 이 병을 확진하기 위해 골수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치료 / 어떤 아밀로이드증도 그 자체를 치료하는 방법은 없다. 아밀로이드증을 완치하기는 어렵지만, 아밀로이드 단백 생성을 억제하는 치료 방법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키고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이차성 아밀로이드증인 경우에는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다발골수종을 동반한 경우에는 증상이 급속히 진행하기 때문에 예후가 좋지 않다.
보존적 요법을 통해 각 장기의 기능을 유지하고 합병증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과, 합병증 / 환자의 예후는 아밀로이드증의 유형과 침범된 장기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 AL 아밀로이드증은 예후가 가장 불량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1~2년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특히, 신부전과 심장 질환이 사망의 주원인이다. AA 아밀로이드증의 예후는 기저 만성 염증성 질환의 치료 결과에 따라 다르다. 가족성 아밀로이드증은 진단 후 15년까지 생존할 수 있지만, 돌연변이 유전자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고, 어린 나이에 발현할수록 예후가 불량하다.

주의사항 / 아밀로이드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아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류마티스성 관절염, 가족성 지중해열, 결핵, 만성 신우신염, 만성 골수염, 염증성 장 질환 등의 만성 감염이나 염증성 질환 등으로 인하여 이차성 아밀로이드증이 발병하므로, 이러한 기저 질환을 치료함으로써 아밀로이드증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아무곳에도 알리고 싶지않았다.

주변 친구들, 흩어져있는 지인들, 가끔씩 소식이나 들으며 왕래조차 거의없는 형제들에게도 알리고 싶지않았다.

나의 아밀로이드 혈액암판정이 이들에게 전해져서 나에게 도움이 될게 무엇일가?

- 너, 들었니? 그 사람 암이래. 고작 살아봤자 3년 시한부인생이래.'

그들은 전화로, 혹은 식사후 자리의 여담으로 나를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나처럼 불행에 빠지지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한없이 부풀리고 확대시켜 이야기 할것이다,

- 그 사람, 내 그럴줄 알았지. 암은 스트레스가 100%원인이라더군. 그 사람 스트레스가 좀 많았어?

남들처럼 성격이 원만치도 못하고 좀 뾰죽하잖어. 물론 흑과 백의 논리가 정확하고 판단력도 명백하고 빈틈없는 성격이란건 모두 인정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통 어울리질 안았잖어. 세상을 살면서 상대할 사람, 상대해선 안될 사람을 분명히 정해놓고 사는 사람처럼 말야. 더군다나 3년전부터는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 형편없는 집안으로 무엇에 홀린듯 들어가는 바람에 부모자식간의 연도 끊고 살았다지.

그 사람 성격엔 표안내고 여행다니며 사진찍고 아무일도 없는듯 살았지만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내심으로는 스트레스가 무척이나 많았을거야.

그랬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고 내일 당장의 일들도 예고없이 찾아들듯 평생을 공들여 키운 자식이 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앞길을 보장받는 인격체로 승승장군할줄 알았는데 근본없이 마구잡이로 살아오며 호시탐탐 기회를 바라며 대책없이 살아가는 뱀의 소굴같은 집안으로 빠져들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물론 실망은 터무니없는 나의 욕심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아이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하고싶었던 일을하며 온전한 집안의 교육을 잘 받은 아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나의 후광을 받아가며 평생토록 잘 살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집안도 하나도 맞는 조건이 없고 인사를 하러 다니러온 아이가 조심성없이 앉아 까딱하지않고 찻잔 하나도 안내다 놓으며 너스레를 떨며 주책을 떨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언동은 그 아이의 천박한 부모를 연상시켰다.

그 아이의 부모는 나와 첫번 만남에서부터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쩌리...그런 곳이 편하다고 억지를 쓰면서 대대로 지켜온 나의 가문을 욕하며 떠나간 자식놈을...

처음엔 그런 아들아이가 용서가 안되었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내가 용서하며 살아야하나?

그러나 용서라는 단어가 필요없었다. 나는 내가 태어나 내가 노력한 댓가의 운명대로, 아들아이는 제가 태어나 제가 이룩한 노력의 댓가만큼만 안일하고 좋아하는 취향대로 인생은 살게되어 있는 것이다.

아들아이가 상류사회에서 안정되게 사는것을 보고싶은건 오직 내 바램이었다.

죽을만큼 아프게 병원생활을 하다가 깨어나 심하게 앓고나니 그런 진리들이 느껴지면서 비로서 깨닫게되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마음이 편해진것은 결코 아니다. 영원히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는 내 아들아이를 스무일곱해동안 순간순간 정성을 들여 성장시키던 추억들을 잊지못헤 애쓸것이며 아들아이의 잘못된 선택을 애석해하고 늘 마음 불편해하면서 눈을 감게될것이다.

 

새벽 3시면 나는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방안을 뱅뱅돌다가 카메라를 들고 새벽공원으로 나와서 어둠이 벗어나는 공원의 새벽풍경을 찍고다니며 다른 생각들을 하려고 노력했다.

날이 갈수록 카메라를 들고 발걸음을 옮길적마다 숨이 차올랐다.

처음엔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착용인줄 알았는데 처음엔 신경도 안썼던 단백뇨가 일년가량 나오고 호흡곤난으로 보행까지 어려워졌다. 그러나 근 10년째 다니면서 건강관리를 받았던 주치의도 나의 병의 원인을 모른 것이었다.

우연찮게 신장내과로 옮겨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연결된 강동성심병원의 혈액종양내과의 송헌호교수의 눈에 띄어 나의 아말로이드를 겸한 혈액종양암은 밝혀졌다.

 

그렇게 3개월. 나의 포기할 수없는 남은 생명과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내에 관한 책임감, 그리고 좀 더 살고싶다는 욕망은 서서이 고개를 들며 나는 항암치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남들이 무책임하게 던져주고 떠나는 항암치료의 경험담과 정보는 조금도 도움이 되질않고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왔다.

- 항암치료, 그것 보통 각오없이는 안된다던데요.

- 여유가되면 무통 항암치료를 선택해보세요. 그게 좀 더 힘이 덜 든데요.

- 머리칼도 모두 빠지고, 걸음도 잘 못 걷고, 손에 닿는 감촉도 못 느낀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어쩌면 그리도 잔인하게 자신의 일이 아니면 더 고통스러워하는 상대를 보고싶은듯이 생각없이 말을 마구 하는것인가!

그래서 나는 더욱 타인들에게 나의 병에 관해서 언급하고 싶지가 않았다.

 

 

항암치료를 받는동안 난관에도 봉착했다.

그동안 암환자들에게 지원을 해주던 암환자 주사약값을 정부에서 2022년에 들어서면서 지원을 끊기로 한것이다.

따라서 5%의 개인부담만 하던 치료비가 100%로 늘어나면서 1회 주사약값이 70만원으로 늘어나 한달에 300만원씩 치료비가 나왔다. 나는 생각다못해 심평원에 민사를 제출했고 나의 민사는 청와대 신문고에까지 올라갔다.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도와주십시요.

현재 국내의 암환자숫자는 급속도로 늘어나고있습니다.

올 한 해 국내에서 28만556명의 암 환자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7만6698여명이 암으로 인해 사망할 것으로 추산돼 의료계가 비상이 걸렸다고합니다.
이에 한국인 10만명당 551.6명이 올해 암 진단을 받게 되고 10만명당 150.8명은 올해 암으로 생명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국립암센터 정규원 암등록통계과장은 국립암센터 DB(국가 암 등록사업 결과)에 수록된 1999∼2012년 암 발생기록과 통계청의 1993∼2013년 암 사망률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20일 밝혀졌습니다.
출처 : 시사매일(http://www.sisamail.com)

 

올해들어 제 친구들만도 네 명, 저까지 다섯명이 암에 걸렸습니다.

암은 70대가 되면서 찾아오고 거의 스트레스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합니다.

설마, 내가...? 그러나 세상에는 영원한것이 없다고 하듯 우리의 패기어린 젊음은 끝이났고

내일 어떤일이 일어날지 몰랐듯 우리가 암에 걸리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입니다.

 

지난해,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전부터 저의 암은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1948년생으로 10년전에 정년퇴직을 한 후, 현재는 제가 좋아하며 꿈꾸던 포토그래퍼 생활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진을 찍으러 나가면 숨이가빠져서 다섯걸음만 떼어놔도 가슴이 조여오며 호흡곤난을 겪기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코로나때문에 착용한 마스크때문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병세가 심해지며 단백뇨가 나오고 발등부터 다리로, 하체에서 상체까지 부종이 시작되며 보행마저 힘들게 되었습니다.

병의 원인을 찾기위해서 두달동안이나 3차병원까지 열두군데의 병원을 드나들었으나 뚜렷한 병명은 밝혀내질 못했습니다. 단 한 분, 강동성심병원 혈관종양내과 송헌호교수만이 제 병을 알아냈습니다.

퉁퉁 부어오른 몸으로 찾아가 숨이차서 이야기도 잘 못하는 제게 송헌호교수는 위급하니 일단 입원부터 하고 검사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주간 저의 의료검사와 진료는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전신경쇄'아밀로이드종'을 동반한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현실로 다가오지도, 받아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길어야 3개월밖에 더 못산다는 '다발성 골수종'.

그러나 송헌호교수의 도움으로 항암치료를 받기로하고 마음을 다져먹고 용기를 내어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벨케이드'(Velcade)와 '스테로이드'로 항암치료를 하고있습니다.

이제 다섯번의 항암주사를 투여했는데 상태는 매우 좋다고합니다.

그런데 환자에 따라 다르듯 언제까지 항암주사를 투여받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암환자는 정부에서 암환자들의 치료비를 지원해주어 5%정도만 환자에게 지급하도록 혜택을줬었는데 올해들어서는 지원이 안된답니다.

무척이나 암담합니다. 그렇잖아도 지난해에 종합부동산세가 일인당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춰 조정되면서 의료보험비가 지역건강보험료로 전환되면서 오십만원으로 불어났는데 이번에는 항암주사 1대에 84,605원에서 563,820으로 거의 일곱배로 올려받게하다니요?

항암치료를 받으며 희망을 잃지않고 살아가는 암환자들에게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이런 처사를 만들어내는 기관과 인물들은 대체 누구인가요?

젊어서는 열심히 일하면서 꼬박꼬박 세금내고, 국민연금내고, 건강보험료내고... 내라는대로 다 냈는데 나이들고 수입이 한 푼도 없는 나이가 되어 암과 투병생활까지 하는데 아무 복지도 없고 혜택도 안준다니요.

개선을하여 좀 더 혜택을 베풀어주지는 못할망정 지난해까지 지원해주던 혜택마저 거두어버린다니요.

그러면서 우리는 과연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지요...?

 

노령의 암환자들, 저들은 혼자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더이상 속수무책일때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야되는데 인수인계해갈 가족들도 없습니다.

저들은 밤마다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누군가를 애타게 부릅니다.

국가는 이들의 부름을 들어주고 도와줘야합니다.

저들도 젊어서는 열심히 일하며 우리나라의 산업경제를 세계대열에 올려놓는데 한몫을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이제 항암치료를 받던 환자들은 치료를 끊고 못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투병 암환자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보험을 해약하고 집을 팔아서라도 치료는 계속 받아야합니다.

도와주십시요.

암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입니다.

현재 국내의 암환자숫자는 급속도로 늘어나고있습니다.

제 친구들도 지난해에 다섯명이나 암수술을 받았고 저도 암에 걸린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하루속히 저 한 사람의 민원이 통과되어 모든 암환자들에게 한 줄기의 빛이되고 구원이 되길 기다리며

부탁드립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부디 저의 민원을 받아드려 주셔서 국가의 도움으로 암환자들의 치료를 계속할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십시요.

또한 이 글을 읽고 공감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모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민원을 제기해 주시기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암환자들은 정부정책의 보호를 받으며 치료를 받고 일어서야합니다.

 

그동안 청와대 신문고에 민원을 올리고 수차례 전화통화를하여 통사정을 하였던 '암환자 주사약값 정부에서 지원해주기'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받았다.

따라서 그동안 주사치료 1회당 60만원 이상씩을 지불했던 총4회의 금액을 환불받게도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식을 들은 해외의 지인까지 암환자를 대표하여 큰 일을 했다는 축하메시지를 보내왔다.

물론 나혼자만의 힘으로 민원이 통과된것은 아니다.

송헌호교수가 속해있는 암환자학회라던가 의료기관에서 올려준 뒷받침들이 큰 역할을 해냈으리라.

그러나 민원을 접수하여 청와대로 올려주고 전화상담을 해주었던 심평원에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린다.

 

 

이제 2차 항암치료가 끝났다.

그동안 총 8대의 '벨케이트'와 '스테로이드'주사를 맞고 알약을 주는대로 한꺼번에 열세알씩 삼키며 송헌호교수의 처방과 책임간호사들의 스케쥴과 관리에 따랐다.

그리고 2022년 2월 말, 드디어 2차를 끝내고 3차 치료에 돌입했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그저 장하다,

 

나 역시도 부작용이 전혀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빈혈, 부종, 거식증, 불면증... 무엇보다 폐에 물이차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호흡곤난과 계속되는 단백뇨가 문제였다. 그럴적마다 기둥이나 벽을 짚고 일어서며 숨이 가쁘면 잠시 심호흡을 억지로 하면서 진정을 시키고 가던길을 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입원할적마다 거쳐가야하는 코로나 검사도 질리게 하는 절차였고, 입원후 옆 칸에서 들려오는 중환자들의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소리도 밤을 꼬박 새우며 잠 못들게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나보다 더 중환자들로서 오로지 침대에만 누워서 투척을 받으며 간호사들의 보호를 받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가엾은 사람들인것을.

그런 밤이면 나는 혼자 휴계실로 나와서 모두 잠든 세상을 보며 새벽을 맞았다.

그러다가 채혈검사와 X-Lay로 판독을 하며 한 주, 한 주 나아진 몸상태를 송헌호교수와 함께 모니터로 판독하면서 열심히 치료를 잘 받고 정상치로 향하는 내 자신이 대견하고 감격스러웠다.

 

컨디션회복도 느껴진다.

아침마다 세면후에 한 주먹씩 빠지던 머리칼도 많이 줄어들었고 생각만해도 거식증이 일어나던 식욕도 차츰 회복되는듯 입에서 구미가 당길때가 있다.

병원앞에서 먹었던 짜장면도 먹고싶고, 고추장을 풀고 끓인 뚝배기 고추장찌개도 먹고싶고, 장터에 가마솥을 걸고 끓여내는 해장국도 먹고싶고.. 주로 자극적인 음식들이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송곳처럼 예민했던 성격도 많이 누그러진듯하다.

 

 

오늘이 2022년 2월 28일, 2월의 마지막날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3월의 시작이다.

3월에는 모든 병을 훌훌털어버리고 또 다시 푸른 하늘로 비상하고싶다.

지난해 11월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뜨거운 모래사막을 걸었던 고달팠던 病으로의 여행.

그토록 고달픈 여행이 또 있었을까?

이제 긴 여행에서 돌아온 내게 아내가 이야기할 것이다.

- 고달픈 여행에서 이제 돌아왔군요. 바람 잘 털어내고 들어오세요.

 

 

* 그동안 병명도 못찾는 아픔에서 허덕이며, 때로는 병원에서 이송침대로 옮겨지면서도 저는 사진을 찍고 틈틈이 글을 써서 기록을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삶들은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어느 후배가 이야기를 하면서 용기를 주더군요.

기록된 삶은 훗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기록되지않은 삶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잊혀진다고요.

 

사막의 별은 볼 수록 반짝입니다.

나의 삶, 나의 블로그도 누군가 봐줄수록 반짝일것입니다.

그동안 봐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글과 사진들 - '그대, 아직 절실한 기억이고 싶어서'는 계속됩니다.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