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온갖 응급지원을 받으며 가까스로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내 몸은 호흡기로, 양측 팔의 혈관으로, 소변관으로, 모두 호스로 연결되어 있었다.
호홉기로는 산소를, 혈관으로는 페니실린과 식염수 주사를 계속 공급하며 소변구로는 호스를끼워 한 방울씩 생성되는 소변을 실시간 관찰하며 빼내고 있었다.
나의 양팔은 성한곳이라고는 없이 모두 주사바늘로 찔리워져서 더 이상 꽂을 자리가없어 발등까지 내려가 주사바늘이 꽂혀야했고 정맥혈관으로 연결되는 주사약들은 한번에 세개가 흘러들어갈때도 있고 시간마다 맞춰서 가져오는 약들은 너무 많아 한꺼번에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쁜 숨을 몰아쉬기위해 산소공급은 계속되었다.
나는 차츰 안정을 찾으며 일어나 앉아 절망에 빠졌다.
항암치료 2차를 끝내고 채 일주일의 휴식기간도 못 채운체 또 다시 '폐렴'에 걸리다니...
나는 면역력이 형편없이 떨어진 내 체력이 한심스럽고 절망스러웠다.
그것도 항암주사의 부작용인줄로만 알고 당연한 고통으로 받아드렸다니...
그렇게 오전 10부터 오후 5시까지 일곱시간여를 불안과 공포에 떨며 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사이 코로나 검사 확인통보가 왔다. 결과는 음성판정이었다.
음성으로 확인이되자 나는 응급실에서 일반실로 옮겨졌다.
내가 입었던 옷은 넝마처럼 비닐봉지에 담겨지고, 나는 호흡기와 팔에 주렁주렁 고무호스를 연결한체 비닐로 씌워져 마치 심장이 멈춘 죽은자처럼 철침대에 꼭꼭 밀봉된체 비밀의 통로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통하여 옮겨졌다.
11층 병동에 도착하면서는 간호사들이 나의 운반과 자리를 인계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격리병실로 들어가느라고 아내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11동 6호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시간마다 혈압과 체온과 혈당을 간호사들에게 첵크받으며 심한 기침과 숨이 차오르는 호흡곤난을 호소하며 긴 밤을 새웠다.
이튿날 2022년. 2월 14일. 월요일.
송헌호교수가 출근과 동시에 병실로 회진차 왔다.
그는 항암치료와는 전혀 무관하게 '폐렴'이 왔다고 진단을 마치며 계속 치료를 해나갔다.
아침마다 혈액검사와 채혈과 X-Lay촬영, 페니실린 주사 투여, 치료에 관계된 정제 복용약들이다.
그동안 움직일 수가 없어 X-Lay는 영상실에서 출장을 나와서 촬영을 해갔고 이튿날 부터는 내가 휠체어에 실려가 심장초음파실로 내려가서 초음파 검사까지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보내며 나는 병원생활을 이어나갔다.
마지막날, 퇴원하기전 11층의 책임간호사 박은영씨가 찾아왔다.
- 그동안 지나다니면서 선생님을 뵈었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아는체 하지를 않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기침과 호흡곤난에 시달리는 선생님께는 단 한마디의 대화도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랬다. 폐렴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한마디의 입을 여는 대화도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2월 12일의 악몽의 밤부터 일주일을 지낸 2월 20일까지 꼬박 일주일을 병석에 누워 죽은듯이 지냈다.
그 일주일은 나에게 죽음보다 더 참담한 나날들이었다.
2022년 2월 21일. 월요일.
다시 월요일이다.
토요일, 일요일은 모든 진료가 끝나고 퇴원을 할 환자들도 서둘러 퇴원을 하고나서 병원이 텅 빈듯 조용하다.
병실마다 빈 침대가 있고 각 병실은 두 세명의 중환자들만이 죽은듯이 잠들어있다.
로비에도 내려가보면 접수와 퇴원수속을 밟는 행정실은 문이 닫혔고 모든게 응급실로 통하게 되어있다.
환자들이 내려와 면회객과 만나는 커피집과 음식점도 문을 닫았고 편의점만이 문을 열었을 뿐이다.
나는 편의점으로가서 인스턴트 라면을 세개샀다.
병원식사에 신물이 나도록 물리고 아내가 가지고온 식량도 거의 바닥이 날 정도이고보니 속에서는 메슥거리며 구역질이 올라오고 매큼하고 자극적인 맛이 필요했기때문이다.
다 들 자신들의 분출구를 찾아서 떠나간 일요일.
병원도 사회의 구성이다.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아픈곳이 있으면서 모든 것을 참으며 환자를 진료한다.
인턴과 레지던트들도 많은 작업량에 업무가 밀리고 밤샘작업이 많아서 고통스러운 직업이다.
환자의 불편함과 환자들 자신도 못느끼는 것을 찾아내어 돌봐야하는 간호사들은 몸이 세개라도 모자라서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직업이고 그속에서 환자들도 자기 자신을 추스리고 치료하며 살아나가야만하는 기관이다.
길고 긴 토, 일요일 휴무를 끝내고 송헌호교수가 찾아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나의 퇴원의사를 밝히고 다음 항암치료 스케쥴을 상의드렸다.
오후, 나는 채 끝나지않은듯한 병원생활의 연속선상에서 퇴원을 단행했다.
그리고 환자옷을 바꿔입고 로비로 내려가 지난 일주일간의 병원비와 치료비를 계산하고 병원문을 나왔다.
밖의 날씨는 영하 11도 아래의 추운 날이고 바람은 날아갈듯 거세게 불며 보행의 진로를 방해한다.
자지러지게 쏟아져나오는 기침을 건널목앞에서 간신히 가다듬고 지하철역으로 내려와 심호홉을 하며 마스크를 고쳐쓰고 집으로가는 전철을 기다린다.
아내도 아프다. 목이 붓고 기침이 나고 열이 오르고 나하고 거의 같은 증상이다.
중병을 치르고 나온 중증환자가 조금 덜 아픈 아내를 만나러 찾아가고 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비가내린다. 살아봐야겠다.
안개가 자욱하다. 살아봐야겠다.
햇살이 빛난다. 살아봐야겠다.
이렇게 세상이 매일 다르게 변하는데
좀 더 살아봐야겠다.
세상을 살기에는 터무니없는 멋도, 낭만도,
댓가없는 친절도,
맹목적인 사랑도,
모두 부질없는 것들이다.
너무 깊게 사랑하지말자.
적당히, 너무깊게 빠져들지말고 헤어날 수 있도록
언제든지 혼자있는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준비하자
병원문을 나서는 길
밖에는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린다
이제부터는, 좀 더 냉정하게, 그렇게 살아봐야겠다.
- Chris Yoon
'- 그의 Lif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항암치료 3차 도전기 II (My chemotherapy story) (0) | 2022.02.27 |
---|---|
나의 항암치료 3차 도전기 I (My chemotherapy story) (0) | 2022.02.26 |
항암치료 2차를 끝내며, '폐렴'진입 I (0) | 2022.02.24 |
나의 항암치료 2차 도전기 - 항암치료 2차를 끝내며 (0) | 2022.02.05 |
나의 항암치료 2차 도전기(My chemotherapy story) X - Tiger dance (0) | 2022.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