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Life story

11 ward Story (11병동 이야기) XVII - 성탄제

Chris Yoon 2021. 12. 24. 12:02

 

 

 

그동안 긴 세월을 살면서 수많은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유교적 교육을 받는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성탄제가되면 동네교회로 또래들과 몰려가 미국에서온 선교사들이 나누어주는 캔디와 쿠키를 받아들고 돌아왔던 내 기억속의 첫번째 크리스마스. 

자유당시절의 실세권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설립한 미션스쿨에 다니던 나보다 일곱살이 많던 누나가 학교에서 뽑혀 한달간 연습을 한 성탄연극제에 구경을가서 단발머리의 누나가 산타크로스처럼 쌀 푸대를 메고 불우한 친구집을 찾아가친구를 도와 주는 크리스마스날 밤의 여학교연극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무대에서 대사를 읊는 누나를 맨 앞자리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누나와 함께 밤늦게 손잡고 돌아왔던 유년시절의 크리스마스.

내가 제법 자라 고등학교를 다니며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남녀학생클럽을 조성하여 여학생들 몇명과 짝을지어 잘 사는 친구집에서 밤새 레코드를 틀어놓고 춤을추며 놀았던 성탄파티의 청소년시절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무역회사에 입사를하여 직원들과 종무식을 마치고 바삐 택시를 타고 달려가 연애하던 여성과 명동으로 가서 경양식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보내다 통금사이렌이 불기직전에야 여자친구를 보내고 어렵사리 합승택시를 잡아타고 귀가를했던 서른살 시절의 크리스마스.

이윽고 결혼을 한후, 캐톨릭신자인 아내를 위해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치루고 밤을 새워 눈내리는 바다길을 달려 낯선 곳으로의 여행길에 올랐던 나의 감성과 행복의 절정기였던 내 나이 마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그 후의 크리스마스는 이렇다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가 작년부터 Blue Chrismas를 맞았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우리국내에도 파고들며 경제는 얼어붙고 감염을 막기위해 모두들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은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올 해, 2021년 크리스마스.

내생애 최악의 해를 보내고있다.

전신경쇄'아밀로이드종'을 동반한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있는 중이니 말이다.

일찌기 이런 병이 있다는것도 몰랐고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내가 이런 무시무시한 병에 걸리다니...

내가 암에 걸리다니...

아니,... 길어야 3개월밖에 더 못산다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니...

현실로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분명 이건 꿈이아닌 현실이고 내가 대처해야할 일인것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처음 나의 병을 진단해준 송헌호교수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검사를 마치고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병원에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고 밤이면 영롱하게 불들이 깜빡인다.

나는 병실에서 나와 환자복차림으로 크리스마스 트리앞에 섰다.

여태까지 함께 살아온 아내와 자식놈이 생각나고, 현재의 나를 걱정해주는 지인들의 얼굴들이 스쳐지나가고,

나보다 먼저 가신 대학은사 김찬식선생님이 떠오르고, 그분과 함께했던 홍익대학교의 교정이 떠오르고, 내가 사회로 나오기전, 대학생활의 마지막날 밤, 사은회장이 떠오른다.

그해 겨울은 에릭시걸(Erich Segal) 원작의 '러브스토리(Love Story)'가 청춘들의 마음을 흔들고 '더스틴호프만(Dustin Hoffman)'의 '졸업(The Graduate)'이 상영되며 영화의 주제곡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스카브로 훼어 (Scarborough Fair)'가 쓸쓸히 울려퍼지고 한 편에선 국내 사상최대의 대형화재, '대연각 호텔 화재사건'이 일어났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마다 울려퍼지면서 또 한쪽으로는 임시뉴스가 보도되었다.

거리는 어수선하면서도 그와는 무관하게 닥터지바고의 연인 '라라'의 머리모양을 따라한 뒤를 부풀려 묶은 머리스타일에 판탈롱에 맥시코트로 멋을부린 청춘들이 걸어다녔다.

피곤하게 돌아다니다 돌아와 연탄불을 갈아넣은 한 평 반짜리 방으로 돌아와 누우면 통금을 알리는 긴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으며 긴밤을 보내고 새벽을 맞았다.

암울했던 1970년의 12월, 크리스마스날 밤이었다.

 
그 때, 나의 장래를 보살펴 이끌어주셨던 김찬식선생님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 분보다 나이가 훨씬 더 들었고(세상을 더 살았고) 암에 걸려 항암치료중이다.

왠지 울적해지면서 쓸쓸해진다.

인생은 긴 것 같았는데 지내고나니 덧없이 짧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것!

그러나 인생은 초가을의 햇살같이 짧다.

 

- Chris Yoon

 

 

 

1. 에릭시걸(Erich Segal) 원작의 '러브스토리(Love Story)'가 상영됐던 아카데미극장.

2. 1960년대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 앞 전차길.

3. 1960년대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에서 내려다본 남대문로.

4. 1970년의 명동,

5. 6. 국내 최대의 참사사건 충무로 대연각호텔 화재 사진. 1970년 12월 24일.

   (맨 우측 사진은 메트리스를 타고 뛰어내리던 투숙객. 심지어 우산을 펼쳐들고 뛰어내린 투숙객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죽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다고 생각하겠지만 얼마나 극한상황에 몰려 다급했으면...

    그때는시대가 그랬다.)

 

 

이런 시대를 지나오면서 저 또한 나이가 들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좋아하는 성탄에 관한 두 편의 시입니다.

요즘 제 기분과 흡사하여 애송하는 시입니다.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고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마흔 세살 나의 이마에 불헌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 / 성탄제>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나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