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Life story

11 ward Story (11병동 이야기) XIV -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Chris Yoon 2021. 12. 20. 02:58

'그'가 '아밀로이드종'을 동반한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 선고를 받은지 한달이 되었다.

'그'는 처음 의사의 진단이 내렸을때 눈앞이 하얘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졌었다.

처음엔 믿어지지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의사의 진단을 무시해버리고 싶었다.

집안代代, 가계(家係)에는 암을 앓다 죽었다는 선조가 한 분도 안계셨고 '그'가 태어나 살아온 지금까지 암으로 아프다는 종친을 한 분도 못보았기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에 걸렸다는 현실을 받아드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를 않았다.

'그'의 몸은 풍선처럼 부어올랐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가슴 통증을 느끼면서 보행이 힘들 정도로 위험 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처음 '그'는 진단을 받고 한달간을 정밀검사를 하며 치료를 받기위해 입원을 했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씩 입원을 하여 3일간 항암치료를 받는다.

처음엔 치료후 일주일동안 부작용을 대비하여 의사의 지시대로 입원을 했으나 이젠 주사투입후 다음날까지 이상반응이 보이지않으면 퇴원을 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오늘도 '그'는 입원을 하여 자신이 배치받은 병실, 룸 번호로 갔다.

'그'가 입원실로 들어가면 맨 먼저 하는일이 있다.

캠핑룩섹에 담아온 세면도구와 스킨로션등을 관물함에 정리해놓고 귤과 바나나를 냉장고에 넣으며 양쪽 룸에 있는 환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이다.

 

인사를 끝낸 '그'는 자신의 베드룸으로 돌아와 환자복으로 바꿔입고 침대에 누워 암에 대해 대처하는 책을 펼쳐들었다.

잠시후, 옆 룸에서 스마트폰이 연속적으로 울리며 '그'를 방해하기까지 '그'는 죽은듯이 누워서 독서를 계속했다.

옆 룸의 스마트폰은 오랫동안 울리다가, 잠시 끊겼다가, 또 다시 울리기를 수십번 반복하고 있다.

'그'는 참다못해 주인없는 룸의 커텐을 열고 들어가 스마트폰을 받았다.

- 예약좀 하려고 하는데요.

전화의 내용은 모두 똑 같았다.

'그'는 '여기는 병원이고, 이 전화기의 주인은 진료을 받으러 갔고, 나는 대신 받아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대답하고 끊었다.

그러나 때가 점심식사전 시간이라서인지 같은 내용의 전화는 끝이없이 걸려왔다.

 

한 시간이 지난후, 침대에 눞혀진채 스마트폰의 주인이 방으로 돌아왔다.

- 환자분, 조금이라도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병원관계자들은 제2의 그 남자를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켜놓고 나갔다.

그 남자는 정신이 들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목이타서 그러니 귤좀 사다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커텐을 걷고 나와 냉장고 문을 열고 자신이 가지고온 귤봉투를 꺼내 두개를 그남자에게 건네 주었다.

- 골수검사를 받으셨나요?

그남자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며 '그'가 건네준 귤을 누운체 까먹으며 갈증을 달랬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한병실 쓰기'는 그들이 여지껏 세상을 살아온 년수(年數)와 해온 일들, 가족, 아파서 병원에 오기까지... 의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그 남자는 강동지하철역 3번출구앞에서 작은식당을 경영하는데 음식맛이 좋다는 평이돌며 손님이 많이 몰려서 몸이 아파도 병원에 올 시간이 없어 약국에서 계속 약을 지어다먹다가 쓰러져서 급히 실려왔다는 것이다.

또 한 명, 제3의 남자는 바짝 마른 체구에 짧은 백발을하고 있는 나이가 들어보이는 남자이다.

그 남자는 폐암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6회째 받고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에게 '항암치료 두번째라면 아무 말씀도 마시요. 그거 대여섯번 받고나면 음식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고 다리 힘도 없어지고 손가락의 감촉도 느끼질 못해 내 손이 무얼 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오.'라면서 겁을 준다.

그러면서 지금은 마장동 정육시장에 가서 보이는대로 마음에 동하면 갖은 고기를 닥치는대로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넣고 먹는다면서 조금만 더 병세가 호전이되면 산속으로 들어가 살면서 맑은 공기를 쐬며 치료하겠다는 거의 포기상태같은 마지막 의지를 보인다.

그러면서 '그'의 직업이 포토그래퍼라니까 '지금 여행이나 많이 다니세요. 항암주사 6회쯤 맞으면 다리에 힘이 떨어져 못 다닙니다'라고 암투병의 선배같은 조언까지 한다.

몇 시간이 지난후 알았는데 제3의 남자는 '그'보다 네살이나 나이가 더 어리다.

그들 남자 셋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이야기도중 작게 코를 골며 선잠이 들었다가 심하게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듯 울먹이면서 잠꼬대를 하다가... 그렇게 긴 밤을 보내었다.

 

 

이튿날 아침, 의사들이 회진을 도는시간이다.

식당경영을 하다가 쓰러져 실려왔다는 제2의 남자에게 담당의사가 왔다.

- 몸안의 장기들이 모두 안좋고 毒 단백이 혈액속에 많습니다. 항암치료를 하셔야합니다.

- 예? 항암치료를요?

순간적으로 제2의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질리며 말을 잇지못한다.

오늘 진료가 끝나는대로 퇴원하여 다시 자신이 경영하는 식당으로 돌아가 일을 계속하려고 꿈꾸었던 순박한 사내.

의사가 나간후 사내는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아무말도 못하더니 화장실로 들어가 울다가 나왔다.

 

'그'에게도 담당의사가 회진을 왔다.

의사는 청진기로 '그'의 맥박을 검사하더니 이상이 없음을 판정하고 퇴원허락을 내렸다.

'그'는 제2의 사내와 제3의 사내에게 낙심하지말고 서로 희망을 갖자는 격려와 위로의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왔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까지 걸어나오는 시간은 매우 추웠다.

그는 한적한 거리를 느릿느릿 걸었다.

그의 머릿속엔 이병률의 시가 자꾸 떠오르고 있었다.

 

 

그 늦은 시각 여관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방에 머물고 있는 사내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러느냐 물었다

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데 사내의 방에 가지 않았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뭔가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가 뭘 기다리는지 들어버려서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말해버리면

바깥에서 뒬굴고 있을 나뭇잎들조차 구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 이병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중에서 발췌 -

 

 

 

윗글은 픽션(fiction)이 아닙니다.

두번째 항암치료를받으러 갔던 날, 11병동에서 있었던 '논픽션(nonfiction)'입니다.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