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Life story

11 ward Story (11병동 이야기) XII

Chris Yoon 2021. 12. 16. 02:45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황지우시인의 <11월의 나무>에서 발췌

 

 

 

저 나무...

언제부터, 어떻게, 작은 씨앗 하나 떨어져 싹을 틔웠을까?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만 내 눈에 들어오지도, 눈에 띄지도 않았을 뿐이다

내가 나무를 보기 시작한것이 나이 오십을 훨씬 넘긴 후 부터였다.

그 나무가 어느날보니 거목으로 자라 있었다. 외롭게. 혼자

..................................

이제 나는 늙었다.

인정할건 인정하고 받아드릴건 받아드려야한다.

 

 

 

 

해마다 11월이 오면 사람도, 나무도 생의 낙엽을 털어내기 마련이다.

11월은 시간의 환승역과 같다.

지금껏 타고 온 기차에서 내려 갈아탈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에서 우리는 11월을 맞는다.

역사(驛舍) 밖에는 바람이 쉼 없이 분다.

그 바람을 호되게 맞고 몇달동안 정신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정신이 돌아오질 않는다

그 바람... 어디서부터 불어왔을까?

몇 달전, 아니 몇 년전부터였을게다.

나는 이름모를 병명에 시달리며 수많은 병원을 전진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아밀로이드종'을 동반한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사실을 진단받았다.

 

 

 

 

12월엔 나뭇잎이 많이 떨어진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1월부터 나뭇잎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뭇잎을 떨구는 나무는 패배한 것일까?

여름내 푸르른 잎을 달고있던 나무는 잎을 떨구며 쓸쓸해지기 시작한다.

마치 패잔병같다.

패배한다는 것은 죽음처럼 허탈한 일이다.

사람들은 듣기좋은 자기변명으로 또 다른 시작을 위해서라지만

패배는 한없이 비참하고 쓸쓸하게 버림받는 것이다.

끝까지 살아야한다. 그래서 이겨야한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승자이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나는 10여년간 써오던 내 블로그를 폐쇄시키고 버리려고 했었다.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냐고?...
아무튼 그렇다. 세상은 '내가 세상에서 유해판정을 받는다'면,
내가 세상을 살아나가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며 유해함을 끼쳤다면,

나도 모르게 나의 객기가 발동해서 끼친것이 된다.
인정하고 충고를 달게 받아드리며 살아야한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오래 살아야한다.
잘못을 저지르고 지탄을 받으며 참다참다 죽음을 택하는 자도 있다.
그건 모자라고 나약해빠진 자들의 짓이다.
오래 살며 '나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밝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오래 살기 위해서는) 아프지말아야 한다.
병에 걸리고 아프면 병원으로 가야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려면,
더구나 평생 치료를 받아야할 병에 걸렸다면 가진돈을 모두 써버려야한다.
아니...평생 모은 돈을 다 써도 모자랄 수도 있다.
그렇지않으려면 ...
그저 허허... 웃고 바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버리고 친구와 어울려 여행이라도 떠나 가슴속의 불덩이를 끄며
시름시름 앓으며 시들어가는 그 목마른 갈증을 채워야한다.

 

나무 한 그루.

언제, 어떻게, 씨앗 하나 떨어져 싹을틔웠을까?

저 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몇 해나 지내며 서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도, 이 세상 하고 많은 벌판에 서있는 나무 한 그루에 지나지않았다.

 

 

 

- 두번째 항암치료를 받으러 집을 나서며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