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배우 - 윤여정
우리가 살아나오며 시대의 변천사를 보면 항상 우리의 삶을 대변하며 웃기고 울리는 배우가 있었다.
처음 내가 알게된 배우라는 사람들은 1950년대에 무대에서 연극을 하던 악극단이었다
그들은 얼굴에 짙은 화장을 화고 무대에서 연극을 하며 막간에는 노래도 부르면서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악극을 했다.
그후, 악극단 출신 배우들이 영화에 투입되면서 우리 흑백영화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 나의 나이가 다섯살쯤 되었을때다.
이승만 자유당시절, 최고의 세도를 누렸던 경찰서장이 숙부였기에 지금으로 말하면 영화 시사권이 들어와서
개봉관에서 교체되는 흑백영화들을 모두 어른들을 따라가서 보았다.
지금도 영화를 많이 보고 나름대로 분석하며 즐기는 취향은 그때 이미 시작되지않았나 생각된다.
그후,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이 발달되면서 많은 여배우들이 등장했다.
'상록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 '성춘향'등을 신상옥 감독과 함께 살면서 출연한 최은희,
일약 19세의 나이에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며 '산너머 바다건너'에 출연하여 홍성기감독과 어린 나이에 결혼까지하고 멜로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지미,
'晩秋(만추)' '歸路(귀로)'등 이만희 감독과 예술영화를 만들어낸 '문정숙',
신필름에 갓들어온 젊은 신인배우 신성일과 콤비플레이를 이루며 수많은 영화에 출연한 엄앵란...
그 후, 윤정희, 남정임, 문희로 이루어진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가 열리며... 여배우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70년대 흑백 T.V.시대가 열리면서 모두 편안하게 집에서 T.V.연속극을 보는 시대로 변했다.
내가 윤여정을 처음 본것은 그때부터였다.
당시 나는 덕수궁 정동골목에 있는 서울예고를 다녔는데 우측 서대문으로 가는 쪽에는 M.B.C.가 있었고
좌측 대법원(지금의 시립 미술관)쪽에는 T.B.C. 방송국이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창문으로 내어다보면 정동길목으로 탤런트들이 지나다니는 것도 보였고
하교길에 버스를 타려고 정동 골목을 나오다보면 방송국앞에서 택시를 잡으려는 연예인들도 볼 수 있었다.
윤여정은 당시 T.B.C. 3기의 신인 탤런트였다.
(윤여정은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1947년생이고 姓도 종씨인데다 항렬은 나보다 一代 아래다.)
그러는 사이 나도 대학에 진학하여 대학생이 되었고 윤여정도 이화여고를 거쳐 한양대학엘 다니며 방송국 탤런트로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당시 T.B.C.는 기존 방송국보다 프로도 획기적이고 Show 프로나 연속극에 있어서는 압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연속극들 속에 윤여정은 잠깐잠깐 얼굴을 보이며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순진가련형의 여성보다 뭔가 문제를 곧 일으킬듯한 얼굴, 반항으로 가득찬 말썽의 소지가 보이는 역할들이었다.
'거북이'라는 연속극에서 윤여정은 양갈레 머리를 땋은 하녀역할로 나왔는데 문제의 종이 쪽지를 부엌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의 눈을피해 몰래 불태워버리는 불안으로 가득찬 표정의 연기라든가, 그 유명했던 '동두천 백바지클럽'으로 분한 반항적이고 비뚤어진 불량소녀 역할은 너무 리얼하게 각인되어 지금도 잊혀지질않는다.
내가 대학4학년때, 1971년의 어느 초여름 날.
실기실에서 조각을 하며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우리 영화구경 갈까?
한 여학생의 제안에 우리는 모두 합의를 하여 영화구경을 가기로 했다.
- 무슨 영화가 좋을까?
지금도 그날의 일을 분명히 기억한다.
- 하나는 윤정희의 '분례기(糞禮記)'고 또 하나는 윤여정의 '화녀(火女)'야.
그 당시 윤정희라는 대여배우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위해 노 파운데이션(No foundation / 여배우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화장을 전혀 안하고 맨얼굴로 촬영에 임하는)출연을 하고 윤여정은 신인으로 처음 출연한 영화였다.
우리는 윤여정의 '화녀'를 보기로 하고 영화관으로 몰려가서 영화를 보고왔다.
영화는 그 당시에 보기드문 스릴러로 가득했고 (이 영화에서 윤여정은 네명의 남자를 죽인다.)
당시 유행하던 가요들을 작곡가인 남자주인공(남궁원)의 작곡실겸 거실에서 신인가수들에게 지도하며 부르게 하는 당시의 생활상까지 보여줬다.
무엇보다 영화내내 양갈레 머리를 땋은 시골소녀가 겁탈당하려는 순간 동네 불량배를 돌로 쳐서 죽이고 무조건 상경, 직업소개소를 찾아가 양계장집 식모로 취업, 작곡가인 주인집남자의 아이를 갖게되며 천사가 악마가 되기까지의 숨가뿐 역정이 그려진다.
이 첫영화에서 윤여정은 한 가장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광기 어린 하녀역을 연기하면서 시체스 국제영화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대종상 신인여우상 등을 수상하게되면서 화려하게 무명을 벗고 세상에 등장하면서 사극 '장희빈'에 까지 타이틀롤로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나는 군입대를 하게되었고 윤여정은 탤런트생활과 김기덕감독의 영화'충녀'까지 활약했다. 하지만 1974년 결혼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오랜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가끔씩 남편을 따라 잠시 나와서 남편의 리사이틀에 잠시 카메라에 얼굴을 잡히기도 했는데 가꾸지않은 돗수높은 안경을 쓴 얼굴과 비쩍마른 모습은 왕년의 배우같지않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육아를 하는 이민가족으로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내 나이 삼십을 넘기고 D종합무역회사 기획조정실에서 근무를 할때였다.
윤여정의 동생 윤여순이 입사를 해서 같은 부서에서 근무를 하며 잠깐잠깐 얼굴을 마주칠때가 있었다.
- 언니 잘 계세요? 내가 물으면
- 네, 플로리다주에서 잘 지내고 계세요.
이렇게 간혹 안부만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은 결국 이혼으로 끝내고 그녀는 다시 배우의 길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혼 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생활고에 직면한 윤여정을 기다렸다는듯이 방송국과 영화계는 이내 길을 열어주지않았다.
그녀는 닥치는 대로 작품에 임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생계형 배우'라고 했다.
그다지 예쁜 얼굴도 아닌데다가 나이도 어느새 들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 들으면 배우가 되기로는 거부감까지 들을 정도로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단역도 마다하지않고 열심히 뛰더니 이윽고 이름난 작가의 드라마에 계속 출연하며 그녀만의 새로운 연기에 사람들은 이끌려들어가지 시작했다.
그러면서 영화출연도 많이 했다.
자신의 말로는 집수리를 하기위해 돈이 필요해서 가리지않고 영화출연을 했다고 하는데 꼭 그녀만이 해낼 수 있는 역활을 해냈다. T.V.드라마에서 한번 보았는데 대사가 많은 대본을 무려 10분간이나 외워서 연기하는걸 보았다.
그녀는 대단한 노력형 배우이다.
사실 외국에는 나이들어서도 역량있는 여배우들이 많이 있다.
쟌느모로(Jeanne Moreau)나 잉그릿드 버그만( Ingrid Bergman)등 많은 여배우들이 늙어서도 빛을 발하며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영화계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역할의 비중이 줄어들며 여배우들이 소리없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윤여정은 '윤여정을 위한 영화 신화창조'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에 걸맞는 꾸밈없는 외모, 자연스런 연기력, 무엇보다 그녀의 영화에 대한 몰두와 열정의 결과였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소리없이 미국에서 실험영화 '미나리'를 찍더니 화재를 몰고오고 있다.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시상식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미국 영화 연구소(AFI)의 올해의 영화상과 미국 온라인,
뉴욕 온라인 비평가협회상까지 휩쓸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만약 윤여정이 수상한다면 우리나라 최초, 1957년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여우조연상을 받는 두 번째 아시아 배우가 될 것"이다.
그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제 이틀남았다.
그래서 윤여정은 지금 시상식에 참석하려 미국에 있다.
동시대를 살면서 그저 바라봤던 그녀, 우리시대의 배우 윤여정.
그녀의 수상을 진심으로 빈다.
배우 윤여정(尹汝貞) 프로필
나이:1947년 6월19일 (73세)
자녀:2남
형제자매:윤여순(동생)
소속사:후크엔터테인먼트
데뷔:1966
윗 원고를 쓰고 이틀 후, 오늘 4월 26일. 월요일. 오전.
T.V. News로 윤여정씨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을 듣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1957년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아시아 배우로는 두번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는
윤여정씨, 정말 축하드립니다.
Conqratulation. Madam Yuh-jung 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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