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st City (사라진 왕조)

사라져간 왕조 MAYA III

Chris Yoon 2021. 11. 15. 04:57

 

 

 

 

 

 

그들이 만들어 낸 MAYA문명앞에 앉아

가만이 귀 기울여본다

아득히 들려오는 그들의 소리들

남자들의 땀 흘리며 일하는 소리,

여자들이 흥얼거리며 아이 보는 소리,

어린아이들이 노는 소리...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그들과 어울려 살며

또 하나의 문명을 이룩하고 싶다

 

 

 

 

스페인이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를 정복하기 전 서반구의 가장 위대한 문명 가운데 하나를 건설했는데 그것이 마야(MAYA)문명이다.

마야족은 농경민족으로서 거대한 석조건물과 피라미드 신전을 세우고 금·구리 세공품을 만들었으며, 오늘날 대부분 판독할 수 있게 된 특수한 형태의 상형문자를 사용했다.

마야문자는 표음문자이지만 표의문자와 섞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한글,가나 표기하면서 한자로 섞는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알파벳처럼 각각 발음에 해당하는 문자를 풀어쓰는게 아니라 한글처럼 발음 나타내는 여러 개 기호 조합해 사각형 공간에 맞춰서 표기했다.

 

 

 

BC 1500년경 마야족은 옥수수·콩·호박 등을 재배하는 원시농경사회를 이룩했다.

이들이 세운 의례 중심지는 AD 200년경 사원·피라미드·궁전·광장을 갖춘 도시로 발전했다.

또 상형문자와 아주 정교한 역법(曆法) 및 천문학 체계가 개발되었다.

고대 마야족은 흑요석 같은 단단한 돌을 이용해 막대한 양의 건축용 돌을 잘라냈다.

주로 화전농경을 했지만 관개 또는 계단식 경작 같은 고도로 발달된 기술도 이용했다.

또 이들은 야생 무화과나무 껍질안쪽을 재료로 만든 종이에 상형문자를 써서 책으로 엮었는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 책의 일부를 코디시즈(codices)라고 한다.

마야인들이 남긴 엄청난 규모의 유적에도 불구하고 마야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그들은 문자를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이는 이 지역을 관장하던 가톨릭 사제들이 이교도의 것이라 하여 마야의 문서와 책을 남김없이 모조리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마야의 주요도시와 의례 중심지는 석회석으로 만든 다양한 피라미드와 궁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피라미드와 궁전에 새겨져 있는 서술적·의식적·천문학적인 조각과 부조는 마야 조각예술이 최고의 인디언 문화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마야 사회의 진정한 성격, 상형문자의 의미, 그들 역사의 연대기는 스페인군이 고대 마야 제국의 도시를 처음 발견한 뒤 수세기가 흐를 때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마야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탐험은 1830년대에 처음 시도되었으며, 마야 문자에 대한 판독은 20세기 초반과 중반에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MAYA의 번창기를 상상으로 그린 그림 최근 수수께끼에 싸여있던 고대 마야문명이 멸망한 원인이 밝혀지며 새로운 논란에 휩싸이며 주목을 끌고있다

20진법을 사용하고 마야력과 상형문자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던마야문명의 멸망한것은 엄청난 화산폭발도, 전염병도 아닌 기후변화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와 스위스 연방기술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연구를 통해 수수께끼처럼 사라져버린 마야문명의 쇠퇴 원인을 찾아 냈는데 그들의 멸망이 가뭄 때문이라고 분석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100년 넘게 이어진 가혹한 가뭄이 극심한 생활고를 낳았고 결국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국제공동연구팀은 마야문명 발상지인 멕시코 일대 동굴 바닥에서 형성된 석순에서강수량 데이터를 분석해 마야문명이 자리잡았던 300~1000년간 중앙아메리카의 기후변화가 극심했던 것을 파악했다

즉 마야문명이 번성했을 당시에는 강수량이 많았으나그 이후 지독한 가뭄에 시달리며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의 수장인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환경인류학자 더글라스 케네트는 이에 대해'마야문명의 고전시대 초기에는 수천년 수준의 이례적인 습윤기였다'면서 “이 때는 농산물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인구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는 마야문명의 전성기라고 칭할 수 있는 시기와 겹쳤다.

bc 440년~600년 사이의 기간이었다. 왕권이 곧 신권이었던 마야시대에 지속된 가뭄은 곧 왕권 추락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추측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마야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잦은 분쟁에 휘말렸을것이다.

나사의 고다드 우주과학연구소(GISS) 와 미국 콜롬비아 대학 라몬토, 도허티 지구 연구소소속 기후과학자 벤자민 쿡은 이같은 연구결과에 대해'기후 변화의 원인은 MAYA인 자신에게 있었다'면서 '자업자득'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도시와 농지의 확대로 산림벌채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기에 토양에서 대기 중으로증발하는 수분이 감소했으며 자연 강우 사이클이 차단됐기 때문에 강수량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기간동안 마야에서는 국지적인 건조화에 따라 연간 강수량이 5~15% 감소했는데10%의 강수량 감소도 자연에는 최악의 재해라는 설명이었다

 

 

 

MAYA에는 힘있고 건강한 젊은 용사의 심장을 제물로 바쳤던 치첸잇사 엘 까스띠요 (El Castillo, Chichen Itza)외에 가뭄이 들면 제물로 처녀들을 바쳤던 <세노테/CENOTE>라는 천연우물이 있다.

유카탄반도는 지질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대부분의 물이 지하로 흐른다.

이 석회암 지대가 무너지며 싱크홀이 생기고, 그곳에 오랜 세월동안 빗물과 지하수가 고이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천연우물이 바로 세노테 (CENOTE)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세노테의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이 일년 중 이틀, 즉 태양이 천정에 도달하는 5월 23일과 7월 19일에 고대 마야인들의 신성한 해시계와 시간측정기의 역할을 했다.

태양이 천정에 도달할 때는 머리 위에 수직 방향으로 뜨고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이 세노테는 치첸이트사에서 유명한 중앙 피라미드인 엘 카스티요의 주요 계단에서 정확히 북서쪽에 있다.

고대 마야인들은 비의 신 ‘차아크’가 천연우물 ‘세노테’에 산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마야인들은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고, 처녀와 보석등을 제물로 바쳤다.

훗날 조사단에 의하여 수많은 여성유골과 보석들이 세노테에서 나왔다

오늘날 멕시코의 메마른 유카탄 반도에 살고 있는 마야의 후손들은 여전히 차아크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기원한다.

지금도 유카탄 주와 칸쿤이 있는 킨타나오로 주 전역에는 천 개가 넘는 세노테(CENOTE)가 있다고 한다.

신비로운 우물 세노테는 아주 작은 물웅덩이의 모습으로 시작해 깊은 지하 동굴 속 신비로운 푸른 샘의 모습까지 그 많은 수만큼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며그중 아름다운 몇 개의 세노테들은 멕시코의 관광 상품으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다시 MAYA의 멸망 이야기로 돌아간다연구에 따르면 마야문명의 2,000년 역사에서 1020년~1100년에 걸친 시기는 최악의 건기가찾아온 때라고 한다. 이 때 마야인들은 자신들이 꽃피웠던 찬란한 문명을 버리고 떠나기 시작했다.연구에서는 '16세기 당시 스페인이 이 지역을 정복했을때는 이미 내륙의 인구는 90%를감소했을때며 옛도시와 농경지들은 숲으로 바뀐 상황이었다'고 한다.다만, 마야문명의 쇠퇴에 대해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환경사회학자 B.L.터너는'MAYA문명은 멸망한 것이 아니라'면서'MAYA인들은 식량 부족과 끊이지않는 분쟁으로부터 탈출했다.MAYA문명은 내륙을 벗어나 해안생활을 목표로 삼았다때문에 교역은 육로에서 해로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며 즉, “엄청난 지진도, 전염병도, 저주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해안으로 서서히 옮겨갔고, 마야인들이 해안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스페인의 정복이 시작됐다”고 밝혔다.나는 이 보고를 읽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도했다.MAYA가 극심한 가뭄이나 질병, 혹은 스페인의 침략으로 멸망하지 않고더 좋은 곳으로 삶의 터전을 삼아 떠났기를.그리고 그들이 잘 살고 어딘가에 그들의 후손들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살고 있기를...

 

 

 

그러나 지금은 어떤 민족보다 뛰어난 문명을 일궜던 마야는 15세기 무렵부터 스페인의 침략으로 모든 문명이 완전하게 사라지고 밀림으로 뒤덮혔던 유적은 겨우 발견되어 현재는 일부만이 남아 관광객을 맞고있다

세계 여러곳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의 입장료만도 하루에 1억원의 수입이라니,마야의 후손들이 조상의 덕을 톡톡히 보며 사는 셈이다.

MAYA문명의 숨결과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서, 나는 온 종일을 보냈다.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유적들을 보기 위해 종일을 걸어 다녔다.

길가에는 마야의 후예답게, 태양력 시계, 목각, 돌로 조각한 동물 인형들, 천으로 만든 벽걸이, 장신구 등 많은 토산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있다.

겨우 존재하는 그 후손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거나유적지에서 역사의 재현을 보여주며 살아가고있다

멕시코 국가의 관광수입은 대단한데 비해 개인적으로 마야의 후손들은 왠지 애잔하게 보인다.

 

* MAYA의 유적을 보려면 요즘 신혼여행지로 Hot하게 뜨고 있는 Mexyco, Cancun(칸쿤)으로 가는것이 좋다.

칸쿤은 1970년까지는 100여 명의 마야인들이 낚시와 채집을 하며 지내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 민간기업과 멕시코 정부가 공동으로 3년간 지정학적 조사를 한 결과, 국제적인 휴양지로 개발할 만한 최적의 장소로 선정되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MAYA의 유적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서울에서 경기도 고양시 가는 버스를 타고중남미 문화원으로 가는것도 바람직하다

이곳엔 1992년 중남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셨던 이복형 대사와 그의 부인이신 홍갑표 이사장이 그 지역의 풍물을 모아 세운 문화의 장이다.중남미박물관에서는 마야, 잉카, 아즈테카 등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각국의 찬란했던 고대 문화유산과 역사, 생활상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으며 작고 예쁜 성당이 있고 중남미풍의 검은 마리아상이 모셔져있다.

 

중남미 문화원 :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 302-1 전화 : 031- 962- 7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