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古宮산책

王과妃의 신주 49위가 모셔진 宗廟(종묘)

Chris Yoon 2021. 11. 12. 07:07

훠이, 훠이. -

이승에서 못 다 푼 삶. 저승가서 잘 푸시오.

한 나라의 임금이었을망정 왜 한이 없으리오.

임금이 승하해도 용마루에 올라 그의 옷을 흔들어 그의 임종을 알리는 풍습은 같았다.

 

 

종묘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에 반드시 도읍지에 세워야 했고,
그 위치나 형식등도 따로 규정한 제도에 의거해 정해야 했다.
지금 서울의 종묘는 1395년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한 후에 지었다.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경복궁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종묘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08년에 중건하였다.
건립 후 모시는 신주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차례 건물 규모를 늘려 현재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국보 제227호

 

 

종묘의 정전
왕과 왕비의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정전은 19칸으로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 49위가 모셔저 있다.
하월대는 동·서월랑 양끝에서부터 남쪽 신문 앞까지 정전 울타리 안을 가득 메운다.
크기가 동서 109m 남북이 69m로 단일 월대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거행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56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넓은 종묘에 5월이 오면 붉은 도포입은 사내들이 祭를 올리러 올것이다
평소 닫혀 있는 정전의 신실 출입문은 제사 때가 되면 열리고 신실 내부의 신주장(神主欌) 위에 편히 모셔져 있던 왕과 왕비들의 신주는 신주장 조금 앞에 마련되어 있는 신탑(神榻)으로 내어 모셔져, 후손을 만날 준비를 하게 된다.
신탑 바로 앞의 제상 위에는 60여 기의 제기(祭器)에 소, 양, 돼지 등 3가지 육류의 익힌 것과 날 것을 포함하여 곡류, 떡, 과일, 채소절임, 젓갈류 등의 정성스럽게 준비한 제사 음식이 정갈하게 올려진다.
4종류의 술도 바치고, 축과 폐도 함께 올려진다
나, 그때가 오면 다시 찾아오리니...

 

 

영녕전(永寧殿)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새롭게 별묘를 지어 추존왕(실제 왕은 아니지만 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과
제위기간이 짧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곳이다.

서협실(西狹室) 6칸에는 정종, 문종, 단종, 덕종(추존 왕), 예종, 인종과 그 왕비들 신주를,
동협실(東狹室) 6칸에는 명종, 원종(추존 왕), 경종, 진종(추존 왕), 장조(추존 왕)와 그 왕비들의 신주를 모셨다.
비어 있던 제일 마지막 칸에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왕과 그 비(妃)를 모셔,
모두 34위의 신주를 16칸의 신실에 모시고 있다.

 

 

향대청의 좌측에는 <재궁(齋宮)>이 있는 데,
재궁은 왕이 머물면서 세자와 함께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으로,
왕과 세자는 이곳에 머물며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임금이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는 곳은 어재실, 어재실 우측이 세자재실, 좌측이 어목욕청이다

 

 

동문으로 정전에 들어가는 길
수복방 옆에 있는 전사청은 종묘대제 때 쓰는 제물, 제기 외에 여러 가지 기구와 운반구를 보관하던 곳.

어린시절, 제삿날. 하루종일 문턱에 앉아 기다리며 할머니의 잰 손놀림을 보았었다

할머니는 재게 제수거리를 다듬으면서도 항상 나를 극진히 보살펴주셨다

종묘에 오면 할머니가 그립다

 

 

정전에는 19칸으로 기둥과 기둥사이에 문이 있고, 이 문을 열고 신실에 들어가게 되어있으며

신실 안에 신주가 모셔저 있다.
그것을 그대로 축소하여 본보기로 만들어 놓았다
19칸을 모두 제수를 차리기로는 예산이 부족하여 태조 한 분께만 차린다고 한다
한 분 상 차리는데만 무려150만원 가까이 든다고...

 

 

19칸 역대 王과 妃의 명단이다
태종, 세종, 세조, 효종, 현종,정조,순조, 문조,철종,고종의 곁에는 왕비가 한 분씩계시다
그러나 숙종의 곁에는 왕비가 세분이나 계시다
자칫 희빈 장씨까지 했더라면 도합 네분이 될뻔했다
숙종은 현세에도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알려져있다

尹氏 성을 가진 妃가 다섯분,
波平尹氏 집안은 제일 많은 王妃를 배출해낸 집안이었다
얼마나 빡세게 女息의 교육에 전력투구 했을까?...
나는 지금도 마지막 왕후, 순정효 왕비가 돌아가신후, 종로거리를 메우며 장례행렬을 따라가던 인파를 기억한다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펴들었다
현재 정전에는 열 아홉개의 방이있다
각 방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있다
이 방을 신실, 또는 감실이라고 한다
신실 한 칸, 한 칸이 모여 정전을 이룬다
처음부터 이렇게 크게 지은건 아니고 1395년(태조4년)에 종묘가 처음 지어졌을때는
신실 다섯칸과 협실 두 칸의 규모에 지나지않았다

 

 

 

망묘루(望廟樓)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조상님을 추모하고
나라와 백성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어진 건물,
임금이 종묘에 도착하면 잠시 머물러 쉬면서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하던 곳이다.

나, 그곳에 앉아 향대청을 보며 책을 읽는다
그대, 그리워라
책 읽다 한 군데 쉬어 눈 가는곳마다...

향대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내린 향, 축문, 폐백과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