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禪 Series III / 沙鉢歌(사발가) - 효전스님의 수필

Chris Yoon 2021. 11. 10. 05:58

 

 

沙鉢歌 (사발가)

안개가 자욱하게 끼인 이른 아침, 여느날과 같이 삽살이 봉두와 산길을 한 바퀴 돌러 갔다.
길에서 누구를 만나 잠시 인사하는 사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녀석은 지루 했던지 슬그머니 딴 길로 새어 버리고
하는수 없이 각자 지는 지대로 나는 나대로 산을 한 바퀴 돌다가 돌아왔다.
딴 길로 샌 녀석이 30분 안으로 집으로 자진 귀가하여 돌아오면 걱정이 안되는데
그 이상을 넘으면 사방 팔방 온데로 이리저리 찾으러 다니게 된다.
예전에도 녀석은 나와 포행을 가다 다른 길로 샌 적이 여러번 있었으며 녀석을 탐낸 어느 맘씨 고약한 사람이

녀석을 억지로 잡아 자기 집의 후미진 기둥에다 몰래 묶어 숨겨둔 것을
내가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극적으로(?)사흘만에 찾아 데려온 적이 있었다.
찻길도 걱정이 되고 돌아 다니는 개를 잡아 파는 개 장수등에게 혹시라도 붙잡혀 갔을까 걱정하여
"나쁜 녀석, 말 안듣고 나를 이렇게 애 먹이고 있다" 라고 혼자 욕을 하면서도
내 속은 어린 자식을 잃어버린 어미 심정이 되어 사방으로 찾고 수소문하여 밤에도 밖에서 무슨 뽀씨락 소리만 나면 녀석인가 하고 밖으로 뛰어 나가 이리 저리 살폈다.
이 놈이 도대체 어디로 간거야. 밥은 얻어 먹고 다니는지,

어디서 떨지 않고 자는지 도무지 애가 타고 입이 바싹하고 말랐다.
우찌 우찌 이차 저차하여 극적으로 녀석의 소재를 파악하여 찾아가 삼 일만에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되었다.
"아이고 이 놈아, 내가 왔다." 녀석도 그 상황에 놀랐는지 온통 수세같이 엉컬어진 머리털과
그간 집으로 좀 보내 달라고 울고 불고 했는지 얼굴에는 땟국물과 눈물자국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녀석도 너무 감격 했는지 내게 얼른 그 큰 덩치가 안기며 털복숭이 얼굴을 내게 부비고 어쩔줄을 모르며
아주 십년 감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만 저만 저만 이만 그간의 고초를 내게 일러 이야기 하는듯 하였다.
한마디로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아니 아들" 그 자체였다.
녀석은 그 새 옳게 얻어 먹지도 못했는지 배가 쏙 다 들어가고 수척하여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몰골 같았다.
나는 감격하여 녀석의 목덜미를 부여안고 쓰다듬으며 녀석의 귀에다 얼굴을 대고
"아이고,니를 찾아 다행이다.이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아느냐? 길에는 차가 저리 다니고.
지금처럼 나쁜 아자씨가 너를 잡아 가기도 하는 곳이 이 세상이란데야.
이렇게 찾았으니 되었고 다음부턴 오늘처럼 제발 애 태우지 말거라. 알겠지?" 라고 아이에게 타이러듯이 말했다.
다행이다. 이 녀석을 찾아서. 손등으로 녀석의 눈물자국을 닦아주고
집으로 둘이 털레털레 오면서 당부하는 말을 녀석이 알아 듣던지 말던지 두런두런 하면서 산길을 돌아 나오는데 문득 증조 할머니와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집을 나가 사흘만 안와도 이리 애가 타고 마르는데 외아들을 전쟁통에 잃어 버리고 날마다 장독간에서 정안수 떠놓고 아들이 꼭 살아 찾아 오기를 기다리시던 증조 할머니의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면서
뱃속 저편 어딘가에서 시큰한 무언가가 치받아 오르면서 뜨거운 눈물이 났다.
늙은 오동나무 열매가 까맣게 달리고 찬 바람이 쓸쓸히 불던 어느 시월의 늦은 가을 날.
옆집 툇마루가에 걸터앉아 동동주 한 사발을 얻어 마시고 그 백발의 기미머리를 이마 위로 흩날리며,

슬픈 어깨를 들썩이며 '사발가'를 손사래까지 치면서 슬피 부르시던 할머니를 나는 그때 생전 처음 보았다.
석탄 백탄 타듯이 그렇게 까맣게 타 버렸을 그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그걸 늙은 감나무 뒤에서 가만히 몰래 서서 지켜보던 내 어린 가슴도 펄펄 그리 타는듯 하였다.
하늘 저편가에 거울처럼 떠 있는 하얀 달을 보면서 할머니가 그때 부르던 사발가를 가만히 부르며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글/ 효전 / 구룡사 주지, 수필가.

 

 

좌 / 1987년 지리산에서의 효전스님스무살 무렵, 그의 꿈많고 꽃다운 영혼이 맑은 개울물과 어울리는 어느 봄 날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다이 사진을 볼 적마다 나는 <春夢>을 떠올린다

 

우 / 효전스님이 기르는 봉두 (삽살犬)
前生에 어떤 인연이 있었길래 효전 스님과 함께 지낼까...
추워서 떨지말라고 목에 머플러를 둘러준 효전스님의 자애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