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국내여행

Summer, Journey II / 평창 이효석 문학관

Chris Yoon 2021. 10. 26. 12:51

 

첩첩산골 강원도 평창땅을 지나가다가 하얀 소금을 뿌린듯한 메밀밭을 보거든 차를 세워주십시요.

그곳엔 문학과, 최상급 에로티시즘과, 정이 듬뿍 담긴 인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역마살이 낀 인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김환기의 그림같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같은 막연한 그리움의 세계, 그러면서도 거짓말처럼 혈육을 끌어 당기게하는 드라마틱한 요소들...

한번쯤 들려서 소설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보십시요.

 

 

 

우리나라 고속도로 터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영동1호터널 부근에는 태기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는 이효석(李孝石) 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들어가면 그가 쓴 '메밀꽃 필 무렵'의 이야기와 그가 공부하던 사진, 또한 소설의 모티브가 구성된 장터거리, 주인공들의 미니어쳐가 만들어져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이효석의 생가를 찾아가 볼 수 있으며 그 뒤로 돌아가면 문학공부를 하며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영상실및 문학자료실과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는 '달빛 문학관'등이 있다.


- 주소 :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학길 73-25 봉평면 창동리 544-3 (지번)전화 : 033-330-2700

- Photo : Chris Yoon

- Copy :: 윤필립{尹馝粒)

 

 

 

episode

 

 

이효석 (1907~1942)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가산(可山).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나 어디 없이 하얀 꽃”이 피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에서 이시후(李始厚)의 맏아들로 태어나 가정 사숙에서 한학을 배웠다.

그가 제법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생가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1920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재학시절 조선인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기관지 〈문우〉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체호프(Chekhov, A.)에 탐닉하기도 하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이 같은 외국문학의 영향을 적절히 소화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자연이나 인생을 바라보는 문학관에 있어서 싱그(Synge, J. M)나 로렌스(Lawrence, D. H) 등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표현이나 구성의 기법면에서는 체호프·맨스필드(Mansfield, K.)등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향토색 짙은 전원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학창 시절부터 러시아의 체호프와 아일랜드의 극작가 싱그의 작품을 즐겨 읽었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의 서양 고전 음악에 빠져들었다. 세련된 의상 감각과 까다로운 식성을 지니고 있던 그는 외국 영화를 좋아하고 샹송도 즐겨 들을 만큼 유럽 문화에 다양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취향은 뒷날 「성화」 · 「거리의 목가」 · 「화분」 · 「벽공 무한」 같은 소설에서 이국적 분위기를 돋우는 배경으로 쓰이기도 한다.

훗날 K. 맨스필드, A. 체호프, H. J. 입센, T. 만 등의 작품을 즐겨 읽으며 문학관의 정립에 힘썼다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에 대한 동경을 소설화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은 산문적 서정성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인 메밀꽃 핀 개울가는 단순히 정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를 하나로 포함하며, 인연의 매체로 나타나 있다.

1940년에 상처(喪妻)를 하고 거기에 유아(乳兒)마저 잃은 뒤 극심한 실의에 빠져 만주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이때부터 건강을 해치고, 따라서 작품 활동도 활발하지 못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고, 20여일 후 36세로 요절하였다.

 

 

보이는 곳마다 하얀 메밀밭인 평창에 인텔리젠트하게 생긴 한 남자가 곱게 머리를 빗어넘기고 글을 쓰고있다.

옆에는 타이프라이터가 있고 즐겨 샹송을 듣던 축음기가 돌아가고 있고 방금전에 마신 커피잔도 있다.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유리벽, 책들이 빼곡히 꽂혀 또 하나의 벽을 만든 곳에한 남자가 푸른 셔츠에 선그래스를 끼고 카메라를 들고 서있다.

이효석의 발자취를 찾아 단숨에 달려온 것이다.

그날, 그들은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 당시 러시아의 체호프와 아일랜드의 극작가 싱그의 작품을 즐겨 읽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의 서양 고전 음악을 들으며 외국 영화를 좋아하고 샹송도 즐겨 들었다면 유럽 문화에 일찍 젖은 모더니스트의 창시자가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 훗날, 선생님의 작품세계의 특질은 한마디로 향수의 문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고향의 산천을 무대로 한 향토적 정서 표현으로 나타났고, 「들」·「분녀」 등에서는 근원적으로 인간 자체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원초적 에로티시즘(primitive eroticism)으로 나타났습니다.

 

 

(귓속말로) 선생님, 허생원이 방앗간에서 시집가기 싫어 울고있는 성서방네집 처녀를 유린한것은 연민이었나요?

본능이었나요?

그리고도 말없이 헤어진후 오랜 세월이 지난건 윤리상 납득할 수 있는 일인가요?

 

 

-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 동이가 왼손잡이임을 밝혀 허생원의 아들임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왼손잡이는 유전이 아니라고 현대의학에서 발표했습니다.

 

- 젊은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fiction)이야. 그것은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동경과 꿈의 결정체로 봐 줘.

그는 지성인다운 창백한 얼굴로 펜으로 잉크를 찍어 원고지에 글을 쓴다.

나는 아무것도 찍을 수 없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앞에놓고 또 다른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만 맴돌고 다른 질문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앉아 한나절을 보냈다.

 

- Photo / Andy Lim

- Copy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