兩水里에서 - 내비게이터를 끈 여행
가을이다단풍은 어느새 절정을 넘어서 떨어져 딩굴고
강물은 한층 더 깊어진듯 조용히 소리내어 흐른다
이런날, 혼자 여행이라도 떠나보자
내비게이터를 끄고 마음 내키는대로 핸들을 조정하면서...
그 떠나기전의 설레임은 얼마나 우리를 Estasi의 경지로 몰아넣는가!!!
내비게이터를 켜지않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다보면
미사리를 지나고 어느덧 양수리에 닿는다. 우리는...
마재...옛 이름도 정다운 곳.
이제부터 마음속에 있는 빈 종이에 한 줄, 한 줄... 詩를 쓰며 가보자
가을은 강가에 미리 와 있었다 윤필립
가을은 그냥 오는게 아니었다
당신과 내가
여름의 고통속에서
무던히 인내하는 사이
노을처럼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있었다
붉은 노을이 떨어지는 가을 강은 외로움이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빈 돌밭은
더 큰 외로움이다
뜨겁던 햇살아래 열기를 식히던
무더운 여름은 이제 가고 없는가
강 건너에도 가을이 내려 앉고 있다
쑥부쟁이 피어나는 강둑을 넘어
가을햇살은 전생처럼
긴 강을따라 유유히 흐르고만 있다
늦여름비가 간간히 홑뿌렸던 그날
가슴은 찌를듯 아팠다오늘을 위해
그러나 지금은 외로운 가을가을은 강가에 미리 와 있었다
내 마음의 고기 한 마리 유 하
- 양수리에서
늦가을 강바람 속으로 매순간
힘없이 메마른 숨결의 손을 놓는 나뭇잎들과 같이
지금 돌연 내가 죽어 없어진다 해도
저 강물은 계속 흐를 것이다 간혹
물 위에 떠가는 낙엽이나 갈대 부스러기처럼
내 죽음이 쓸쓸히 노을의 저편으로 흘러가도
강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바로 눈앞으로 흐르는
강물이란 강물 다 지나가버려도
강의 호흡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듯,
영영 떠내려가버릴 것 같은 죽은 나뭇잎들
푸르름의 기억을 되살려 나무의 뿌리로 되돌아오듯,
내 육신의 죽음이 진정 나를 죽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본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려 해도
그대로 온통 강물인 양수리의 삶을
뭐 하나 뾰족할것 없는 생의 굴레를
하여, 살아온 날들의 온갖 희희낙락과 절망들이여
살아갈 날들의 하릴없는 기대감들이여
그만, 잔잔하라 고인 물처럼 잔잔하라
강물이 끝내 강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수백 생 동안 죽음의 진화 작용을 해왔을 내 모습
이제 그 깊은곳에 사는
마음의 참붕어 한 마리 보고 싶다. 양수리에서
내비게이터 끈 여행 황동규
목적 없이 홀가분도 없이 떠나는 것이 여행 가운데서도 상품(上品)인데
가는 도중 새로 태어난 길 탐나 슬쩍 들었다가
더 새로 태어난 길을 만나 긴요한 일 두고 온 게 불현듯 떠오른 듯 되돌아오면 어때?
스테파노의 나폴리 민요가 내비게이터를 꺼버려 대충 방향 잡고 돌아오는 길, 도로가 한갓지다.
나무 솎아낸 말쑥한 숲과 분홍 보라빛 맥문동 한창 핀 옛 동네를 살짝 피했다.
하늘에는 멎은 듯 흐르는 넓은 구름 강물 있다가 없다가 다시 있는 것들의 모습.
이왕 길을 벗어난 김에 물새들과 알 듯 모를 듯 같이 걷는 해변,
번지는 황혼, 금빛 우려낸 빛이 사방에 어른댄다.
바다를 향해 내논 테이블에 간단한 안주와 토속주 한잔, 눈앞에 캠프파이어가 불타는 삶이 꼭 있어야 하겠나?
하늘에 희한하게 하얀 반달 하나 찾으면 있고, 않으면 없고.
『사는 기쁨 』황동규 시집 2013
The Hidden Valle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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