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南 Europe

참 오래된 호텔

Chris Yoon 2021. 10. 22. 00:55

참 오래된 호텔

 

 

참 오래된 호텔.

밤이 되면 고양이처럼 강가에 웅크린 호텔.

그런 호텔이 있다.

가슴속엔 1992, 1993....번호가 매겨진 방들이 있고,

내가 투숙한 방 옆에는 사랑하는 그대도 잠들어 있다고 해지는 그런 호텔.

내 가슴속에 호텔이 있고, 또 호텔 속에 내가 있다.

내 가슴속 호텔 속에 푸른 담요가 덮인 침대가 있고,

또 그 침대 속에 내가 누워 있고, 또 드러누운 내 가슴속에 그 텔이 있다.

내 가슴속 호텔 밖으로 푸른 강이 구겨진 양모의 주름처럼 흐르고,

관광객을 가은 배가 내 머리까지 차올랐다 내려갔다 하고.

술 마시고 머리 아픈 내가 또 그 강을 바라보기 도 하고.

손잡이를 내 쪽으로 세게 당겨야 열리는 창문 앞에 나는 서 있기도 한다.

호텔숨을 쉬고, 맥박이 뛰고,

복도론 붉은 카펫 위를 소리나지 않는 청소기가 지나고,

흰 모자를 쓴 여자가 모자를 털며 허리를 펴기도 한다.

내 가슴속 호텔의 각 방의 열쇠는 프런트에 맡있고,

나는 주머니에 한 뭉치 보이지 않는 열쇠를 갖고 있지만,

내 마음대로 가슴속 그 호텔문을 열고 어갈 수가 없다.

아, 밤에는 그 호텔 방들에 불이 켜지든가?

불이 켜지면 나담요를 들치고, 내 가슴속 호텔 방문들을 열어제치고 싶다.

열망으로 내 배꼽이 환해진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방문이 열리지 않을 땐 힘센 사람을 부르고 싶다.

비 맞은 고양이처럼 뛰어가기도 하는 호텔.

나를 번쩍 들어올려, 창밖으로 내던지기도 하는 그런 호텔.

그 호텔 복도 끝 괘종시계 뒤에는 내 잠을 훔쳐간 미친 내가 또 숨어 있다는데.

그 호텔. 불 끈 밤이 되면, 무덤에서 갓 출토된 왕관처럼 여기가 어디야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자다가 일어나서 보면 내가 봐도 낯선 호텔.

내 몸 속의 모든 창문을 열면 박공 지붕 아래,

지붕을 매단 원고지에서처럼 칸칸마다 그대가 얼굴을 내미호텔.

아침이 되면 강물 속으로 밤고양이처럼 달아나 강물 위로 다시 창문을 매다는 그런 호텔.


- Photo :: 헤롤츠 브르크의 낡은 호텔에-

- 詩 :: 김혜순의 <참 오래된 호텔>에서

 

 

해외 여행을 하다보면 인터넷으로 숙소를 예약하고 찾아가게 된다.
막상 가보면 이런 남루한 곳도 있나?... 싶을 정도로 실망하기 일쑤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런 곳들은 건축에 손을 못 대는 고색창연한 유서깊은 마을들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산책을 나가면 흔히 외양간을 개조하여 말똥냄새가 배어있는
오래된 목조건물도 있다.
이런 경우의 낭패함은 화장실이다.
체격이 큰 사람은 돌아서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샤워시설만 있고
좁다보니 화장실과 샤워실이 출입문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따로 분리된 경우도 있다.
윗 사진도 그런 곳이었다.
라지에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좁은방에 침대가 놓여
출입구까지 몇 발자욱 옮기는것도 어렵게 발을 떼어놓아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구석으로 노출된 배관통, 작은 여닫이 창문, 손으로 만든 커튼, 하얗게 손질한 침구...
이 얼마나 정겨운 풍경들인가!
사진을 찍어보니 마치 오래된 프랑스영화의 배경이 된 아주 오래된 호텔같다.
나는 당시엔 조금 불편했는지 몰라도 아직도 나를 모노톤 흑백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그 오래된 호텔을 잊지 못한다.

노르웨이 호텔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노르웨이를 다녀온 사람들은 '살인적인 물가때문에 간신히 돌아왔다'고 답할 정도로
물가가 비싼 나라다.
인근 프랑스, 스페인등 5개국을 여행할 정도의 비용과 맞먹는 곳이다.
스타방가에서 가장 저렴한 2인용 호텔방도 1인당 14 - 15만원선이다.
2인용 방인데 혼자 줘서 비싼 방 혼자 쓰게되어 좋다고 하다보면
밤 1시가 되어 다른 여행자가 들어온다.
이런 날 밤은 그 여행자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소리가 삐걱대는 침대에서 업치락 뒷치락하며 밤을 새우기 일수다.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