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 Jan Nepomucky
카를橋위의 聖 얀 네포무츠키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카톨릭 聖人이 있다.
그 이름하여 Sv. Jan Nepomucky (聖 얀 네포무츠키).
1380년 성비트 성당의 제단 성직자를 지낸뒤 1383 - 1387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프라하로 돌아와 1389년 프라하 대주교 자리를 거친후 1390년 성하벨 교회의 본당 신부가 되었다.
3년뒤인 1393년 3월 20일 바츨라프 4세왕 (카를 4세의 아들)에 의해서 암살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인간의 애욕과 질투에 의해 저질러진 불륜이다.
이야기인즉은까를 4세의 아들 바츨라프 4세왕은 전쟁으로 城을 자주 비웠다.
그틈에 왕비 소피아가 호위병과 눈이 맞아 간통을 하게되었다. (그럴수밖에 없었겠지.한창 나이에 잠자리는 허전하고 기막히게 잘 생긴 꽃미남 호위병은 옆에 있고.)어느날 왕비가 죄책감에 네포무츠키 신부를 찾아가 '나는 불륜을 저질렀어요'라고 고해성사를 하였는데 그걸 우연찮게 어떤 신하가 듣고는 왕에게 꼰질렀겠다
그렇지않아도 상당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당연히 바츨라프는 눈이 뒤집어졌겠지 (사실 그마음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바츨라프 4세는 네포무츠키 신부를 추궁하며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이실직고를 하라고 했지만네포신부는 답변하지 않는다
* 여기서 잠깐, 蛇足을 달자면 -
사제는 고해성사로 들은 이야기들을 무슨일이 있어도 발설 해서는 안된다
흘러간 영화 에서도 살인사건을 목격한 신부 몽고메리 크리프트의 고민하는
우수에 찬 눈빛을 나이든 영화펜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현실에서도 가끔 있어서 고해성사라는 것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면 참 많은 신부님들이
고초를 겪었다한다. 어떤 살인자의 고해성사를 듣고도 증인을 서지 않아 그 신부님이 죄를 다 뒤집어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는데 진법이 다른 죄로 잡혀와서 만났던 신부님도 계시고.
이런 이유로 고해 성사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고해성사는 죄로써 병든 영혼과 상처받은 영혼을 안아주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으면 한다.
아무튼 모진 문으로 실신한 네포무츠키는 딱 한사람에게만 그 내용을 말해주겠다 한다
왕은 자신의 개와 함께 네포무츠키가 갇힌 감옥을 찾았는데,
모진 고문으로 정신을 잃은 네포무츠키가 개의 귀에다 그 내용을 말해주었다.
끝내 대답을 듣지 못하고 약이 바싹 오른 바츨라프는 네포묵신부를 고문하면서 닥달했지만 신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혀를 잘리고 십자가에 묶여 까를교 (지금 동상이 서있는) 자리에서 수장을 당했다.
그일이 있은후 나라에는 좋지않은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어느날 블타바 강위로 5개의 별이뜨고 그 별들이 떠있는 곳에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시신이 떠오르고, 그의 시체를 인양하여 성당에 안치하자 그간 좋지 않았던 일들은 점점 사라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온 나라에 퍼져 나가면서 국민들은 점점 그를 숭배하게 되었고 1729년 얀 네포무츠키 신부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십자가를 십자가를 안고 머리엔 다섯개의 별이 떠있는 형상으로 다리를 지키는 수호 성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성상은 카를교위 30개의 성상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일하게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다른것으 석조물)다리의 수호신답게 카를교 뿐만아니라 유럽의 여러다리에서도 얀 네포무츠키 성인상을 자주 접할수있다.
카를橋위의 Sv. Jan Nepomucky (聖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 밑, 현판에는 칠이 벗겨지듯 반들반들한청동빛 그대로의 부조가 있다오늘도 사람들은 줄을 서서 그 부조를 만지며 눈을 감고 소원을 빈다
왼쪽의 개를 만지면 한해동안 배우자나 연인이 바람피지 않고, 오른쪽의 다리에서 떨어지고 있는 네포무츠키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나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내 순서가 오자 뒤에 서있는 외국청년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촬영을 부탁하고 손을 내밀어 현판을 만졌다,
아뿔사! 그런데 이게 생각해보니... 왼쪽을 만지면 배우자가 불륜을 안지른다고 했던가.
그러나 나는 알고있다. 내가 불륜을 저질르면 저질렀지 나의 배우자는 결코 불륜을 저지를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현대를 살면서도 은장도를 가슴 깊이 품고 사는 이조시대의 여성이다
때로는 '불륜이 더 아름답다'느니, '갈 곳없는 그들에게 이제 하늘도 용서를 하고 축복이 내리기를 빈다'느니 불륜을 예찬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성큼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불륜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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