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venir Praha
미술이 요즘처럼 문화의 공감교류와 지위높은 지식인들의 휴식과 재산축적으로 여겨지지않던 가난과 굶주림의 시절,
나는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일찌기 서울예고와 홍익대학을 갔다.
그리고 어렵사리 공부를 끝내고 그 덕으로 오늘까지 살아왔다.
미술로 큰 돈은 못 벌었지만 아트디렉터(Art director)라는 직업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감각을 팔아먹는 일로 세상을 살았으니
미술공부를 한것과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이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4B연필과 붓을 놓은지 얼마나 되었던가?
더구나 음지식물이 고개를 빛 쪽으로 향하듯 작품을 하기위해
그 무한한 사고(思考)와 뜨겁던 열정은 다 어디로 갔을까?...
軍복무를 끝내고 딱 3년만 벌고 다시 돌아가겠다던 그 이끼낀 고향같은 순수의 화단(畵團).
그러나 다시는 못 돌아가고 평생을 타국에서 살아온 기분이다.
고등학교 당시 뎃상과 크로키 실력은 전교 1등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대학도 졸업하기전, 이미 최연소자 국전입상 이라는 화려한 경력과 대학미전 금상이라는 영예의 이력.
그래서 까를橋 위 거리의 화가들을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그림들을 눈 여겨보며 지나간다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하는 그림들이 아니고 주로 손쉽게 빨리 그리는 캐리커쳐 방식이다.
* (Caricature / 사물의 특징을 과장해서 노출시켜 풍자적 의도에 따라서 신랄하게 그린 작품.본래 희화(繪畵)의 용어이나 현재에는 널리 문학 작품에 관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 오늘 재미가 어때? ( Hay, What's New?)
그 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 별로 신통치않은 날이야. (Same as ever)
언어의 깊은 묘미를 살릴 수 없어 이제부터는 한글로 번역하겠다
- 그럼 이제부터 재미있게 해줄까?
- 어떻게?
- 나도 미술을 전공했거든. 고등학교3년, 대학교 4년, 그리고...
나머지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너무 자랑이 긴것 같아서
- 난 미술대학 근처에도 안 가봤어. 오로지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이 좋았을 뿐이지
- 내 캐리커쳐 한 장 그려주지 않을래?
- 앉아봐
그는 나를 comic하게(아주 익살스럽게 그려주었다.
선그라스를 벗은 내눈은 위로 째지고, 광대뼈는 두드러지고, 웃는 입은 귀 밑까지 째져서 귀에 걸렸다
- Waw~! 이게 나야? 그럼 이번엔 네가 앉아봐.
그리고 그의 얼굴에 주먹만한 코를 붙이고 눈꼬리를 아래로 처지게 그려줬다
- Waw~! Oh my god.
우리는 블타바강이 흐르는 까를교 위에서 만나 오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초상화를 서로 그려주고,
헤어질때 뜨겁게 끌어안았다
위의 연필로 그린 프라하 스케치는 그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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