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하다는 것 정일근
죽으러 간다는 나의 출항신고에
전화기를 든 채 하얗게 굳어 버리는
이 백리 밖 너의 모습이 아프게 읽힌다
바다로 떠나는 사람을 위해 울지 마라
바다에선 하늘과 바다가 하나이듯
바다에서 살고 죽는 일도 하나다
신대륙을 찾아 떠났던 대항해시대부터
많은 배들이 바다로 떠났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돌아온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은 것도 아니다
박수를 받으며 귀향한 사람에게
바다는 훈장 같은 영광이지만
아직도 회귀하지 않는 사람에게
바다는 수평의 푸른 무덤이지만
바다에서의 일은 바다만이 아는 것이지만
나는 너에게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귀신고래가 회유하듯
열망하는 기다림으로 돌아올 것이니
출항에서 귀항까지
바다는 절실한 기도 같은 것
나는 바다에서 너는 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절실하면 되리라
거친 파도 위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해도
아름다운 신대륙에 닿았다 해도
나는 너에게 절실할 것이니
기다린다는 것은 절실해야 되리라
바다에 통곡의 피눈물을 더한다 해도
바다는 결코 붉어지지 않지만
날 선 칼날 위에 무릎 꿇듯 절실하다면
폭풍과 해일에도 휩쓸리지 않으려니
오대양쯤은 단숨에 훌쩍 뛰어 건널 것이니
윗 詩는 울산이 고향인 정일근 시인의 詩이다
내가 대학시절에 울산을 찾았을때만 해도 울산은 작은 어촌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태화강을 경계로 현재의 구 울산역을 중심으로 인가가 모여살며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후 현대 구룹이 들어서면서 신도시가 건설되며 급격히 발전하고 그에 따라 타지에서 모여든 인구가 포화상태에 이르며 가도가도 끝이 없던 바닷가 풍경은 거대한 현대구룹의 공장으로 변하였다
그 시절 시외버스를 타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따라 방어진만 가도 솥을 걸어놓고 부둣가에서 고래고기를 삶아 파는 아낙들이 많았으며 선술집에 가면 의례히 고래고기에 막걸리 한 주전자를 마시고 거나하게 취할 수 있었다
울산 장생포에는 지난 1890년대 후반부터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될 때까지 국내 대표적 고래잡이 전진기지 역할을 했으며 한때는 한해 1000여 마리의 고래를 잡기도 했다
지금도 울산의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6~7000년 전 원시인들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냥과 수렵을 병행하며 생활을 했다. 이 암각화에는 여러 동물들이 ‘쪼음’과 ‘긁음’과 ‘선’ 그림으로 새겨져 있고, 특히 대형고래 들이 많이 새겨져 있다.
이 그림들이 그려진 반구대의 태화강 상류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울산공업의 심장부인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염포만이다.
염포만은 수심이 깊고 만이 넓고 길어서 고래가 서식하기 최상의 적지였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범 없는 산중에 토끼가 왕’이란 말 같이 동서해 바다엔 쓸모없는 돌고래 떼만 수면을 어지럽힐 뿐,
귀신고래의 환상적으로 물을 뿜거나, 잠수할 때 마지막 내보이던 나비 날개 짓 같은 꼬리 모습은 영원히 고래의 선사 고향 염포만 울산 앞바다에서도 볼 수가 없어졌다.
고래 기지가 섰던 장생포, 그 자리엔 대한조선공사 대형선박 건조장이 들어섰고 주변 산과 바다는 상전벽해로 변해
추억 속에 옛 정만 더하게 한다.
- Chris Nicol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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