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바다의 그늘 - 심재휘

Chris Yoon 2021. 10. 16. 07:48

 

 

 

그늘                심재휘

 

 

그늘이 짙다

8월 해변에 파라솔을 펴면

정오의 그늘만큼 깊은 우물 하나

속없이 내게로 와 나는

그 마음에 곁방살이하듯

바닷가의 검은빛 안에 든다

 

한나절 높게 울렁거리던 파도가

슬픈 노래의 후렴처럼 잦아드는 때

더운 볕도 기울고 그늘막도 기울어

조금씩 길어지던 그늘은

어느덧 바닷물에 가 닿는다

 

물빛을 닮은 그늘은 넉넉하다

우물 안의 맑은 샘물처럼

그늘은 이제 바다에서 흘러나온다

바다 속의 넓은 고독으로부터

슬며시 빠져나온 손 하나가

내 발을 덮고 가슴을 덮는다 곧 있으면

제 빛의 영토로 돌아갈 찬 손 하나가

 

그러나 그늘은 큰 그늘 속으로 돌아갈 뿐

내 곁에서 사라지지 않으나

다만 내가 못 볼 뿐이니

밝았다 저무는 것은 내 안의 빛이었으니

넓은 넓은 바닷가에

내가 덮고 있는 그늘 하나

해질녘의 그늘 같은, 늘 그리운 사람

 

 

 

'그'를 만나고 바다를 사진 찍기위해 따라 나선게 벌써 3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차를 타고 달려가 바닷가에서 서성거렸던가!

오늘은 삼척에서 내일은 묵호로, 모레는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독도까지...

서해대교를 타고 가다 간월도를 들려 저녁나절까지 안면도로 가서

모레는 무녀도에 도착하여 장항으로...

그렇게 우리는 떠다녔다.

그러는 동안 '그'는 먼 길을 운전하여 목적지까지 날 데려다 놓고

바닷가에 서서 트라이포드를 펼쳐놓고 카메라를 안전하게 얹어주며 내일의 촬영시간에 맞춰

타임스피드를 조절해 주었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추위로 떨고있으면 입고있던 겉옷을 벗어서 주며

바위가 미끄러우니 이곳을 밟으라며 안전하게 발 디딜 곳을 점찍어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는 나의 그늘이 되어주었다.

해질녘의 그늘 같은 '그'.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