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A Walk In December X / 겨울 인사동

Chris Yoon 2021. 11. 8. 02:18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이병률

 

 

빈집으로 들어갈 구실은 없고 바람은 차가워 여관에 갔다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 널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 같은 밤

그 늦은 시각 여관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방에 머물고 있는 사내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러느냐 물었다

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데 사내의 방에 가지 않았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뭔가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가 뭘 기다리는지 들어버려서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말해버리면

바깥에서 뒬굴고 있을 나뭇잎들조차 구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셔츠 끝단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다 듣고 겨우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온다 하고 오지 않는 것들이 보낸 환청이라 생각하였지만

어다 덮는 이불 속이 춥고 복잡하였다

 

 

 

 

 

 

 

 

 

 

오래된 벗, 象國에게서 전화가 왔다.

올해도 거의 다가는데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고 한번 만나자는 것이다.

나는 망서렸다. 시국이 하도 어수선하여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에 6~700명씩 나오다가 1,000명을 육박하는데

어디서 만나 함께 식사를 나누며 정담을 한단 말인가!

그가 잘 간다는 곳을 마다하고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인사동은 참으로 묘한 동네다.

골목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아직도 손을 안대고 다 허물어진 오래된 집에서 국밥을 팔고 잠을 잘 수 있는 여관도 있다.

그러나 가운데 길로 나오면 리모델링을한 가개를 열고 외국인들을 불러 장사를 하고 몇 집건너 갤러리가 있으며

제법 큰 갤러리에서는 끊임없이 미술가들의 전시회가 열리고있어 눈호강을 시킨다.

나와 象國은 골목골목을 다니며 옛향수에 젖어드는 풍경을 사진에 담기도하고 미술대학 출신들답게 전시회에 가서

작가와 이야기도 나누고 나름대로 미술평을 하기도한다.

오늘은 사람을 피해 주로 인적없는 골목을 순례했다.

 

- Poem /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 이병률

- Photo / Copy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