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malaya

산이 된 사람들 I

Chris Yoon 2021. 10. 31. 16:53

 

산은 위험하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자들이 산을 향해 떠나고 또 산을 오른다.

그러다가 산에서 죽어 산이 되고 그 시체는 아직도 눈속에 묻혀 냉동상태로 누워 잠들어있다.

 

젊은아내를 두고 등산을 떠났다가 눈속에 묻혀 내려오지 못한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 아내는 그날부터 남편을 찾아 설산을 뒤졌으나 찾지를 못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어느 봄날, 아직도 남편의 시신을 찾지못한 할머니가 된 아내가 그 날도 설산을 뒤지다 산위의 눈이 녹아 흘러내려오는 물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눈 녹은 물에 떠내려오는 젊은 남편을 보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같이 젊은 남편을 그렇게 다시 만나 끌어 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젊은시절, 어느 책에서 읽은 일이 있다.

그러나 그저 아름다울 수 만은 없는 현실적으로는 너무 가혹한 이야기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 1971년에 히말아야 등반길에 올랐던 경식이 형을 잃었다.

그 후, 나는 그 형이 살면서 못 다한 일들을 한가지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가려던 미술대학을 가고, 공군 사진병이 되고, 알피니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9월 히말라야 등반길에 나섰다.

눈 덮인 바위위에서 카메라 셧터를 누르다 나는 눈 덮인 계곡으로 추락했다.

몽롱한 의식속에서 이제 죽는구나,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발견되겠지... 생각하며 죽음의 길로 서서이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짐을 나르던 포터들에 의해 나는 구출되고 임시치료를 현지에서 받은 후 무통 주사를 꽂은체 귀국하여

바로 수술대에 오르고 치료와 재활에 근 2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오늘 뉴스를 검색하다가 또 다시 히말라야 원정 등반 사고를 읽었다

아! 끝없이 되풀이되는 히말라야 원정 등반 사고, 그리고 산이 되는 사람들...

 

 

13일(현지시간) 네팔 구르자히말산에서 산사태를 만나 한국인 등반대원 5명, 네팔인 셰르파 4명 등 9명이 숨졌다.

그동안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사망한 한국인 산악인은 90여명에 이른다.
1971년 5월 김기섭 대원은 마나슬루 7600m 지점에서 제5캠프를 설치하던 도중
돌풍을 만나 40m 절벽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이 사고는 한국인 최초의 히말라야 사망 사고로 알려져있다.
1998년 9월28일에는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 대원이 히말라야 탈레이사가르를
등반하던 중 눈보라를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우리나라 대표 여성산악인인 고미영 대장은 2009년 7월11일 낭가파르바트(8126m)
정상에서 내려오던 중 눈보라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박영석 대장도 2011년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박 대장이 이끈 원정대는 67일 일정으로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길에 올랐다.

등정을 시작한 지 한달 후인 10월18일 원정대는 "좌우로 눈사태가 심해 전진 캠프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마지막 무전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이번에 숨진 김창호 대장이 당시 실종된 박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 수색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2년엔 히말라야 동부 산맥 촐라체에서 고 김형일, 장지명 대원이 등반 중 추
락해 숨졌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9명으로 구성된 등반대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던 중 베이스캠프에서 강풍에 휩쓸려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이번 등반에 포함된 산악인은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소속의
김창호 대장, 유영직씨, 이재훈씨, 임일진씨 등 이다.

이들은 지난달 28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총 45일간 원정을 계획했었다.
원정대는 네팔 다울라기리 산의 구르자히말(7193m) 남벽 직등에서 신루트 등정에
나섰다. 그래서 이번 원정의 슬로건도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로 정했다.

김창호 대장은 구르자히말의 새로운 등정 루트를 개척할 계획이었지만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숨진채 돌아오지 못했다.

 

2017.10.14.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