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malaya

새(鳥)에 관한 esprit X - epilogue

Chris Yoon 2021. 10. 31. 16:52

새(鳥)에 관한 esprit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들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 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 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타전하는 것 같기에

 

쓸쓸한 날에 / 강윤후

 

 

 


병원에서 돌아와 보니,

뒷간에 기대 놓았던 대빗자루를 타고 박 덩굴이 올라갔데.

병이라는 거, 몸 안에서 하늘 쪽으로 저렇듯 덩굴손을 흔드는 게 아닐까.

생뚱맞게 그런 생각이 들데.

마루기둥에 기대어 박꽃의 시든 입술이나 바라보고 있는데,

추녀 밑으로 거미줄이 보이는 게야.

링거처럼 빗방울 떨어지는 거미줄을 보고 있자니,

병을 다스린다는 거, 저 거미줄처럼 느슨해져야 하는구나.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 거미처럼 때로는 푹 쉬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데.

달포 가까이 제 할 일 놓고 있는 빗자루를,

그래 너 잘 만났다 싶어 부둥켜안은 박 덩굴처럼,

내 몸에도 새로이 핏줄이 돌지 않겠나.

문병하는 박꽃의 작은 잎술을 바라보다가,

나 깊은 잠에 들었었네 그려.

이정록의 <느슨해진다는 것>중에서 발췌

 

 

 

병원을 퇴원하고나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동네에서 친구가하는 병원으로 다니며 고주파 맛사지로 근육과 신경을 되살리는 치료를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떼는 재활치료를 했다.

다섯 발자욱도 못 걷고 나무아래 벤취에 주저앉고, 또 다시 일어서서 여섯걸음을 걷고...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면서 병원에 있는동안 어쩔 수 없이 미루어 놓았던 내 블로그에 문안을 남겨주셨던

모든 분들께 답글을 보내 인사를 했다.

모두 그동안 나의 글과 사진들을 보아주셨던 분들, 그러나 이제는 그분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셨다며 걱정하시는 분, 힘 있는 확신과 격려의 글, ...

그 중 어떤 분은 제주에서부터 나의 글과 사진을 보셨다며 지금은 담양에 와있는데

지나는 길에 들리면 남도 밥상이나 한 상 대접하고 싶다는 분,

어떤분은 치료비에 보태라고 성금을 보내고 싶다는 분, ... 모두 감격스런 글들이었다.

나는 꼭 일년만에 건강을 되찾아 그 분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만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 안부를 전한다.

 

그 중 한 분의 이야기를 쓰려한다.

나에게 초대를 하여 대나무 숲속의 오래된 집으로 데려가 정갈한 남도 정식을 함께 나눈 분이 계시다.

그 분과 인연을 쌓았는데 어느날, 그 분은 나를 떠나야겠다고 했다.

나와 감정의 교류를 하다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감성적인 나의 세계에서 머물러 있다가 이성적으로 돌아가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그분은 담양의 경찰서장으로 계시다가 현재 강력 수사반에 계신분이다.

나는 충분히 그 분을 이해하기로했다.

강력범죄를 수사하면서 나의 감성적인 글은 그 분의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했을것이다.

 

마찬가지다.

그 때 나는 알았다.

사람은 감성적인 면과 이성적인 면으로 일을 나눠 한다는 것을.

의사도 마찬가지다. 이성적이라야 한다.

허리나은 병원의 이재학 원장의 능력은 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M.R.I., C.T., X- Ray, 신경검사 등으로 정확한 진단후 치료, 수술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소 차갑고 냉철해 보이지만 결코 감성적으로 처리해서는 안되는 직업이다.

내가 5년만에 그를 만났을때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치료가 끝나고 그에게 말했다.

- 가까이 있다고 함께 하는 것은 아니겠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당신을 늘 생각하며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더 나이가 들면 당신을 찾을것입니다.

그렇다. 감성적인 일을 하는 사람과 이성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섞여서 일을 혼동시키면 안된다.

때로는 환자가 되어 인터뷰에 응하며 의사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건 실례다.

좀 더 가까이서, 필요에 의해, 그 의사에게 접근하고 싶어서일게다.

의사는 식사시간도 없이 바쁜 사람이다.

오전에는 진료를 하고, 오후에는 수술을 하고 정신없이 옳은 판단과 그 판단한 것들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냥 감성적인 사람은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을 그리워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감성적인 사람들의 지혜와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좋아해주자.

그러면서...

늘 곁에 있듯이,

마음속으로 가끔씩 안부를 전하자.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