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鳥)에 관한 esprit
십일월의 가을비가
쉬어가는 듯 잠시 목을 축이고
늦은 새벽
정형외과 632호 병실
창가 커튼 사이로 기웃거리며
엷은 아침햇살이 한 가닥 길게 내려앉는다
어제 떠난 두 사람
주인 보낸 침대 위엔 아픔의 상처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빈자리만
지키고 있다
나는 언제쯤 퇴원할까
마음만은 가볍지가 않다
만나야 할 사람 설렘 반 기다림 반
그리움이 넘칠 때
병실 출입문이 살짝 열리더니
가을 낙엽 위에 이슬 구르는 작은 목소리
혈압시간이에요
백의천사 환한 미소가
아침햇살 가득히 병실 안을 꽉
채워준다.
장수남의 <7월의 천사>에서 인용
조금만 천천히 늙어가자 하였잖아요
그러기 위해 발걸음도 늦추자 하였어요
허나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질 않아 등뼈에도 흰 꽃을 피워야 하고
지고 마는 그 흰 꽃을 지켜 보아야 하는 무렵도 와요
다음번엔 태어나도 먼지를 좀 덜 일으키자 해요
모든 것을 넓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한번 스친 손끝
당신은 가지를 입에 물고 나는 새
햇빛의 경계를 허물더라도
나는 제자리에서만 당신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하나의 무의미예요
나는 새를 보며 놓치지 않으려 몸 달아하고
새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토록 마음이 쓰여요
새는 며칠째 무의미를 가로질러 도착한 곳에 가지를 날라놓고
가지는 보란 듯 쌓여 무의미의 마을을 이루어요
내 바깥의 주인이 돼버린 당신이 다음 생에도
다시 새[鳥]로 태어난다는 언질을 받았거든
의미는 가까이 말아요
무의미를 밀봉한 주머니를 물어다 종소리를 만들어요
내가 듣지 못하게 아무 소리도 없는 종소리를
- 고양이 감정의 쓸모 / 이병률
병원생활을 하다보면 단순해진다.
아침에 일어나 회진을 받고, 조식을 하고 물리치료실로 가서 각종 기구를 순회하며 물리치료를 받고
Worker에 몸을 의지하고 재활훈련을 하고 이따금씩 혈액을 뽑아 혈액검사를 하고 신경세포가 살아나는지 신경검사를 하고 돌아오면 점심시간이다
단순하게 먹는 식생활, 시간 맞춰 주는대로 먹다보면 살이 찐다
그래서 입맛도 없지만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바나나 혹은 두유등으로 대신 하기도 한다
자려고 누우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참으로 많은 것을 잃은듯 하다
건강을 잃었고 시간을 잃었고 나의 일을 잃었다.
원무과에 가서 그동안 수술비와 치료비를 뽑아보니 몇 달간 벌어야 할 어마어마한 경비가 나왔다.
그러나 얻은것도 있다.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알게 되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쳐가며 내 스스로 진정한 사랑이 눈을 뜨려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눈물겹게 사랑하며 살다니...
이제는 내가 의사발표하는 시간보다 그들의 언어에 귀를 기우려 본다
당분간 병원을 퇴원한 후에도 여러사람들의 신세를 져야 할 것같다
그동안 주인없는 내 블로그에 들어오셔서 '혹시 오늘은 돌아 오셨나?...' 하고 기웃거리다 말없이 돌아가셨던 분들,
E-Mail에 걱정반, 격려반으로 글을 남겨 주셨던 분들, 스마트 폰으로 용기를 잃지 말라며 응원을 해주셨던 분들...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긴급하게 도착한 내 모습을 보시고 금방 병세를 파악, 정확한 검사와 판단으로 수술을 감행해 주신
<허리나은 병원>의 이재학 원장.
* 이번 사고를 겪으며 제가 묵고있는 병원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허리나은 병원>은 서울 특별시 강동구 천호대로 1012. 3,4층T. 02-472-0114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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