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鳥)에 관한 esprit
밤에만 날아다니는 새가 있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새 때문이다
저벅 저벅 걷다가 때론 울다가
훌쩍 날아다니기도 한다 비밀을 하나씩
들킬 때마다 새의 날개는 점점 견고해진다
기억나지 않는 기억 사이를
이미 지나간 내일과 아직 오지 않은
어제 사이를 날아다닌다
끝내 시가 되지 못한 시어들만 물어다 놓고
숫자도 없는 시계 속에서 붉은 부리로
밤새 소리도 없이 시간을 쪼아댄다
관념들이 생각에 생각을 물고
그 새의 꼬리가 길어져 간다
밤새,
열리지 않는 눈꺼풀을 기웃거리다가
아침이면 깃털 하나 남기지 않고
새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 머리카락 속에 새집만 덩그러니 지어져 있다
저 엉성한 둥지 하나 만들려고
밤새도록 잠 속을 헤집고 다녔나 보다
- 정용화의 <이상한 새>
이 시는 기표적 의미(시니피앙/ signifiant)로 보면 불면증에 대한 시다.
밤에만 날아다니는, 소리도 없이 시간을 쪼아대는, 이상한 새로 불면증을 표현했다.
하지만 기의적(시니피에)으로 보면 이 이상한 새는
밤새 열리지 않는 눈꺼풀을 기웃거리다 깃털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시인의 잠을 온통 들쑤신 시화되지 못한 시어에 대한 이미지즘이며
시인의 실존인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나뭇가지 몇개 물어다 얼기설기 지은 엉성한 둥지처럼, 비몽사몽 잠 속에서
겨우 건져온 지푸라기 같은 시어의 허망함과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 있으며,
그 과정이 그대로 하나의 진솔한 시의 옷을 입었다.
* 시니피앙[signifiant] : 외계에 의해 인지된 의미 표상을 대체하는 형식
* 시니피에[signifié] : 개념이 언어에 의해서 표시된 표상체
낮에는 특수물리치료실과 채혈실, 신경검사실등을 순회하며 재활을 받고
간간이 Worker(팔로 온몸을 의지하고 바퀴를 이용하여 걷는 보행기의 일종)에
몸을 의지하고 몇 발자욱씩 걷는 연습을 한다
여간 힘든게 아니다
조금씩 걸음을 떼어 놓을적마다 뼈를 갈아내는듯한 통증이 뒤따른다
밤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하는데 깊은 잠에 들 수 가 없다.
잠깐 선잠이 들었는데 악몽을 꾼다
그러면서 깜짝깜짝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도 모르게 몸이 움추러든다
아마도 산에서 떨어질때 반사적으로 움직였던 반사신경이 작용을 하는 모양이다
내가 입원한 병실에만도 다섯명의 허리수술환자가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모인 사람들이다
제1번은 나이가 다소 많은, 젊은 시절엔 학생교복을 만드는 양복점을 했다는
충남 강경출신의 머리가 하얀 어른인데
아들을 낳기위해 내리 딸만 넷을 두고 끝으로 아들을 얻었다 한다.
낮에는 마나님과 딸들과 사위들이 교대로 다녀가는데 밤에는 늘 혼자서 고통과 싸운다
끙끙 앓는소리를 내며 일어나 앉아 부시럭거리며 무통주사를 놔 달라고
당직 간호사의 콜벨을 누른다
제2번은 아파트 시설관리를 하다 왔다는 천성이 선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우연히 병원에 입원하여 고향 아저씨인 1번을 만났다는 이분은 평소 살아온대로 부지런하고 손이 잽싸다.
1번의 소변까지 받아내주며 불편함없이 싹싹하게 대한다
한번은 내가 "손선생님, 저 샴푸실로 가서 샴푸좀 해주시겠어요?" 했더니
기꺼이 나를 샴푸실 의자에 눞히고 시원하게 샴푸를 해 주었다.
이튿날부터 내가 가만이 있어도 "오늘은 샴푸 안하세요?" 하면서 나를 데리고 샴푸실로 간다.
3번은 환갑을 넘겼다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다
그는 가는 귀가 먹어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해야 알아듣는다
서른두살 먹은 아들이 있는데 6년 연상의 여성과 작년에 결혼을 해서 손자를 얻었단다.
손자의 사진을 폰에다 저장해 넣고 다니며 자랑을 한다
그러나 어쩌다 오는 마나님은 아들 잘 길러서 여섯살이나 많은 없는 집안의 딸을 데려왔다며
너무 원통하다고 병실이 떠나가게 한탄을 한다
4번은 서른아홉의 아들이 작년에 장가를 갔는데 아직 손주가 안 태어났다며
웃음기가 전혀없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이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으로 크게 옛날 팝송을 듣는다
처음에는 그냥 저러다 말겠지... 하며 아무말 않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옛날 추억의 팝송' 듣는 취향은 내 신경을 거슬렀다
참다못해 "어르신, 이어폰으로 들어 주십시요."했더니
고맙게도 "네, 알겠습니다."하고 이내 시정을 해주었다.
이토록 나와 거리가 느껴지고 서로 먼 세계에서 살다 온듯한 사람들때문에 내가 밤잠을 못 잔다.
서로 부대끼며 앓는 소리들때문에...
나는 가지고 온 이어폰으로 M.P.3에 저장한 음악들을 들으며 꼬박 밤을 새운다
그러다 보면 훤히 동녁이 밝아오고 창밖의 나무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앉지를 못해 Worker에 몸을 의지하고 서서 밥을 먹으며
간호사가 매시간마다 혈압과 맥박과 혈당을 첵크해 가며 건네주는 약을 먹고
힐체어를 타고 물리치료실로 가서 바지를 내리고 특수물리치료를 받으며 적외선을 쬔다
그리고 공기압력 튜브속에 하반신을 밀어넣고 꼭꼭 조여오는 공기압력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Chris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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