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국내여행

시인 高銀과 함께 떠나는 여행 I - 선유도

Chris Yoon 2021. 10. 24. 04:56

전쟁의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시인의 바다, 선유도

 

詩人 고은과 함께 떠나는 여행
詩人의 여행지가 된 고향 바다, 군산

고향은 여행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평생을 떠돌면서 살다 보니, 고향이 여행지가 됐다.
나는 오늘 위대한 서사시 ‘여행’을 쓰러 길을 나선다.
금강 하구에는 가창오리·청둥오리 등 철새가 장관을 이룬다. 철새는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여행자다.
철새는 9000~1만㎞ 이상을 여행하는 나그네들이다.

여행은 즉흥詩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면 재미도 감흥도 사라진다. 바람이 데려다준 어느 곳에서, 언젠가 내 흥에 취해보라. 들판, 하늘, 바람은 여행자에게 뜨거운 피를 흐르게 한다.

누군가 왜 시를 쓰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도 그 대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졸졸 흐르는 도랑물이나 강물 그리고 흙 속에, 바람에 시가 함께 있었을 뿐,
나는 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산의 바다에는 나의 젊은 시절이,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잔잔한 물결도, 격렬한 파도도, 청년 고은에게 좋은 친구가 됐고 좋은 시가 됐다. 시대는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1930년대 어린 시절, 부끄러움이 많아 암사내라 불리던 나에게 1950년대 전쟁의 시대는 당당한 남자가 되기를 요구했다.

장항제련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공중으로 흩어지지만, 공중에 속속들이 남아 있는 연기처럼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영혼과 정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방황하던 시절,
길에서 만난 한 스님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나는 속세를 떠나 있었다.
죽음의 잿더미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한없이 부끄러웠고, 한없이 괴로웠다.
그 긴 이야기를 어찌 그냥 풀어놓을 수 있을까. 서해안의 별미를 안주 삼아 청청히 깨어 있기보다는 다소 취한 감정으로 넉넉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술이 맛있고, 밥이 맛있고, 책이 맛있다. 밥 한 그릇에도, 술 한 잔에도, 책 한 권에도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있다고 신성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삶을 맛있게 한다.
정열적으로 밥을 먹고, 정열적으로 책을 읽고, 정열적으로 술을 마신다.

군산시 금암동 죽성포구는 움푹 파인 모양 때문에 일명 ‘째보 선창’이라 불렸는데, 내 가슴에도 움푹 파인 상처를 남겨준 곳이다.
전쟁의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잉여인간의 책임감과 괴로움이 치욕스러웠지만, 나는 또다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이곳에 왔었다. 눈 감고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정든 고향집을 떠나, 가족과 헤어지는 건 죽음의 고통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무뚝뚝하고 억척스러웠지만, 나에겐 전부이던 어머니는 생각만 해도 괜스레 서러워졌다.


3개월의 피란살이, 소년의 감성을 건드려준 선유도

60여 년 전 피란을 갔던 선유도는 우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뱃멀미가 나는 것이 반가웠다.
그러면 이별의 고통을 잊을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섬 소년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은 섬에 사는 아이를 촌놈이라며 놀려댔고, 아이들은 섬에 사는 걸 감추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바다의 한가운데, 외로운 섬에 사는 소년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오늘 그 섬 소년이 되는 날이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선유도는 시처럼 아름답다.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형상이라니, 그 이름부터 낭만적이지 않은가.
바람이 매서워서 겨울 바다는 더욱 매혹적이다. 방랑 시인 고은이 왔다고 알리고, 신선처럼 여유롭게 놀아볼 작정이다.

언젠가 나는 통일이 되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조국을 떠나서 카나리아군도에 혼자 살아도 좋을 만큼 나는 통일을 갈망한다.
60여 년 전 피란살이를 했던 선유도에 오니, 욕망은 더욱 커진다.
나 혼자 아름다운 행복을 누리기엔 너무 아깝다.

나는 지금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와 단둘이 피란 온 외로운 소년 高銀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 지치면, 학교 주변을 맴돌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의 눈에도 나는 외로워 보였다. 누군가는 방을 내주었고, 누군가는 쌀을 내주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감성을 건드려주기도 했다.

창고 깊숙이 있던 기억들이 이렇게 생생할 수 있을까. 학교의 건물은 바뀌었지만, 내가 좋아하던 뒷길은 그대로다.

이 길을 걸으며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 고모의 등에 업혀 까만 밤하늘에 뜬 별을 보며 어머니를 기다리던 그때, 나는 별을 밥처럼 생각했다.
그 수치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하염없이 걷다 보면, 그리움도 외로움도 가끔은 잊히기도 했다. 선유도에서의 3개월간의 피란살이는 햇살 따뜻한 오후의 낮잠처럼 아름다운 꿈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좋은 것만을 기억하고 싶은 뇌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다시 60여 년 후 팔순의 高銀으로 돌아온다.

선유도에는 보물이 하나 있다. 죽음을 끝이 아닌 삶의 연장으로, 슬픔이 아닌 축제로 승화시키는 생경한 모습에, 나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었다. 초분 공원, 이곳이 바로 그 충격의 보고지다.
초분은 일종의 풀무덤으로 몇몇 섬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례 문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에는 망자의 하루가 남아 있다.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다.

내가 죽고 나서 몇 년 뒤 누군가가 내 무덤을 파헤쳐본다면, 그곳에는 뼈 대신 내가 무덤의 어둠 속에서 쓴 시들로 꽉 차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 있지 않은 그 미래의 순간에도 시는 현재여야 한다.
내가 너무 시에 집착하는 건가. 시와의 이별의 순간에도 시는 존재하기 때문에 시를 향한 나의 집착은 곧 해탈이다.

이제 해가 지려고 한다. 중앙일보에 연재할 때 12월에, 선유도의 낙조로 마지막을 장식했었다.
그때 사실 나는 어릴 적 본 기억만 가지고 그걸 썼다. 실제로 선유도의 낙조는 60여 년 만에 본다.

낙조는 해가 지면서 생기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하루가 시작됐으니 나는 또 시를 쓰러 어디론가 떠나야겠다.


시인 高銀(《여행, 그들처럼 떠나라 / 동양books 펴냄》 중에서)



함께 걸어요 _시인 고은

호는 파옹(波翁), 본명은 고은태, 법명은 일초(一超)다.
1933년 전라북도 군산 출생으로 1958년 <현대문학>에 시 ‘폐결핵’으로 등단했다.
제1회 한국문학상, 만해문학상, 은관문화훈장, 중앙문예대상, 영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피안감성》 《문의 마을에 가서》 《만인보》 《백두산》 《두고 온 시》
나는 격류였다》 등이 있다.


작가의 말

나는 먼 옛날 바람처럼 물결처럼 떠도는 방랑 시인으로 출생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 그는 밤새 나와 술잔을 기울이는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1933년 군산의 작은 마을에서 고은으로 환생한다.
전생의 방랑벽은 또다시 나를 남자로, 승려로, 그리고 시인으로 80여 년을 떠돌게 했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떠나는 새처럼 편안함을 거부하고 불편함과 불안함을 찾아 오늘도 떠난다.
그것이 바로 여행이고 인생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詩 _ 삶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

 

시인 高銀이 60년전 피란생활을 했던 군산 선유도 63개 섬, 고군산군도 중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하다.

선유도 등 섬지방의 독특한 장례문화 풀무덤 '초분'은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슬픔 아닌 축제로 승화를시켰다해서 유명하다



그외 가볼 곳

▶은파 관광지
군산 시내의 미제 저수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유원지로, 저수지 방죽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다.

1985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고은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봄에는 화사한 벚꽃 길을 즐길 수 있고, 여름에는 아카시아 향기와 느티나무의 짙은 녹음을 만끽하고, 가을에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알밤도 주울 수 있어 도심 속 국민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전북 군산시 나운동)

▶군산 외항
군산 연안 여객선 터미널 : 군산시 내항을 대신해 1987년에 준공되었으며 중국·러시아·동남아 등지로의 수출전진기지로서의 역할과 국가경제 및 지역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월명 유람 여객선 : 고군산군도 일대를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 및 여객선이 운항되며 전화와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하다. 063-642-4000 / www.wmmarine.com

▶동국사
1913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사찰로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다. 고은 시인이 출가해 몸담았던 사찰이다. (전북 군산시 동국사길 16/ 063-462-5366)

▶선유도
신시도-무녀도-방축도-말도 등과 더불어 고군산군도를 이루는 63개 섬의 중심 섬으로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유도라 불린다.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군산항금강 하구부의 항구로 1899년 5월 1일 개항하여 8·15 광복 전까지 일제의 쌀 수탈 전초기지로 이용됐다.
(전북 군산시 장미동)

▶금강 하구 철새 도래지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 사이의 금강 하굿둑에 있는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로 겨울이면 각종 희귀 철새들이 수만 마리씩 날아와 장관을 이룬다. (전북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 411-1)

▶죽성포구
죽성포구는 조선시대부터 불린 이름으로 포구의 모양이 움푹 파였다고 해서 일명 ‘째보 선창’이라고도 불린다. (전북 군산시 금암동)

 

시인 高銀